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시행 22주년을 하루 앞둔 16일 이주노동자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재고용 보장,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 중단을 촉구했다. HD현대중공업과 전북 김제 일강에서 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이 임금 삭감과 재계약 거부 등에 맞서 집단행동에 나선 가운데, 노동계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이주노동자의 체류 자격과 고용을 사업주에게 종속시키는 제도 문제로 확대해 제기했다.
금속노조는 1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이주노조, 사람이왔다_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이주노동자평등연대와 함께 '이주노동자 투쟁 승리! 2차 전국공동행동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까지 행진했다. 이번 집회는 지난 7월 5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열린 1차 공동행동에 이은 두 번째 전국 행동이다.
출처: 금속노조
금속노조는 정부가 준비 중인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 발표가 늦어지는 가운데 고용허가제 시행 22주년인 17일을 앞두고 사업장 이동 제한과 체류 불안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 특히 조선소에 집중된 E-7-3 노동자들이 1년 이내의 단기계약을 맺으면서 재계약 때마다 고용과 체류 불안에 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제도적 종속이 임금과 노동조건, 노조 활동 문제와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5월 회사가 직접고용 E-7-3 이주노동자들에게 기본급을 20여만 원 삭감하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하는 내용 등이 담긴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계약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잔업·특근 배제와 계약 연장 거부 가능성 등을 통보받았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7월 5일 1차 전국공동행동을 계기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에 집단 가입했다.
투쟁 이후 일부 변화도 있었다. 회사는 7월 중순 그동안 공제했던 식대를 노동자들에게 소급해 돌려줬다. 그러나 기본급 삭감과 성과차등임금제 등 새 계약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지난 7월 18일에는 HD현대중공업에서 일하던 2000년생 우즈베키스탄 출신 하청노동자가 곤돌라를 이용해 작업하다 곤돌라 본체와 족장 사이에 끼여 숨지는 중대재해도 발생했다. 금속노조는 임금 차별과 함께 위험한 노동조건 역시 바뀌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스리랑카 출신 챠리타 조합원은 같은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특별하거나 특이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E-7-3 직접고용 노동자들이 약속받은 임금 수준을 받지 못한 데 이어 기본급 삭감까지 요구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노동자로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출처: 금속노조
전북 김제 일강에서는 노조 가입과 재계약 문제가 쟁점이 됐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일강지회 소속 이주노동자들은 회사가 금속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다며 지난 11일 오전 5시부터 김제공장 사무동 1층 로비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일강지회 방글라데시 출신 알리 조합원은 회사에 재계약이 되지 않는 이유와 평가 결과 공개를 요구했지만 '보안'을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알리 조합원은 "같은 계열사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유독 금속노조에 가입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단순한 재계약 문제가 아니라 노조 탄압이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자와 재계약을 이용한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평가 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사업장 이동 제한 문제도 제기됐다. 오세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장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E-9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길 경우 우즈베키스탄 대외이민청에 2천 달러, 약 300만 원의 벌금을 내겠다는 내용에 서명하도록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오 지회장에 따르면 성평등가족부는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나 이탈보증금 때문에 사업장을 옮기기 어려운 경우를 경제적 통제에 해당하는 문제로 보고 고용노동부와 법무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고용노동부도 우즈베키스탄 정부 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개별 기업의 문제 뒤에 현행 이주노동 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극단적으로 종속돼 있다"며 사업장을 자유롭게 그만두거나 옮기기 어려운 구조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 계약 연장이나 체류 문제가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보장하고 현행 고용허가제를 노동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부위원장도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지 않도록 싸우겠다"며 비자 제도 개선과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요구했다.
금속노조와 이주노동단체들은 HD현대중공업과 일강에서 진행되는 투쟁을 개별 사업장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업장 이동과 체류권, 노조할 권리를 둘러싼 공동투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주노조는 오는 9월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열고 사업장 변경의 자유와 노동권 보장, 노동허가제 도입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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