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주] 지난 14일,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별세했다. ‘페페 무히카’라는 별칭을 가진 그는 좌파 연합 ‘프렌테 암플리오’(FA)를 대표해 2010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당시 브라질의 룰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함께 남미 좌파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함께 빈곤율과 실업율을 낮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임신중지 합법화와 동성결혼 합법화 등으로 관심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 당시 관저에서 생활하기를 거부하고 검소하게 사는 모습이 알려져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프렌테 암플리오’는 최대 의석을 확보하고 있으며 무히카의 정치적 후계자로 알려진 야만두 오르시가 작년 11월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 글은 2025년 9월, 버소(verso)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21세기를 살아남기(가제)⟫에서 발췌한 글로 이 책은 노엄 촘스키와 호세 무히카가 함께 썼다.
고(故) 우루과이 국가지도자 호세 ‘페페’ 무히카는 자본주의가 단지 소유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가치체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좌파가 이에 맞서기 위해 연대의 문화를 창조하고 대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처: FA 공식 홈페이지
내 세대는 사회 변화를 단지 생산과 분배 체계를 바꾸는 문제로만 여기는 순진한 오류를 저질렀다. 우리는 문화가 지닌 엄청난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문화이며,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다른 문화를 통해 응답하고 저항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연대의 문화와 이기심의 문화 사이의 투쟁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상업적으로 팔리는 음악이나 춤 같은 것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문화는 인간관계를 뜻한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일련의 관념 체계다. 그것은 전 세계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결정하는 암묵적 가치들의 집합이다.
소비주의는 그 문화의 일부다. 자본주의가 무한한 축적을 지향하는 투쟁에서 요구하는 윤리다. 자본주의에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소비를 멈추거나 매우 적게 소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를 휘감고 있는 소비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사회 체계는 단지 소유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공통된 무언의 가치들이기도 하다. 이 가치들은 그 어떤 군대보다도 강력하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를 유지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내 세대는 언론과 유통을 국유화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싸움의 중심에 다른 문화를 건설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건물을 자본주의적 석공들과 함께 지을 수는 없다. 왜냐고? 그들은 철근을 훔치고, 시멘트를 훔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세대는 이성주의적이며 역사에 대한 프로그램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이 종종 본능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그 후 양심이 그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슴으로 선택하고, 이때 문화는 우리의 비합리성을 절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좌파 지도자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좌파 지도자들 역시 그 문화에 병들어 있고, 푹 잠겨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의 방식은 자신들의 투쟁과 일치하지 않는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나를 보고 대통령 시절 ‘가난하다’고들 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나의 목표는 금욕주의자(stoic)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세상이 낭비하지 않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배우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돈에 대한 탐욕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을 사게 만든다. 하지만 지구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우리는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며,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 투쟁은 문화적 서사이자 문화적 전쟁이다. 우리는, 좌파는, 기존과는 다른 사유의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이디어 면에서 창의성을 다 소진했다. 자본주의가 하던 것을 더 평등하게 하려 했을 뿐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가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삶에서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지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절제의 감각, ‘지나치지 않음’,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했던 그것이 필요하다.
좌파는 다른 가치 체계에 충실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문화의 문제, 헌신의 문제, 자본주의가 가치 두지 않는 삶의 특정 영역들을 소중히 여기는 문제를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풍요로 가득 차 있음에도 많은 슬픔에 빠져 있다.우리는 과잉 공급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에 질식하고 있다.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사고, 청구서를 갚느라 절망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좌파는 이제까지보다 더 혁명적이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투쟁은 자기 관리적 사회, 즉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을 이끌고 공동 프로젝트를 운영할 줄 아는 사회를 위한 투쟁이다. 이것은 새로운 좌파가 반드시 토론해야 할 주제다. 나는 좌파는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좌파가 아니다. 과거는 지나갔다! 좌파는 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변하기 때문이다. 변화만이 유일한 영속성이다.
나는 새로운 혁명적 프로그램 창출에 장애물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하지만 나에겐 마법의 공식은 없다. 나는 창의성이 격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대한 향수에 갇힌 낡은 좌파, 왜 실패했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좌파, 새로운 길을 상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좌파와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많은 리허설, 많은 실험, 많은 창의성의 시대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가 따라야 할 몇 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세대는 문화에 충분한 중요성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문화는 사람들이 평범한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문화다. 오늘날 자본주의 아래에서 이 문화는 일상의 모든 사건을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문화는 개별적 이윤을 증식시키는 데에만 기능하는 구조다. 이 문화는 군대나 무력보다 훨씬 강력하다. 왜냐하면 이 문화는 전 세계 수백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핵폭탄보다도 강력하다! 따라서 문화를 변화시키는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체제를 바꾸는 일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새로운 체제를 건설해야 하며, 동시에 새로운 문화, 새로운 윤리도 함께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련에서 보았던 일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혁명 운동이 완벽히 360도 회전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그 패배에서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Pepe Mujica: My Generation Made a Naive Error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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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9월, 버소(verso)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인 ⟪21세기를 살아남기(가제)⟫에서 발췌한 글로 이 책은 노엄 촘스키와 호세 무히카가 함께 썼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