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마르크스가 왜 필요한가?

《가디언》2025년 7월

기술봉건적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칼 마르크스처럼 사고해야 한다기업들은 우리의 뇌를 자산으로 수탈하려 하지만우리는 다시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다.

최근에 만난 한 젊은 여성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순전한 악이 아니라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인이나 제도가 오히려 인류를 해치는 모습이었다그의 말은 내게 칼 마르크스를 떠올리게 했다마르크스가 자본주의와 싸웠던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착취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진보적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을 말살하고 소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 체제들은 자본주의보다 더 억압적이고 착취적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인간이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 환경으로부터 이토록 철저히 소외되고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이처럼 단절되며생각하고 행동할 최소한의 통제권조차 박탈당한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가 처음이다자본주의특히 그것이 기술봉건적 단계로 이행한 이후에는우리 모두가 칼리반(Caliban) 혹은 샤일록(Shylock)의 또 다른 모습이 되었다최신 장비가 만들어내는 물질적 풍요가 클수록 삶의 질은 역으로 저하되는고립된 자아들의 군도로 변해버린 것이다.

젊은 세대는 이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그러나 이민자에 대한 반감정체성 정치그리고 알고리즘이 그들의 목소리를 왜곡하는 현실이 그들을 마비시키고 있다바로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가 다시 등장한다그는 이 마비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조언을 남겼다그 조언은 지금 시간의 모래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서구 사회에 사는 소수자들은 동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그렇지 않으면 '낯선 이들의 사회'가 된다는 논리—를 보자마르크스는 25세 때 브루노 바우어라는 사상가의 책을 읽었다그는 마르크스가 존경하던 인물이었다바우어는 독일 유대인들이 시민권을 얻으려면 유대교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독일인들이 자유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유대인들을 어떻게 해방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그리고 유대인들이 독일인으로서 독일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해방하는 데 이바지해야지유대인으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마르크스는 격분했다.

비록 마르크스는 유대교는 물론 모든 종교를 경멸했지만그는 바우어의 논리를 격렬하게 비판했다다음과 같은 구절은 지금 봐도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우리는 반대로 이렇게 묻는다정치적 해방이라는 관점이 유대인에게 유대교를 폐기하라고인간에게 종교를 폐기하라고 요구할 권리를 주는가?… 국가는 유대인에 대해 기독교적 입장을 취할 때 전도(傳道행위를 하는 셈이며유대인은 유대인으로서 시민권을 요구할 때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요령은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을 포함한 종교적 자유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계급사회에서 국가가 결코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는 급진적 인식과 결합하는 방식이다그렇다유대인무슬림우리가 믿지 않거나 심지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즉시 해방되어야 한다여성흑인성소수자들도 사회주의 혁명이 도래하기 전에 이미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하지만진정한 자유는 그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이제 이민 노동자가 지역 노동자의 임금을 낮춘다는 주장이라는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는 매우 민감한 지점으로 옮겨가 보자이에 대해 마르크스가 1870년 뉴욕의 두 지인에게 보낸 편지는 나이절 파라지(Nigel Farage) 같은 인물뿐 아니라반이민 프레임에 빠진 일부 좌파들에 대해서도 훌륭한 해답을 제공한다.

마르크스는 이 편지에서 미국과 영국의 고용주들이 의도적으로 값싼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들을 토착 노동자와 경쟁시키며 노동자 간 연대를 약화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했다그러나 그는 노동조합이 아일랜드 이민자에게 등을 돌리고 반이민 서사를 채택하는 것은 자멸적 행위라고 보았다해결책은 이민 노동자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조직하는 것이었다문제의 원인이 노조의 약화나 재정 긴축에 있다면그 해결책은 이민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노동조합에 관해서도 마르크스는 탁월한 조언을 남겼다그렇다임금을 인상하고 착취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그러나 공정한 임금이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작업장을 진정으로 공정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일은 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다수와 소유는 하지만 일하지 않는 소수를 구분 짓는 이 불합리한 시스템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다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동조합은 자본의 침해에 저항하는 중심지로서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하지만기존 체제의 결과에 맞서 게릴라전만 벌이고그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실패한다.”

그렇다면 체제를 무엇으로 바꿔야 할까그것은 바로 ‘1인 노동자 = 1주식 = 1’ 원칙에 기반한 새로운 기업 구조다이는 공적 기금이나 실체 없는 소유주에 의해 움직이는 법인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게 진정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의제다.

마지막으로마르크스의 통찰은 빅테크와 거대 금융그리고 국가가 협력하여 우리를 몰래 가둔 기술봉건제’ 세계를 이해하려 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이 체제가 감시 자본주의보다 더 악질적인 형태임을 이해하려면우리는 마르크스처럼 사고해야 한다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본의 돌연변이—즉 클라우드 자본—으로 봐야 한다이 클라우드 자본은 우리 행동 자체를 조정하고 있으며경이로운 과학적 돌파신경망상상을 초월하는 인공지능들이 만들어낸 이 세계에서사유화와 사모펀드가 주변의 물리적 자산을 수탈하는 동시에클라우드 자본은 우리의 뇌를 수탈하고 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렌즈를 통해서만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개인이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우리는 집단적으로 클라우드 자본을 소유해야 한다.

[출처] Who needs Marx in 2025? The Guardian, July 2025 - Yanis Varoufakis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경제학자이자 그리스의 전 재무장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칼 마르크스 기술봉건적 지배 인간성 말살 인간성 소외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