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의 역사는 개악의 역사
노동법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인간다운 생활과 생존권을 확보를 위하여 헌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법규이다. 한국의 노동법은 1953년 최초로 제정됐다. 1960년대 이후 역대 정권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노동관계법에 대한 개정을 수차례 시도했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제정된 국가보위법은 제9조 1항에서 “비상사태 아래서의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또는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미리 주무관청에 조정을 신청하고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사실상 노동기본권을 부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활동을 억제하고 예산편성조차도 군사정권의 지침에 따라야 했다. 결론적으로 노동법은 ’국가권력의 이해관계나 필요‘에 따라 재편되었다.
군사독재정권 이후에도 노동법 투쟁은 ’개악 저지 투쟁‘이 주를 이루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의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도입,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악법, 이명박 정권의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 박근혜 정권의 단체협약 시정명령과 행정지침을 이용한 노동자탄압, 문재인 정권의 탄력근로제와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 축소 등에서 그랬다. 이처럼 역대 정권은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세력을 막론하고 노동3권을 체계적으로 무력화하고 노동 유연화의 제도적 완성을 목표로 했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혐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노동개혁 의제로 ‘주 120시간 노동’을 제시하며, 호봉제를 ‘세대 상생형’이라는 이름을 붙여 직무·성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임금체계개편 논의의 핵심은 노동자간의 임금격차를 해결하는 것이었기에 본질을 비켜 간 개혁은 맹탕으로 끝났다. 오히려 윤석열 정권은 노조탄압에 온 힘을 쏟아부었고, 결국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조합(노동자) 혐오’를 근간으로 한다. 건설노조를 ‘건폭’이라 규정하고 화물운송 노동자의 파업을 북핵 위협과 같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명분으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에 개입해 시정명령을 내린다거나, 터무니 없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개악을 추진했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추진해도 쉽지않은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 정권에 있어서 노동자란 박살내야할 내부의 적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했다.
노동약자지원법
2024년 11월 26일, 윤석열 정권은 추진 중인 노동개혁의 핵심으로 “노동약자지원법” 제정을 약속하며, △미조직 근로자 공제회 설치 지원 △노동 약자 분쟁조정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마련 △미조직 근로자 권익 보호와 증진을 위한 정부 재정 지원 등을 말한다. 나아가 해당 법안을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처럼 현행 노동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기 어려운, 사업주가 불명확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새로운 주장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부정하고 있다. 겉으로는 노동자를 호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를 헌법의 규정범위 바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약자지원법은 ‘노동자냐 아니냐’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공제회·분쟁조정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자본-노동조합’의 계급적 구조를 외면하고 뜬금없이 실체도 불분명한 ‘협동조합’을 강조하는 꼴이다.
백번 양보하여 법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작은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노동약자를 지원해 오던 노동권익센터, 비정규센터,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운영을 대폭 축소하고 폐쇄하면서 외치는 ‘노동권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가 먹힐리 만무하다. 이것은 비정규보호법안이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논리로 법제화하여 비정상 고용형태를 정상적 고용형태로 고착화시킨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비정규보호법은 법적 정당성을 부여받고, 그것을 확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를 갈라치는 데 성공했다.
거부권을 거부하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를 위해 노동약자법을 제정한다면 윤석열 정권은 거부권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제도에서 배제된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법을 적용하면 될 일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약자법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약자에게 노동할 권리와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며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두 번이나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약자법을 들고 나온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계급 외부로 배치하려는 전략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간의 연대 고리를 끊고 파편화함으로써 자본에게 힘을 보태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노동법 제정을 둘러싼 투쟁의 역사에는 자본과 노동에게 저마다의 이유와 근거가 있다. 또한 노동약자보호법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시혜를 베푸는 걸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시혜와 지원은 시대적 역행이라는 사실을 그간의 투쟁에서 우리는 확인해 왔다. 노동약자보호법은 '보호'를 빌미로 노동자계급을 분열과 약화로 내몰고 있다. 우리는 노조법과 근기법을 개정하여 노동자성 인정과 노조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조직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노동혐오를 거부한다. 거부권을 거부하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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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헌은 노동자역사 한내의 대표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