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아갈 곳은 농성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30년을 일해 온 우리의 일터입니다.”
한가위를 앞둔 15일 청와대 앞에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섰다. 누군가는 불탄 공장을 떠난 뒤 4년을 거리에서 보냈고, 누군가는 해고된 지 700일을 넘겼다. 8개월 동안 100㎞를 걷고 오체투지를 하고 단식까지 한 노동자도 있었다. 10년 넘게 복직을 기다린 노동자도 있었다. 이날 이들이 정부에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더 이상 기다리라고 하지 말고, 추석에는 농성장이 아니라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출처: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한가위 명절은 농성장이 아닌 가족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투쟁 사업장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라고 촉구했다.
홍지욱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설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가 잠시 관심을 보였다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뒤로 물러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권과 정부는 그때만 반짝 관심을 가지고” 나섰다가 기업이 버티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고” 사태는 장기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장기 투쟁 노동자들의 고통을 방치하지 말고 일터에서 건강하게 일하고 안전한 일상이 회복될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나영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공장 화재로 일터를 잃은 뒤 4년째 싸우고 있다. 그는 불탄 공장 옥상에서 6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고공농성을 끝낸 것도 싸움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고 했다. 정 수석부지회장은 이날 “저희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4년 동안 길거리에서 싸워온 노동자들이 이제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이수기업 해고노동자들의 시간도 700일을 넘었다. 안미숙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이수기업해고자 대표는 현대차가 2024년 8월 이수기업 폐업을 공고하고 이듬달 노동자 34명을 정리해고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이 해고가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막농성도 500일을 넘어섰다. 안 대표는 현대차가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성실교섭을 약속했지만 교섭에서는 “기존 관례대로의 고용승계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에 정리해고 철회와 고용승계를, 고용노동부에는 근로감독 결과 공개를 요구했다.
우창코넥타 노동자 80명은 일터에서 쫓겨난 지 8개월째다. 이들은 거리와 농성장, 청와대를 오갔고 100㎞를 걸었다. 오체투지를 했고 단식도 했다. 지금은 광화문에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10만 배를 이어가고 있다. 회사는 파산했고 노동자 80명과 협력업체 노동자 등 천여 명이 피해를 떠안았지만, 모베이스는 기업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한선이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위원장은 “왜 해고노동자들의 시간과 국회의 시간이 다릅니까. 왜 거리에서의 시간과 청와대 안의 시간이 다릅니까”라고 물었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파산 과정의 진상규명과 특별근로감독, 그리고 무엇보다 고용보장이었다. 그는 “정부는 더 이상 기다리라고 하지 마십시오. 검토하겠다는 말로 시간을 끌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 “다시 출근하고, 다시 기계를 돌리고, 다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해결”이라고 말했다.
출처: 민주노총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은 10년 넘게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고진수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상을 빼앗긴 채 긴 시간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바뀌면 달라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긴 싸움을 견디게 한 힘은 거리에서 함께한 연대자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를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조합을 만든 뒤 3년째 갈등을 겪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와 7년째 노조 탄압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좋은책신사고 노동자들도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고현선 민주일반노조 동물권행동카라지회장은 부당징계와 전보, 부당노동행위가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감독을 요구했다. 정철훈 언론노조 좋은책신사고지부장은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과 노동부 조사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 노동자들도 장기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대림교통분회장은 지난 3월부터 인천의 20m 통신탑에서 택시월급제 시행과 간주근로제 폐지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최세호 택시지부장도 실제 노동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데도 하루 3.5시간만 일한 것으로 보는 간주근로제가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고착시키고 있다며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노동자들의 사업장과 해고 사유, 싸워온 기간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반복해서 꺼낸 말은 ‘일터’, ‘가족’, ‘일상’이었다. 수년간 거리에서 요구한 것도 결국 다시 출근하고, 일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민주노총과 가맹조직 임원들은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을 만나 각 사업장의 현안과 요구를 전달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더 이상 장기투쟁 사업장을 개별 기업의 문제로 남겨두지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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