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발이 묶였다.’
예고 하나를 하겠다. 조만간 포털을 통해 유통될 상당수의 언론 보도의 행태일 것이다.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서울교통공사노조, 서울메트로9호선지부 등 시민들의 이동을 책임지고 있는 철도·지하철 궤도노동자들이 5일을 기점으로 파업을 예고했다. 노동자들은 ‘시민 안전’을 내세우며 싸움을 준비하고 있지만, 언론매체들은 ‘시민 불편’을 이유로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기사를 쓸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23년 6월 14일 공공운수노조 기자회견. 참세상 자료사진
다시 떠오르는 악몽…철도노조 파업으로 멈춘 고교생의 꿈
한 가지 떠오르는 기사가 있다. 2009년 12월 4일 자 중앙일보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가 그것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소재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서울대 농생명공학과 면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으나, 철도 파업으로 열차가 지연되면서 면접에 늦었고 결과적으로 불합격했다는 보도였다. 학생의 부모는 기사를 통해 ‘자가용도 못 태워준 못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었다. 학교 교장 또한 ‘(철도노조에) 손배소송을 걸고 싶다’라고 분노했다. 기사의 반향은 대단히 컸다. 여론은 들끓었고, 허준영 당시 철도공사 사장은 “파업으로 멈춘 학생의 꿈을 살려줘야 한다”라며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미담 기사가 쏟아졌다.
이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사실은 ‘허위 보도’였고,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도 내려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과정도 지난했다. 철도노조는 논란이 커지자 곧바로 “학생이 면접에 늦은 것과 파업은 관계가 없다”라고 반박했다. 당일 지하철 운행 시간과 비교했을 때, 중앙일보 기사가 사실이라면 학생이 서울대 면접에 늦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실제 중앙일보 기사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 엉터리로 작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학생이 오전 7시에 소사역에 도착했지만, 철도파업으로 인한 운행 지연으로 9시 면접을 보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학생은 부천역에서 7시 20분가량에 전철을 기다렸고 7시 40분 이내에 탑승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시각, 전동차는 정상 운행 중이었다.
서울대 면접 시간 또한 틀렸다. 중앙일보는 ‘9시’라고 썼지만, 서울대는 면접을 위해 ‘8시 15분까지 입실하라’고 공지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학교 교장의 인터뷰도 허위였다. 데스크 차원에서 이른바 ‘Kill’ 됐어야 마땅한 기사였다는 얘기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철도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정보도’ 결정을 내린 이유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1심 법원 또한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언론보도에 대해 ‘정정보도하라’고 판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사건은 2심 재판부 조정 회의를 거쳐 ‘반론보도문’ 게재로 양측이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중앙일보 보도가 나간 지 2년여만의 일이다.
2011년 11월, 중앙일보는 마침내 지면 하단에 “전국철도노조는 이OO 군이 면접에 늦은 것이 노조의 파업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여 왔으므로 이를 알려드립니다”고 ‘알려드립니다’를 실었다. ‘사과’라고 볼 수 없는 짧은 문구였다.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의 차이는 이토록 크다.
이렇게 중앙일보는 사건이 벌어진 2년 만에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허위 보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났다. 그 기간, 철도노조는 어땠을까.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흠집 내기로 인해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고 결국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노동자 200명이 해고됐고 1만 2,000명이 징계받았으며,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2016년 법원은 5억 9,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판결)이 제기됐다. 철도공사 측의 일방적인 단체협약 해지에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였지만 부정적인 여론을 뛰어넘지 못했다. 여기서 언론이 얻어야 할 교훈은 뭔가.
2024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노동 보도의 빈약함이나 편향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고,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최소한 노동자들이 집회·시위를 왜 하는지를 언급하는 기사는 양적으로 늘어났다. 이제는 기계적 중립 차원에서라도 노사 양측의 주장을 담아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졌다. 하지만 노동 보도가 저널리즘 관점에서 본질적으로 좋아졌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양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때 제일 많이 활용되는 것이 여전히 ‘시민 불편’이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철 운행에 차질이 생기면 ‘불편’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불편을 감수해야 할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자체를 언론이 보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민을 불편하게 만든 모든 책임을 노동자한테만 지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언론은 주의해야 한다. 만일, 독자들이 ‘시민 불편’ 기사를 ‘노동자 때문’이라고 읽었다면 그건 명백한 언론의 문제다.
그래서 지하철·철도 파업을 앞두고 언론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사건의 발생 기사만 따라가는 기사 쓰기를 관두라는 게 그것이다. 발생한 사건에만 매몰되면 구조적 문제에는 접근하기 어렵다. 언론은 당장의 상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사안이 가진 맥락을 읽어야 한다.
이번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좁혀보면, 사측은 ‘재정난 해결 및 비용 절감’의 방안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과 외주화를 추진하겠다는 한다. 반면, 노조는 ‘시민 안전’ 확보를 위해 반대로 인원은 충원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안전 작업’에 대한 외주화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개인적으로 양측의 의견이 모두 터무니없다고 배척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는 주제다. 그 안에서 언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서울교통공사의 ‘만성 적자’ 그리고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발생할 ‘사건’을 쓸 수밖에 없다면, 그와 함께 이야기돼야 할 것들이 있다. 3호선 연신내역에서 전선 분류 작업을 하던 노동자의 감전사를 비롯한 노동자 5명이 올해에만 산재 사망했다. 20명이 넘는 정비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혈액암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것이 현 시스템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일터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그 안에서 시민의 안전은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자의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다.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래야 ‘시민 불편’이라는 단순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다.
- 덧붙이는 말
-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