슬라보예 지젝은 애닐 세스(Anil Seth)의 『Being You』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며, 의식이 단순한 생물학적 자기조절이 아니라 자기모델의 자율화로 출현한 주체성이라 주장한다. 그는 진정한 자아는 삶의 재생산을 초월하는 죽음 충동과 무의식을 포함하며, 이는 오직 정신분석적·헤겔적 전회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지젝은 인지과학의 모델들이 놓치는 인간 주체성의 급진적 단절성과 윤리적 잠재력을 복원하려 시도한다.
맷 맥매너스는 안젤리아 윌슨의 신간 ⟪증오의 정치: 어떻게 기독교 우파는 미국 정치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었는가⟫를 통해, 미국 기독교 우파가 지난 수십 년간 어떻게 막강한 권력을 쌓아왔는지를 추적한다. 윌슨은 종교적 열정과 자본주의의 이해관계가 결합해 어떻게 거대한 정치-종교 연합이 형성됐는지를 고발한다. 그녀는 이들의 도덕적 우월의식과 이분법적 세계관이 혐오, 배제, 반지성주의로 이어졌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맥매너스는 이러한 분석에 니체와 키르케고르의 종교비판을 덧붙이며, 현재의 기독교 우파는 진정한 신앙이라기보다 자기 도취적 피해의식과 정치적 복수심에 기반한 일종의 '거짓 신앙'이라고 지적한다. 기독교는 이런 식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적 증오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1945년 5월 8일, 프랑스가 나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던 날, 알제리에서는 프랑스 당국이 독립을 요구하던 평화 행진을 잔혹하게 진압하면서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알제리인이 학살되었다. 이 사건은 식민주의적 폭력의 연장이자 독립운동의 씨앗을 억누른 계기였으며, 진상규명과 공식 인정은 여전히 미진하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집단 학살은 프랑스-알제리 간 역사 기억에서 오랫동안 음지에 있었으며, 진정한 화해와 공동의 역사 인식을 위한 구조적 노력과 기억의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스페인의 민주주의 이행을 일컫는 '전환기(La Transición)'는 프랑코 사망 이후 1982년까지의 정치적 전환을 둘러싸고, 영웅적 서사와 기만적 체제 유지라는 상반된 해석이 공존해 왔다. 하나는 국왕과 수아레스 등의 엘리트 주도 아래 평화적 합의와 국민 화해가 이뤄졌다는 '신화적'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진정한 단절 없이 프랑코 체제의 연속성을 유지했다는 '반신화'적 비판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이 과정을 개방적이고 갈등적인 현실의 산물로 보고 있으며, 지나치게 단순화된 대중 서사에서 벗어나 비판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피아 로젠펠드의 ⟪선택의 시대⟫는 현대 자유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선택 개념이 어떻게 시장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태로 변질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쇼핑, 연애, 투표 등 일상의 선택 행위들은 타인의 관점과 공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고립된 개인의 소비 행위로 탈바꿈해버렸으며,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낳은 결과다. 진정한 해방은 선택의 자유를 시장 논리로부터 회복하고, 공동체적이고 타자 지향적인 선택 방식을 되찾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앤 애플바움의 『Autocracy, Inc.』는 미국과 그 동맹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고루한 이분법을 반복하지만, 실제로는 서구 자체가 점점 더 감시국가적, 과두제적 현실로 이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구분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책은 러시아,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 ‘비민주적’ 국가들을 도매금으로 규탄하면서도, 미국의 군사주의, 불평등, 표현의 자유 억압, 글로벌 개입주의 등은 철저히 외면한다. 애플바움은 서구 엘리트의 가치 붕괴를 외면한 채, 전제정과 싸운다는 신화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미국 중심 세계질서가 내적 모순으로 붕괴 중임을 반증하는 자기 합리화로 읽힌다.
기후위기, 무역전쟁, 권위주의 확산이 겹치는 오늘날, 이마누엘 칸트는 ‘자유’를 미래로부터 되짚어 계획하는 사고방식으로 제시하며, 자율성과 공공이성, 국제협력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 속에서도 진보의 가능성을 찾을 것을 강조한다. 그는 소비주의를 넘는 집단적 열망, 장기적 기후 계획, 지역 중심의 생산과 공정한 전환을 통해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디지털 시대의 파편화된 여론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독립 언론과 분산형 플랫폼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결국 칸트는 현세대가 단기 이익을 넘어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고 구성해가는 '사유의 예술(Denkungsart)'을 되살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푸코와 리프는 정치적·성적 정체성에서 상반되지만, 개인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공간과 조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이 글은 그들의 사유가 ‘비가시성’, ‘금기’, ‘제도적 틀 속의 탈주’에 관해 어떻게 수렴하며, 현대의 해방 담론과 신좌파적 공간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데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지를 고찰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샤워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같은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개인 자유’ 침해로 규정하며 철폐에 나섰다. 이는 산업계와 가스업계의 로비와 맞물린 조직적 캠페인으로, 효율기준을 자유 침해로 프레이밍하며 규제 철폐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규제가 광범위하게 폐기되면서, 장기적으로 미국 가정과 기업이 누릴 수 있는 에너지 절감 효과와 비용 절감이 위협받고 있다.
20세기 좌파는 안정된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에 기반해 성과를 냈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 부상한 불안정 노동계층 ‘프레카리아트’에는 무관심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 노동, 박탈된 권리, 계급 내 분열 등 고유한 특징을 지닌 새로운 대중계급이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좌파는 영향력을 잃고 있다. 우파는 프레카리아트 일부와 연합해 정치적 기반을 넓히는 데 성공했고, 좌파가 새로운 사회적 기획과 도덕적 연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암흑기가 닥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