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자긍심'도 없다"...한국 성소수자들, "집단학살 공범" 미국 규탄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LGBT Pride Month)인 6월,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하는 한국의 성소수자·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규탄하고, 그에 공모하는 미국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 담론을 전쟁범죄 세탁에 활용하는 ‘핑크워싱’ 전략을 비판하며 “집단학살에 침묵, 공모하는 프라이드는 없다”고 단호히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주범 미국 규탄 한국 사회 성소수자 기자회견. Studio R 제공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이하 QK48)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은 6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학살의 주범이자,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고 이민자와 난민을 탄압하며 국제인권의 전 세계적 퇴행에 앞장서는" 트럼프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QK48은 성소수자 인권과 팔레스타인 평화운동 간 연대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팔레스타인 퀴어를 지지하는 활동가네트워크로 지난해 5월 발족했다. 긴급행동은 가자지구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 식민지배 중단을 위한 한국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로, 현재 239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이들 연대체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함께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부터 6월 20일 ‘세계난민의날’까지를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선포하고 다양한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첫 발언에 나선 화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QK48 활동가는 “팔레스타인 퀴어 동지들은 자신들의 몸과 삶, 관계가 분명 억압받고 있고, 그 억압의 주요 조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자행하는 점령, 봉쇄, 폭격이라는 죽음의 정치를 지적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연인을 폭격으로 잃고 애도조차 하지 못하고, HIV 감염 상태임에도 치료제를 제때 공급받을 수 없으며, 저항군 정보를 요구받으며 정체성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퀴어를 억압하는 팔레스타인, 퀴어를 구원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도식은 점령과 피점령 민중 사이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를 은폐하려는 무도한 선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은 현실을 가능케 한 국제적 공모 구조를 지적하며, “이스라엘이 병원을 폭격하고, 기자를 살해하고, 아이들을 굶겨 죽음에 이르게 하는 참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면서도 ‘자위권’을 운운하며 학살을 정당화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말하는 자들을 반유대주의로 몰아 범죄화”하는 미국을 규탄하고,  “미국은 시오니스트 로비의 악랄한 압력을 거절하고, 인종차별적이고 식민주의적인 대외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끝으로  “팔레스타인의 퀴어는 식민 지배가 종식된 팔레스타인에서 이웃들과 민주적으로 부대끼며 퀴어 해방을 직접 이룰 것이고, 한국의 퀴어는 그 여정에 함께할 것”이라며 연대의 의지를 밝혔다.

이호림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지구 한편에서 굶주림이 무기화되고, 협상의 도구로 악용되는 집단학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6월을 맞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집단학살과 이를 지원하고 동조하는 강대국의 존재는 존엄과 평등, 민주주의의 토대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며, “가자 점령과 주민 추방 계획을 거리낌 없이 내놓고, 유엔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노골적인 주범으로 나섰고, 트랜스젠더와 이민자, 난민을 탄압하며  군대를 동원해 평화시위를 진압하는 트럼프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은 억압과 배제에 맞선 저항의 역사”라며 “팔레스타인 해방과 성소수자 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해방이 실현되는 날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연대를 호소했다.

미국 대사관 앞, 성조기와 함께 선 팔레스타인 국기와 프로그레스 프라이드 깃발. Studio R 제공

아일린 팔레스타인학생공동행동 활동가는 “오늘날 파시즘은 핑크워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며 “이는 퀴어 연대를 가장해 아랍과 무슬림 공동체를 왜곡하고, 인종청소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프라이드 먼스에도 서구는 폭탄에 무지개를 칠하며 학살을 가린다”며, “하지만 프라이드는 그 자체로 저항이고, 마샤 P. 존슨과 같은 유색인종 트랜스 여성들이 이끈 스톤월 항쟁의 해방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서울 퀴어퍼레이드에서 미국과 독일 대사관이 ‘진보적 동맹국’을 자처하며 흔드는 무지개 깃발에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죽인 팔레스타인인들의 피가 묻어 있다”고 지적하며 “학살, 점령, 식민주의에 자긍심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의 퀴어함은 제국주의가 휘두를 무지개 장식이 아니라 복종을 거부하고 체제를 뒤흔드는 결단이며, 해방을 향한 투쟁의 맹세”라며, “해방이 자긍심이고, 연대가 무기이며, 혁명이 길이다.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 없이는 퀴어 해방도 없다”고 힘 주어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국 정부는 성소수자여성빈민장애인유색인종이주노동자 탄압에 앞장서는 자국 사회에 대한 성찰 없이 팔레스타인에 인권 탄압과 야만의 낙인을 집중시키고이스라엘과 더불어 대테러 민중 구원 세력으로 자처하며 점령과 봉쇄와 학살의 현실을 가리는 핑크워싱을 비롯한 모든 기만을 그만두라"면서 "팔레스타인의 운명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결정한다"고 짚었다. 

또한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쫓아내고 유대민족만을 위한 국가를 정착시킬 권리가 이스라엘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큼미국에도 가자지구를 ‘소유하고 ‘개발할 그 어떤 권리나 자격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정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한시라도 빨리 해제하고 영구 휴전하도록 최고 수위의 외교 수단을 동원하여  시오니스트 국가를 압박하라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과 식민 지배를 종식하도록 모든 가용 채널을 가동하여  시오니스트 국가를 제재하라팔레스타인 해방을 열망하는  누구의 말도 검열하지 말라가자지구 주민과의 연대를 표하는  누구의 몸도 가두거나 단속하지 말라국제 사회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다하라”고 경고했다. 

QK48, 긴급행동, 무지개행동 등은 이날 기자회견 이후에도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의 다양한 실천활동을 이어간다. 현재 "집단학살에 침묵, 공모하는 프라이드는 없다. 팔레스타인의 반식민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루되자"라는 한국 성소수자-팔레스타인 연대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며, 오는 6월 20일(금) 오전 11시 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연대 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다. 이에 앞서 6월 14일(토) 오후 2시에는 이스라엘대사관 인근 청계천변에서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43차 긴급행동이 "집단학살에 맞서는 우리, 퀴어한 존재들"을 주제로 열린다. 참가자들은 이날 긴급행동에 참여한 이후 같은 날 진행되는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진 대열에 합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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