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와 율리는 지난해 10월 국경을 넘을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이들 부부는 텍사스의 한 국경검문소에서 면접을 통과한 뒤 망명 신청 허가를 받았다. 필요한 서류 절차를 마친 후, 부부는 휴스턴으로 이주해 공식적인 노동 허가증을 받았다. 아바나에서 비공식 택시 서비스를 운영했던 리카르도는 트럭 운전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휴스턴에서 미국 운전면허증과 중고 혼다 차량을 취득했고, 상업용 트럭 운전면허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리카르도와 율리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현지 세차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4월, 국토안보부(DHS)는 국경에서 DHS 요원이 적법한 망명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심사했던 9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신분을 일괄 취소했다. 리카르도와 율리도 그 대상에 포함됐다. 서류와 노동 허가증이 없는 상태가 되자, 두 사람은 즉시 세차장에서 해고됐다. 1년 넘게 계획해 온 삶이 한순간에 불확실 속으로 내던져졌다.
이러한 임시 입국 허가 지위의 취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 100일 동안 이민 및 국경 단속과 관련해 발표한 181건의 행정 조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중 또 다른 행정명령은 특히 리카르도의 계획에 큰 타격을 입혔다. 5월, 트럼프는 모든 트럭 운전면허 신청자에게 고난도의 영어 능력 시험을 통과할 것을 요구하는 법률에 서명했다. 전문가들은 트럭 운전사 수백만 명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당 노동시장의 대다수가 스페인어 사용자인 만큼, 이 조치가 물류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3월에는 난민정착국이 망명 절차에 들어간 쿠바인과 아이티인에게 소액의 월별 지원금을 제공하던 바이든 행정부 시절의 프로그램을 더는 유지할 예산이 없다며 중단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에서 이 프로그램을 공격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온 이들에게 수천 달러를 준다는 허위 서사를 퍼뜨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리카르도와 율리에게 생명줄이었다. 두 사람은 첫 300달러 수표를 받아 코스트코에서 10킬로짜리 콩과 쌀을 사들였다. 쿠바에서는 만성적인 식량 불안과 반복적인 정전 속에서 생필품을 사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 샀어요”라고 율리는 말했다.
출처: Unsplash, Nitish Meena
합법적인 지위를 잃은 망명 신청자 대부분은 이전 행정부들이 만든 합법적 절차를 성실히 따른 이들이다. 리카르도와 율리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입국할 때 국경세관보호국(Customs and Border Protection, CBP)이 만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CBP One'을 사용했다. 이 앱은 2024년 6월부터 2025년 1월 트럼프가 해당 프로그램을 폐지해 미국의 망명 시스템을 전면 중단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망명을 신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앱의 폐지는 수만 명의 이주민을 멕시코에 발이 묶인 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2024년 4월, 트럼프 행정부는 ‘CBP One’ 앱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90만 명에게 자진 출국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리카르도와 율리는 노동허가를 잃었다. 5월에는 2024년 10월 리카르도와 율리와 함께 국경을 넘었던 CBP 원 그룹의 한 구성원이 국경세관보호국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은 “이제 당신은 미국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자진해서 쿠바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추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메일에는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인 ‘CBP Home’의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이민자들은 자진 출국 시 1,000달러를 지급받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들은 지정된 시설로 출두한 뒤 공항으로 이송되어 자국으로 송환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2억 달러의 광고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5월 기준 자진 출국을 선택한 사람은 5,000명에 불과하다.
해당 이메일은 그룹의 대표에게만 전달됐고, 리카르도와 율리에게는 직접 발송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조치가 자신들에게 해당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미국이민위원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으로 설명한 “혼란과 공포”를 느꼈다.
“이는 단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번 행정부가 미국의 행정 절차를 모두 따랐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합법적인 지위를 박탈하려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 어떤 구제 조치도 신청하거나 받을 수 없도록 전례 없는 차별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려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국제난민지원프로젝트의 변호사 해나 플람(Hannah Flamm)은 말했다.
노동허가증이 없는 리카르도와 율리는 시급 8~11달러 사이의 불법 공장 노동을 찾아 나서야 했다. 화장품이나 식료품을 포장하는 공장 조립 라인에서는 노동자들이 서로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10시간 근무 중 말을 하면 바로 해고된다. 율리는 “지난 9개월 동안 일한 시간이 내가 지난 52년간 일한 시간을 합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공장 노동자 다수는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로, 출산할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임신부들도 여럿 있다.
율리는 고국의 가족들이 여전히 경제 위기 속에서 살아가며 생계를 위한 송금을 기대하고 있어 자신들이 또 다른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대부분의 망명 신청자들처럼 애초부터 미국에 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다. 율리는 정전이 장기화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1,000달러가 넘는 태양광 발전기를 사주기 위해 돈을 모았다. “매달 왜 돈을 안 보내냐고 물으시는데, 나는 먼저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율리는 말했다.
입국 허가 지위를 상실한 뒤, 리카르도와 율리 모두 쿠바를 떠난 결정을 되돌아보게 됐다. 율리는 여전히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지만, 리카르도는 이주를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집과 자동차를 팔았기 때문에 돌아가더라도 과거보다 열악한 삶이 기다릴 뿐이다. “난 아무것도 없이 돌아가게 될 거다”라고 그는 말했다.
부부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1966년 제정된 쿠바조정법이다. 이 법은 원칙적으로, 미국에 1년 이상 체류한 쿠바인에게 영주권 취득을 허용한다. 하지만 부부는 망명 신청 절차의 일환으로 올여름에도 당국과의 추가 면담에 출석해야 하며, 그 전에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의해 체포되어 추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ICE는 하루 3,000명의 이민자를 체포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이 같은 요구는 체포 정책의 변화를 불러왔으며, 이제 ICE는 범죄 기록이 없고 찾기 쉬운 사람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CBP one’ 앱을 이용해 입국한 사람들은 정부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추적된 이력이 있어, 국토안보부(DHS)가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ICE 요원들은 가석방 지위를 상실한 망명 신청자들과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법원 밖에서 대기하며, 이들을 즉시 신속추방 절차에 회부한다. 이 절차에서는 항소 기회도, 법적 대리인도 없이 추방된다.
5월 이후, CBP One 앱을 사용해 미국에 입국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전국 법원에 출석한 직후 ICE 요원들에 의해 체포됐다. 판사가 이민자에 대한 추방 명령을 기각하더라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ICE는 여전히 해당 이민자를 체포해 신속 추방 절차에 회부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딜레마다. ICE에 체포될까 두려워서 법정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동으로 추방 명령이 떨어지고, 출석하면 거리에서 체포되어 즉시 추방된다. 리카르도와 율리는 망명 심리 전까지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어쨌든 추방될 수밖에 없다고 점점 체념하게 됐다.
“ICE는 이제 법을 따르고 있으며, 이 불법 외국인들을 신속추방 절차에 회부하고 있다. 이는 원래부터 그렇게 했어야 할 일이었다”고 국토안보부(DHS) 대변인 트리샤 맥러플린(Tricia McLaughlin)은 성명에서 말했다. 그는 이들 이민자 중 상당수가 미국 내에서 합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적법한 절차를 통해 입국했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로 인해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을 무시한 채, 무차별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내쫓으려는 데 집착하고 있다”고 한나 플램(Hannah Flamm)은 말했다. “일부 사람이나 정책이 법 위에 있다는 발상은 우리가 아는 미국에 파괴적인 일이다.”
불안과 노동에 지쳐버린 리카르도와 율리는 이제 아파트, 슈퍼마켓, 공장만을 오갈 뿐이다. “이건 우리가 상상했던 삶이 전혀 아니었다”고 율리는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 있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출처] The De-Documented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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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언 펄뮤터(Lillian Perlmutter)는 멕시코시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언론인이다. 그는 카리브해 지역을 중심으로 화산 폭발, 몸값을 노린 납치, 마리화나 합법화, 암시장 낙태 등 다양한 주제를 취재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