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은 끝났다

칼 슈미트에 따르면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주체이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헌법에 의하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있다그런데 계엄의 본질은 예외상태를 인정할 권한을 지도자에게 부여하는 것에 있다계엄은 민주주의에 부가된 형태로서 존재한다민주적 질서를 제한하는 조치가 민주적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는 아이러니한 장치인 것이다이는 민주주의가 혼란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따라서 지도자의 계엄 선포는 특히나 명분과 절차라는 점에서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3일 비상계엄 선포는 뭘로 보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비상계엄은 전시사변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해 선포하는 것이다조선일보는 4일 사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실제로 그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야당을 겨냥한 반국가행위’, ‘종북세력’,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 등의 수사를 내세웠는데이러한 수사를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는 야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 통과를 막고 장관 및 검사 탄핵안을 발의했다는 것 등이다그런데 이런 것들은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비상계엄 선포의 근거가 되기는 부족하다이런 일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오히려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정치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자초할 수도 있다.

출처: MBC 유투브 생중계 화면 갈무리 

절차의 문제를 따져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조선일보는 앞서 사설에서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통해야 하는데 이날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계엄 선포의 법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계엄법에 의하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에 이유종류시행 일시시행 지역 및 계엄 사령관을 공고하게 되어있다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긴급 담화에는 이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선포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 계엄사령관 명의로 나온 포고령 1호는 섬뜩한 느낌이다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가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계엄을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국회의 다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야당이 차지하고 있다포고령 1호의 국회와 지방의회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대목은 이 지점을 겨냥한 것처럼 느껴진다야당이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에 집결하면 이를 정치활동으로 규정해 현행범으로 체포구금하는 방식으로 계엄 해제를 막는 작전(?)을 입안했던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다실제 더불어민주당은 군에 의한 우원식 국회의장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정황을 보면군경의 저지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다행스럽게도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가결시켰으나 대통령이 이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본다글의 서두에서 강조한 것처럼 비상계엄이라는 맥락에서 대통령은 예외상태를 규정하며 초법적 권력을 행사한다명분이 없거나 절차를 지키지 않았더라도 일단 계엄이라는 예외상태를 전제한 구간으로 진입하면 상황은 자체 동력으로 어떻게든 굴러갈 수 있다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백기를 든 것은 명분과 절차의 문제라기보다도(그런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충실히 했을 것이다군경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상황 판단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이 정도로 고도화된 국가에서 이런 방식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국회에 무장한 군인들이 군홧발로 들이닥친 예가 또 있을까이런 일은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까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거였다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까마득히 후퇴시켰다이것만으로도 대통령은 이미 지도자의 자격을 잃었다야당의 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한다고 해도 내란죄를 피할 순 없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지 않다.

유권자들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을 육탄방어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을 주욱 지켜봐왔다여론조사상 20%대 지지율이 깨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실망한 상태지만 하야나 탄핵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예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다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못미더움이나 탄핵 피로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는 것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여당의 한동훈 대표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위법적이고 위헌적이라고 규정했다위법적이고 위헌적인 행위를 대통령이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위법적이고 위헌적인 행위를 대통령이 했다면그런 대통령에 대하여 여당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하겠는가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파면을 결정했다이번에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매직넘버’ 8명을 훌쩍 넘는 18명이다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끝났고이제 끝나야 한다.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