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모두의 전환'을 내걸고 지난달 27일 시작된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입법 청원' 캠페인이 어느덧 마감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모두에게 필요한 전기를 만들어온 발전 노동자들을 비롯해 여러 노동자·시민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청원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왜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고 나섰을까. 공공재생에너지가 정말 '모두'를 위한 전환을 실현하는 대안일까. <참세상>은 세 개의 연속 기사를 통해,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담긴 노동자·시민들의 절실한 고민과 바람을 톺아봤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고 김용균과 김충현을 떠나보낸 자리에서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기 위한 대안으로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고 나선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두 번째 기사에서는 (재생)에너지 민영화 문제를 쪽방촌 주민들이 마주한 에너지 빈곤의 현실과 교차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는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사회운동 주체들의 고민을 소개한다.
지난 7월 16일 오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총파업 대회 현장 곳곳에는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입법 청원’에 참여를 호소하는 마음과 몸짓들이 분주했다. 충남 천안에서 열린 총파업대회 한편에는 내려오는 비를 맞으며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있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현수막에는 “김충현의 동료들을 살릴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에 함께해 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김충현의 동료들을 살릴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에 함께해 주세요"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세종충남본부 제공
지난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씨가 ‘선반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7년 전 하청 노동자 고 김용균이 홀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발전소였다.
김용균과 김충현이 떠난 자리,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복되는 참사를 막아낼 대안 중 하나로,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을 꼽고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도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다. 고 김용균·김충현의 동료들은 왜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요구하는 것일까. ‘위험의 외주화’가 빚어낸 ‘죽음의 발전소’를 이 법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참세상>은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을 지난 7월 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만나 고민을 나누었다. 김 지회장은 고 김충현 노동자와 같이 한전KPS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해왔다. 김 지회장의 이야기와 함께, 기후정의 활동가들과 노동계·시민사회의 여러 분석들도 톺아봤다.
김용균, 다시 김충현, 왜 참사는 반복되었나
2002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으로 발전 산업의 우회적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은 5개의 자회사로 분할되고, 경쟁입찰제도가 도입됐다. 발전 현장의 다단계·중층적 원하청 구조는 갈수록 심화됐고, 비용 절감을 최대의 목표로 앞세우고 노동자의 안전은 뒤로 미루면서, 위험한 업무는 “더 아래로, 아래로” 흘러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김영훈 지회장은 스물셋이던 2016년부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전KPS와 계약을 맺은 2차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해왔다.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경상정비 업무를 하청받은 한전KPS는 다시 2차 하청업체들에 업무를 쪼개어 맡겼다. 고 김충현 노동자는 한전KPS와 계약을 맺은 2차 하청업체 중 한국파워O&M 소속이었고, 김 지회장은 대광이앤씨라는 업체에서 시작해 현재는 삼신 소속이다.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 참세상
"위험의 외주화라는 것이 저희에게는 계속되는 일상이었어요. 어느 순간에는 겪고, 어느 순간에는 겪지 않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저희에게는 이런 하청 구조 자체가 계속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었죠."
한국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O&M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는 안전관리의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고 김충현의 휴대전화에는 원청인 한전KPS가 공식 작업절차를 무시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나 구두를 통해 하청 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내린 정황이 여럿 남아 있었다. 고되고 위험한 업무를 절차를 거슬러 직접 ‘긴급 지시’하는 흔적들은 많았지만,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BM) 등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한 경험은 찾기 어려웠다.
고 김충현이 사고를 당한 기계에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조차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2인 1조 작업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책위는 "고인의 죽음을 알린 건 고인의 비명도, 동료의 다급한 외침도 아닌 기계음이었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은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안전 지적’이 나왔을 때 그 현장이 위험하다는 뜻이잖아요. 그 위험한 곳에 대해서 저희 2차 하청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해요. 그럼에도 인원이 모자라거나 대규모 공사가 필요할 때는 원청에 요청을 해요. 그 때 원청은 대부분 비용을 우선시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너희가 알아서 고치라는 태도로 버티죠. 그래서 하청 노동자들은 위험한 일을 위험한 장소에서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예요. 안전을 위한 작업들을 한다면서, 안전하지 않은 현장의 위험 리스크들을 모두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거죠. 그게 수십 년 동안 반복되고 묵인돼 온 발전 현장입니다.”
위험한 업무를 떠맡으면서도 내내 고용 역시 불안했다. 김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고용 불안정에 대해 "매년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 길면 1년 단위로 계약하다 보니 너무나 깊은 불안과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기억하는 것만 9개 이상의 회사를 거쳤다"고 이야기했다. “소속된 회사는 바뀌지만, 일하는 현장과 업무는 같았다.”
“임금 문제에서도 굉장히 고충을 겪는 게, 한전KPS에서 업체들과 계약을 할 때 공사비나 노무비를 삭감하는 경우가 있는데, 계약 시기에 한전KPS가 인원을 내보내고 싶으면 그렇게 노무비를 깎아요. 우리는 2차 하청업체에 고용된 상태지만,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한전KPS죠. 그런 방식으로 하청 노동자들에게 나갈 거냐 말 거냐는 간접적인 ‘선택지’를 줘요. 한전KPS가 어떤 노동자가 마음에 안 들면 1년마다 돌아오는 계약 시기에 임금을 비롯해 여러 불이익 조치를 할 수 있는 거죠. 고 김충현 동지도 그런 부분들을 매우 힘들어하셨어요.”
김충현 노동자 사망 이후 대책위는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과 함께 한국파워O&M과 각 회사 관계자들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법률 전문가들은 "다단계 하청구조가 만들어낸 안전 관리감독의 사각지대가 결국 사망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반복되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의 직접 고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김용균 특조위’)도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우선 과제로 경쟁입찰제도를 중단하고,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할 것을 권고했으나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대책위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가 모두 10명에 이른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죠.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어졌지만, 참사의 구조적 원인인 다단계 하청구조를 면밀히 살펴보고 그 사슬을 끊어내지는 못했어요. 2차 하청노동자를 포함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를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요. 위험이 더 낮은 곳으로 흐르고 번지는 하청 구조 아래에서 다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돌아가신 겁니다."
눈앞으로 다가온 발전소 폐쇄… 교차하는 위기, 깊어지는 위험
잇따른 참사의 현장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위험하고 불안한 노동환경은 정부의 발전소 폐쇄 계획과 맞물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10차·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총 40개의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계획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204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는 공약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계획하에 올해 12월부터 고 김충현 노동자가 일하던 태안화력발전소의 1호기를 시작으로 30년 이상 가동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들의 연쇄적 폐쇄가 추진될 예정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원청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이 같은 발전소 폐쇄 계획을 명분 삼아 현장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고, 하청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업무량과 책임은 더욱 가중되어 왔다. 고 김용균과 김충현, 그의 동료들은 그토록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터를 “모두에게 필요한 전기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지탱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발전소 폐쇄로 인해 그러한 일터마저 잃게 될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가 22일 발행한 이슈브리프에 따르면, 정부 계획으로 2036년까지 30개의 석탄발전소가 폐쇄됨에 따라, 모두 한전 자회사인 발전공기업 5개사가 소유·운영하는 이들 발전소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위기가 더욱 심각하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가 발전 5개사의 지난해 말 국회 제출 자료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현재 해당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2,328명의 87.89%에 이르는 2,046명(정년퇴직자 제외, 청소 업무 종사자 등 자회사 유휴인력 48명 포함)이 2036년까지 발전소 폐쇄로 인해 유휴인력으로 전환되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올해 12월 태안화력 1호기 폐쇄로 발전 비정규직 중 48명이 유휴인력이 되고, 다수의 발전소 폐쇄가 예정된 2027년과 2029년에는 각각 353명과 591명의 유휴인력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쇄적 폐쇄로 누적 유휴인력은 꾸준히 늘어나 2036년에는 1,998명(자회사 유휴인력 48명 제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한 발전 비정규직 유휴인력 추정. 공공재생에너지연대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터를 잃고,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삶도 벼랑 끝을 향하고 있지만, 정부와 발전공기업들은 이렇다 할 고용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고 김충현 노동자도 이 문제를 깊이 걱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영훈 지회장은 "김충현 동지도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어요. 발전소 폐쇄로 본인도 직장을 잃게 될까 봐 늘 불안해했죠. 실제로 자격증도 따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발전소 폐쇄 관련 소식을 저장해 둔 고 김충현 님의 카카오톡 메시지. 대책위 제공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로부터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어렵게 지탱해온 일터가 문을 닫는 것에 찬성하고 나섰다. 다만 “석탄화력발전은 멈춰도,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까지 멈출 수는 없다”면서 발전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 지역 주민과 시민 모두의 살아갈 권리를 함께 실현할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노동자들과 기후정의 활동가들이 수년간 머리를 맞대어 찾은 해법이 바로 ‘공공재생에너지(법)’이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531 대행진 선포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대안은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공공재생에너지법은 “우리 모두의 것인” 태양과 바람을 민간 기업들이 사유화하는 것을 막고, 중앙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 노동자·시민의 민주적 협력과 공적 투자를 통해 신속하고 정의롭게 재생에너지를 개발·소유·운영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정부가 계획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중 최소 50%를 공공재생에너지로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재생에너지 발전 현장에 우선 고용되어 일과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고용 효과는 어떨까. 공공재생에너지 확대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의 수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공공재생에너지연대의 분석을 살펴보면, 주요 재생에너지 발전원 중 하나인 해상풍력 사업을 통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한 유휴인력의 상당 부분을 고용 유지할 수 있다. 2032년까지 발전공기업이 참여하는 19개 해상풍력사업이 계획대로 완공되어 운영된다면, 2,458명의 운영 관리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발전공기업이 운영 중인 3개 해상풍력 사업 중 가장 먼저 가동을 시작한 탐라해상풍력의 MW(메가와트, 발전 용량)당 고용 인력 수인 0.43명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이는 2036년까지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을 위협에 놓인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인 1,998명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는 규모다.
최근 해외 연구의 MW당 고용 인력 지수 0.28을 기준삼는 경우에는 2032년까지 1,601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자의 모델보다 다소 작은 규모이나, 2036년까지 발생하는 전체 유휴인력의 80%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발전공기업의 해상풍력 사업을 통한 고용 인력 전망. 공공재생에너지연대
물론 해상풍력을 통한 고용 전환에는 몇 가지 한계들도 존재한다. 공공재생에너지연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섯 가지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최소 10G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추가 계획하여 해외 연구 등에서 기준삼은 낮은 고용창출계수에 근거하더라도 충분히 석탄발전소 유휴인력 모두의 일자리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연대는 관련해서 2038년까지 폐쇄되는 석탄발전소들의 총 발전용량이 15,120MW에 이르는 반면, 2032년까지 준공 예정인 해상풍력단지의 총 발전용량은 그 1/3 수준인 5,716.2MW에 그친다는 점도 환기하고 있다. △둘째, 석탄발전소 폐쇄 시기와 해상풍력 사업 진행 일정 간의 시간적 불일치 문제가 있다. 석탄발전소는 2025년부터 폐쇄되지만, 현재 계획된 해상풍력 사업은 2028년부터 가동된다. 공공재생에너지 연대는 이 기간 동안 유휴인력이 된 노동자들이 해상풍력발전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교육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 현재 발전공기업들은 계획된 해상풍력 사업에 필요한 인력 규모와 확보 방안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풍력발전에 필요한 기계·전기 분야의 상당한 기술을 보유한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이 추가적인 교육훈련을 받고, 해상풍력 사업에서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실효적 대안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넷째, 해상풍력을 포함하여 재생에너지로의 전면적 산업전환 과정에서, 기존 석탄발전 현장의 구조적 폐해인 다단계 하청구조를 부수고, 발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할 필요도 제기된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과제들을 담고 있는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이 신속히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상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들의 고용 효과가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장 올해 12월 1호기가 폐쇄되는 태안화력발전소 인근 바다에는 태안군이 약 11조 이상을 투입해 1.4GW(기가와트) 해상풍력단지 3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들 모두 민간 기업이 사업권을 얻었고, 이 중 두 곳은 싱가포르와 독일에 기반을 둔 해외 자본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발전소 폐쇄 이후, 내가 일하고 살아왔던 지역에 만들어질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새롭게 “깨끗한” 전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마음에 품었지만, 사회적 책임과 가치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민간 주도 모델의 한계 탓에, 태안군도 기업들도 고용 연계에 대한 논의에 나서고 있지 않다. 공공재생에너지법이 제정된다면, 공공의 협력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일자리를 잃은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을 우선 고용하여 배치할 수 있게 되고, 고용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과 훈련 등도 지원하게 된다.
또한 공공재생에너지법은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유지만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발전소’를 멈추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제도적 기반으로서도 제시되고 있다. 민간기업 주도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수익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노동 안전이나 고용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반면 공공 주도의 재생에너지는 수익보다는 필수재인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과 함께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안전할 권리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가치와 공공적 책임을 구현할 수 있다.
김영훈 지회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현장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지금과 같이 다단계 하청구조가 유지되고, 위험의 외주화가 이어진다면 또다시 참사가 반복될 것입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 주도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공 중심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서만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명을 함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공공재생에너지법이 꼭 필요하고, 그 법을 통해서 고용 전환의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청원 돌입 기자회견. 참세상
공공재생에너지, "모두를 위한 전환"
한편, 김영훈 지회장은 자신과 동료들이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에 나선 이유가 다만 발전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는 모든 노동자·시민들이 존엄하게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저희가 공공재생에너지를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 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안전만을 생각해서는 아니에요. 모든 시민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 공공성을 지키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민간 기업들 중심으로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막대한 ‘민영화 비용’이 시민들에게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겁니다. 전기가 비싸지면 결국 그 피해는 이미 가난하고 불안한 이들에게 더 크게 다가갈 거예요. 격차가 더 벌어지고 불평등이 심화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사업의 대부분을 초국적 해외자본과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는 너무 느리잖아요. 이윤을 좇으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철수하기를 반복하는 무책임한 민간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 사업을 맡겨서는 기후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봐요.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의 힘으로 빠르고 정의롭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게 절실합니다.”
김영훈 지회장은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하는 공공재생에너지법이 위기와 전환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를 위한 법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지금 석탄화력발전소만 폐쇄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산업이나 다른 여러 산업에서도 전환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모든 것들이 정말 빨리 바뀌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그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희생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필요로 추진되는 산업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당연히 담보되어야 하죠. 발전 산업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다른 산업에서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발전소에 기대어 삶을 일구어온 지역사회에 대한 영향도 환기했다. "태안 같은 경우는 발전소가 지역경제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발전소가 폐쇄되면 지역 상권이나 주민들의 생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돼요. 그래서 공공재생에너지법을 통해 지역사회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지역주민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원 마감 D-4, 애타는 마음들
이 같은 고 김충현과 김용균의 동료들의 절실한 요구를 담아, 지난 6월 27일부터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을 위한 5만 청원이 진행 중이다. 청원에는 23일 오후 2시 기준, 약 4만 명 이상이 참여한 상황이다. 마감일인 27일까지 남은 기간은 단 4일, 1만 명이 청원이 더 필요하다.
김영훈 지회장은 대화의 끝자락, 시민들에게 이렇게 마음을 전했다.
“발전소 현장의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사실 누군가의 피와 땀이 밴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노동자들이 계속 모두에게 필요한 전기를 만들 수 있도록, 그 현장에서 다시는 일하다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없도록, 가난한 사람들도 삶에 꼭 필요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후위기로부터 우리 모두의 삶을 지켜낼 수 있도록, 공공재생에너지법에 꼭 관심을 가지고 청원에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