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고 김충현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아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인의 동료들은 이 같은 발언이 "명백한 허위"이자 "명예훼손"으로 "김충현의 죽음을 왜곡·조작"하는 것이라며 김 의원의 발언 철회와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김 의원에 대해 "다단계 하청구조 등 노동 현장의 구조적 폐해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떻게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이간질에 나서나"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김소희 의원은 "제보(자)의 신빙성을 제가 판단할 수 없다"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김소희 의원. 유튜브 '김소희TV' 영상 화면 갈무리
김소희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현장에서, "고인이 유일하게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현장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는 제보가 있었다면서 김 후보자에게 이에 대해 알고 있느냐 물었다.
김 후보자가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저희가 제보받을 정도라면 고용노동부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노조다 보니까 일을 혼자 떠맡은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다"라며 고인이 원청 한전KPS 관리자와 나눈 카카오톡 문자 내용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후보자께 요청을 드린다.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고 있는데, 원청 하청과의 관계만 얘기가 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비노조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이 부분도 같이 조사를 해주시겠나"라고 질의했다.
김소희 의원이 괴롭힘의 증거로 제시한 고인의 문자. 대책위 제공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 같은 김 의원의 질의 내용이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고인과 동료 노동자들을 모독하는 무책임한 말"이라고 규탄했다.
"노동조합 없던 때 주고받은 문자가 비노조원 괴롭힘 증거?"
우선 김 의원이 제시한 카카오톡 문자가 오고 간 때는 2019년 12월 30일이다. 당시 현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었고,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가 설립된 것은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2021년 9월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보면 김 의원은 노동조합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나눈 문자를 근거로 내세워, "비노조원이라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은 당시 임금 등 노동조건 문제를 제기하다 재계약이 되지 않았고, 문자를 보낸 직후인 2020년 1월 사실상 해고되어 회사를 떠났다. 고 김충현 씨는 이후 2021년 1월 재입사해, 같은해 9월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조합에 가입했다가 다음 해 4월 새로운 업체와의 연봉 협상 시기에 탈퇴했다고 한다.
대책위는 제시된 문자의 내용에 대해서도, 김 의원이 "비노조다 보니까 일을 혼자 떠맡은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마치 고인이 동료 노동자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업무 과중을 호소한 것처럼 설명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부당한 노동조건 문제, 동료 간 갈등으로 왜곡해"
대책위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고인이 보낸 문자는 원청 한전KPS 관리자에게 부당한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고인이 노조 설립 전인 2019년, 한전KPS 관리자와 나눈 문자 내용. 대책위 제공
고인의 동료 노동자들은 제시된 문자 내용 중 '기동 정지대기'를 언급한 부분은 "당시 미세먼지를 이유로 주말에 발전기를 정지하는 등 발전기를 세웠다가 다시 기동하기 위해서는 인원이 필요하여 그와 관련한 내용"이라며 "재기동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켰지만 한전KPS에서는 이 추가 노동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동료들은 "그래서 재하청업체에서는 노동자들의 전체 노무비에서 OT수당(시간외근무수당)을 쪼개서 지급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추가노동을 하지 않고, ‘고정값’으로 임금을 받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던 고 김충현 님의 임금이 줄어들게 되었던 것"으로 이것이 고인이 문자에서 "경상20시간을 안 한다고 빠졌다"고 말한 배경이라 짚었다.
대책위는 "고 김충현 님은 기계1팀 소속이었지만 당시에도 공작실에서 혼자 업무를 담당했다"면서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고인 역시 다른 기계1팀 소속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동 정지대기에 대한 업무 압박이 있었지만 사실상 다른 업무를 혼자 일해야 하는 업무 조건상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 고인의 고충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사정으로 "해당 문자의 내용은 고 김충현 님이 선반용접을 별도로 조직구성해 줄 것을 한전KPS의 관리자에게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대책위는 또한 "결국 한전KPS가 일은 시키면서 이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라며, "동료노동자들은 인원 부족으로 인한 업무부담과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추가노동에 대한 수당 문제로 계속 속을 끓였고, 고 김충현 님 형식상으로는 같은 팀 소속이지만 별도의 업무를 혼자 해야 하는 부담감과 임금은 계속 깎여나가야 하는 것을 감내할 것을 요구받았던 것"이라 짚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김 의원이 '괴롭힘'의 증거로 제시한 고인의 문자 내용은, 이미 지난달 17일 대책위를 통해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고인 마주했던 어려운 노동조건을 드러내는 사례로 공개된 바 있었다.
동료 노동자들 항의에 "떳떳하면 조사받아 밝히라"는 의원실
공공운수노조와 김충현 대책위는 이에 인사청문회 다음날인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항의행동을 진행하고 김소희 의원실에 면담을 요청했다.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한 면담에 당사자인 김소희 의원은 자리하지 않았고, 선임비서관 등 의원실 관계자들만이 참여했다.
김소희 의원실 관계자들과 면담 중인 고 김충현의 동료들. 대책위 제공
이날 면담에서 대책위는 김소희 의원의 발언에 대해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제보 검증 절차' 등 질의 내용에 대한 의원실이 확인한 근거를 물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사실인지 확인하냐, 포렌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떳떳하면 (노조가) 조사를 받아서 밝히라"고 하거나, 김소희 의원의 청문회 발언이 '거짓말'이라는 대책위의 지적에 대해 "그게 무슨 거짓말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고 한다.
면담 이후 대책위는 성명을 발표하고 "피해자들의 절규는 외면당했다. 김충현의 동료들은 그 자리에서 '김소희 의원이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의혹이라고 제기하며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뉴스의 댓글들을 봐라, 우리는 의원의 발언에, 댓글에 두 번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했으나 의원실의 고압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김소희 의원의 발언은 세 가지 중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며 그것은 "첫째, 김충현의 죽음의 원인을 왜곡했고 둘째, 근거 없이 동료들을 가해자로 몰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줬으며 셋째, 이 죽음을 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몰아 한전KPS와 서부발전 원청의 책임을 지워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책위는 김소희 의원에게 △허위 제보에 기반한 발언에 대한 공식 철회 △고 김충현의 동료와 유가족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국민의힘에게는 △당 소속 의원의 공적 발언으로 발생한 피해와 2차 가해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당사 앞 항의행동에 나선 고 김충현의 동료들. 대책위 제공
김소희 의원 "제보(자) 신빙성 제가 판단할 수 없어"
참세상은 이와 같은 대책위와 고 김충현 노동자 동료들의 목소리에 대한 김소희 의원의 입장을 들으려 연락을 취했다.
김소희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노조의 괴롭힘 증거로 제시된 문자가) 노동조합이 없었던 시기에 주고받은 것이라는 사실은 (발언 이후) 확인했다"면서 "연도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이후 노조가 생겼고, 그 사이 고인께서 퇴사와 재입사를 하는 과정에서 (비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쨌든 제보를 받았으면, 그러한 의혹이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살펴봐 달라는 요청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걸 떠나서, 누군가 괴롭힘을 당한 거라면, 산재를 제쳐두고, 어차피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는 상황이니까 같이 (조사를) 해주시면 어떻겠냐는 차원에서 (후보자에게) 제안을 드렸던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또한 김 의원은, 노동조합 설립 이후에 고인이 비노조원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제보에 대한 증거도 의원실이 갖고 있냐는 질문에 대해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 전 문자 외에 증거가 있음에도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제보자를 밝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제보자 신상 노출에 대한 우려를 꼽았다. 김 의원은 이어서 "저희가 받은 제보와 제보자의 신빙성을 제가 판단할 수는 없고,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밝히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대책위의 발언 철회와 공개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게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소희 의원실,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받은 감사패. 대책위 제공
한편 김소희 의원은 지난해 11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뽑은 22대 국정감사 우수위원'으로 선정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대표자회의와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한전산업개발노조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었다.
이태성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국정감사 과정에서 김 의원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문제와 함께 발전소 비정규직 문제를 여러 차례 다루고 발전산업 전환에 관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당사자인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왜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현장을 직접 경험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소통해 사실을 확인해 보지 않았는지 실망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김 의원이) 입법 기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의 여러 목소리를 듣고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발언에 나섰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고 실망스럽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