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은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대!”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던 날, 나는 영화동아리 친구들과 망원동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행 중 가장 먼저 소식을 들은 건 나였다. 평소에 TV를 틀어두는 습관이 있던 정덕(정치 덕후) 애인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목격했고, 곧바로 내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정보의 유통망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접한 소식을 주변 친구들과 나누며, 각기 다른 창구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퍼트렸다. 그다음으로 소식을 접한 곳은 내가 속한 ‘인의협’(진보적 의제를 공유하는 의사 단체)의 텔레그램 방이었다.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사람들이 언론사 기사를 모니터링하고, 관련 속보를 즉시 공유했다. 빠르게 오가는 소식들 속에서 나는 중요한 순간에 정보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에 묘한 고양감을 느끼기도 했다.
가장 활발하게 대화가 오간 것은 또 다른 대학 영화동아리 친구들 -나는 친구를 영화동아리에서만 사귄다- 카톡방이었다. 인터넷을 많이 하는 30대 여성들이 몇 시간 동안 계엄과 관련된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통금 생기면 마켓컬리 배달은 어떡하냐” 같은 농담 섞인 말부터, 국회의 특별의결정족수와 같은 법적 요건까지, 각자 불안감을 덜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소용돌이 같았던 계엄 당일 이후, 나는 주로 트위터의 뉴스 큐레이팅 계정과 유튜브의 MBC, JTBC 라이브 방송을 통해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했다. 정보의 속도보다 정확성이 중요한 시점이었기에 레거시 미디어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얻고자 했지만, 그것을 직접 소비하기보다 나에게 익숙하고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을 이용해 접했다.
MBC 유튜브 라이브 화면
SNS로는 주로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접했다. 대표적인 예가 ‘남태령 대첩’이었다. 전국농민회에서 윤석열 구속을 요구하며 트랙터를 몰고 상경하던 중, 남태령에서 경찰에 제지를 받은 사건이었다. 원래는 집회에 참여할 계획이 없었는데, 아침에 트위터와 텔레그램을 확인하자 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들의 수많은 영상과 사진이 공유되어 있었다. 이에 서둘러 준비해 현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현장에는 나와 같은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고, 늘어난 인원 때문에 결국 경찰은 제지선을 풀었다. SNS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내가 직접 집회에 참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사례였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 출처: 한국농정신문
SNS는 내가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번 탄핵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려고 노력했다. 상대적으로 탈 정치화된 공간이라 생각했지만, 평소 이 주제에 대해 대화해보지 않았던 지인들이 응원과 공감의 메지를 보내왔다. 이런 경험은 SNS가 우리가 서로를 확인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나는 인생의 반을 트위터를 사용해 왔고, 오래 사용해 온 만큼 관심있는 정보가 나에게 닿을 수 있도록 타임라인을 공들여 구성해 왔다. 계엄 상황에서도 실시간으로 정보가 내 피드에 흘러 들어왔으나 계엄 당일만큼은 오히려 TV와 인터넷 신문이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느껴졌다. 초유의 사태였던 만큼 언론인들이 집중적으로 현장을 보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빠르게 전달되는 정보 속에서 부정확한 내용도 오갔다. 예를 들어, ‘11시 통금’이 선포되었다는 합성 이미지가 트위터와 카톡방에 퍼졌지만 곧 정정되었다. 정보 확산이 빠른 만큼 오류도 빠르게 수정되어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전파하는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진위가 의심되는 사실은 검색을 통해 교차 검증을 한 후 공유했다. 다만, 비상계엄이라는 사태 자체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SNS에 퍼진 합성 이미지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와 실제 현장의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집회에 가려다 실수로 시청역에 내려 수많은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사이를 지나야 했을 때, 인파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비난을 들으며 이들의 세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만 접할 수 있는, 내 주변과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나는 비상계엄이라는 사건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는 사건의 흐름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고, SNS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며 현실과 연결되는 창이 되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 즉 내 인적 네트워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온 덕분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 받고, 감정을 나누며 함께 행동할 수 있었다. 네트워크가 넓은 만큼 부정확하거나 혼란스러운 정보도 간혹 있었지만, 다양한 시각에서 교차 검증할 수 있었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기회도 많았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미디어를 경험하는 방식이 단순한 뉴스 소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걸 실감했다. 초유의 사태 속에서, 내가 선택하고 구축해 온 정보망과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고, 행동을 이끌었다. 결국, 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이 곧 내가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이 되었다.
- 덧붙이는 말
-
이재은. 세상의 모든 정보와 경험을 궁금해했더니 인터넷 중독자가 되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