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런던 그리니치대학교에서 세계정치경제학회(WAPE)제19차 총회가 열렸다. WAPE는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학 학술단체로, 전 세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을 연결한다. “편향돼 보일 수도 있지만, WAPE의 포럼과 학술지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변화를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을 여전히 제공한다. 전 세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WAPE에 가입하고 WAPE 포럼에 참석할 수 있다.”(WAPE 사명 선언문)
올해 학술대회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정치경제학에 기여한 바를 주제로 삼았다. 스미스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즉 『국부론』을 출간한 지 250년이 됐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정치경제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했으며, 오늘날 주류에서는 이를 경제학이라고 부른다.
WAPE 회장이자 중국사회과학원의 청언푸(Cheng Enfu, 程恩富)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 이론을 주제로 학술대회에서 연설하면서, 스미스가 ‘자유방임’과 자유시장 경제학의 대가로 자리매김했지만 실제로는 자유시장만을 옹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사회적 분업과 도덕적 규범, 국가의 역할이라는 틀 안에서 근대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설명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각 개인이 자신의 경제활동을 추구할 때, 이 모든 개인의 행동이 결합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생산과 소비의 시장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개인은 인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들의 행동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 배경에는 근대 산업이 분업을 기반으로 한다는 스미스의 탁월한 통찰이 있었다. 상품 생산 과정을 각각의 개별 공정으로 나누고 노동자가 모든 공정을 담당하는 대신 각자가 특정 공정에 전문화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비용과 가격은 낮아진다.
그러나 도쿠즈 에일륄대학교(Dokuz Eylul University)의 도안 괴치멘(Dogan Gocmen)이 기조연설에서 설명했듯이, 스미스의 견해에는 외견상 모순이 존재한다. 스미스는 그보다 앞서 쓴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에서 『국부론』이 분석한 상업사회를 윤리적 관점에서 비판했다. 따라서 괴치멘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 애덤 스미스의 견해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스미스의 기여를 다룬 세션이 많이 열렸으며, 스타브로스 마브루데아스(Stavros Mavroudeas)가 발표에서 표현했듯이 많은 발표자가 ‘신자유주의로부터 스미스를 구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카고대학교의 조지 스티글러와 밀턴 프리드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를 ‘자유시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스승으로 삼았다. 마거릿 대처 같은 우파 자유시장 정치인들도 스미스를 추앙했고, 그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아 정부와 국가의 규모를 축소하고 사회 조직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이 지배하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오스트리아학파 같은 세계적인 자유시장 경제학자들도 자신들의 기본적인 접근법을 스미스에게서 찾는다. 영국에는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싱크탱크’도 있으며, 이 기관은 명확한 ‘자유시장’ 원칙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개발한다고 주장한다. 이 기관의 슬로건은 “자유시장을 활용해 더 부유하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이다.
그러나 스미스는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인간의 행동을 물질적 자기이익만으로 설명했던 극단적인 자유시장 전도사가 아니었다. 스미스가 정부의 역할을 반대하고 물질적 이해관계보다 도덕적 행동을 중시하는 태도에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신화다.
그러나 청언푸가 지적했듯이,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적 성취, 특히 노동을 부 창출의 근본적인 원천으로 규정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스미스의 노동가치론에는 모순이 있다고 봤다. 스미스는 노동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견해를 고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가치를 노동이 창출한 뒤 지주와 은행가, 자본가가 이를 전유한다고 보는 대신 지주의 지대, 자본가의 이윤, 노동자의 임금이라는 ‘생산요소’에 기초한 가치이론으로 되돌아갔다.
오늘날 현대 주류 경제학은 스미스의 ‘생산요소’ 이론을 지배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노동가치론은 폐기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애덤 스미스의 ‘모순’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가 해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모순에 빠짐으로써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그의 올바른 직관은 그의 후계자들이 그의 가르침 가운데 어느 한 측면을 근거로 서로 대립되는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잉여가치론』(Theories of Surplus Value) I, 151쪽.
마르크스는 또한 스미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유토피아이자 영원하고 자연스러운 질서로 취급하면서,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제시한 자본주의의 역사적·과도기적 성격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올해 학술대회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주제로 삼았지만, 세계 각지에서 참석한 150여 명의 참가자들은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며 지식의 본질, 제국주의, 인공지능(AI)과 기술혁신, 가치론, 그리고 물론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 짧은 글에서 이 모든 논문을 다룰 수는 없다. 여기서는 내가 발표한 세션과 직접 참석한 몇몇 세션에 집중하겠다.
마르크스주의 자본순환론을 다룬 세션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쪽의 앨런 프리먼과 귀도 데 마르코는 마르크스가 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환되고 다시 자본순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불균형 이론으로 설명했다고 본다. 반대편의 프레드 모즐리는 시장가격과 자본순환이 장기 균형 생산가격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이 논쟁의 세부 내용이나 그 함의를 다루지 않겠다. 대신 독자들에게 프리먼과 데 마르코가 편집한 신간 『화폐, 가치 그리고 마르크스의 자본순환』(Money, Value and Marx’s Circuit of Capital)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여러 저자가 자본순환을 둘러싼 각자의 논거를 제시한다.
나는 제국주의적 착취를 다룬 세션에서 발표했다. 여기서 나는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한 세계의 빈곤국들이 1인당 소득이나 생산성, 인간개발 수준에서 부유한 글로벌 노스와의 격차를 결코 좁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만이 예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을 제외하면 BRICS 국가 가운데 향후 20년 안에 현재 고소득 국가의 수준을 따라잡을 나라는 없다. 중국은 2041년이면 현재 고소득 국가의 수준에 도달하고, 2046년이면 그해 고소득 국가들의 예상 수준과 같아질 것이다.

중국은 2039년이면 부유한 경제권의 현재 ‘인간개발’ 수준, 즉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HDI)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2046년 부유한 국가들의 예상 평균 HDI 수준에 도달하려면 2046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른 모든 BRIC 국가는 한 세대 안에 이 두 목표 가운데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주된 이유는 부(가치)가 글로벌 사우스에서 글로벌 노스로 지속적으로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에서는 수익성이 하락하는 속도가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는 속도보다 빠르며, 그 결과 투자 증가율도 낮아진다. 중국은 예외일 수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다른 주요 경제국보다 중국에서는 수익성이 투자 증가를 결정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이다.
같은 세션에서 홍콩대학교의 마이클 티랄라는 역외 조세회피의 규모와 이것이 특히 빈곤국 정부의 경제개발 역량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제시했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2015년 기준 세금을 내지 않은 금융자산 가운데 7조 6,000억~36조 달러가 역외에 숨겨져 있었으며, 그 규모는 매년 2,000억~8,500억 달러씩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이 이로 인해 불균형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은닉 자산은 전 세계 금융자산의 8~38%에 해당하며, 전 세계 금융·비금융 자산 총액 250조 달러의 3~14%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제공한 공적개발원조(ODA)는 1,530억 달러에 불과했다.
포천 500대 다국적기업 가운데 73%, FTSE 100 기업 가운데 98%가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 포지션 가운데 약 12조 달러, 즉 거의 40%는 완전히 인위적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실질적인 활동이 전혀 없는 페이퍼컴퍼니를 거쳐가는 금융투자”로 구성되며,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러한 “유령 FDI는 실제 FDI보다 빠른 속도로 계속 급증하고 있다.”(Damgaard, Elkjaer and Johannesen 2018; 2019)
고액자산가와 다국적기업이 국제적으로 벌이는 조세회피와 탈세는 각국 정부가 확보할 수 있는 세수를 크게 잠식하고 소득과 자산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조세피난처에 있는 전체 자산 가운데 약 50%를 상위 0.01%가 소유하고 있으며 약 77%를 상위 0.1%가 소유한다. 또한 이러한 조세회피는 가장 부유한 기업들에 불공정한 경쟁우위를 제공한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이들 기업이 적용받는 세율은 국내에서만 사업하는 비슷한 기업이나 중소기업(SME), 스타트업보다 약 4~8.5%포인트 낮다. 그 결과 혁신도 위축된다. 규제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다른 금융화 세션에서는 나도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질병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다. (내 논문의 발표자료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좌파와 비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쓰인다. 많은 사람은 ‘금융화’가 노동 착취에서 나오지 않는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즉 금융자본의 부상과 독점적 지배, 노동자와 생산적 자본가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행위에서 새로운 소득이 발생하며, 다시 말해 이윤이 아니라 지대에서 소득이 나온다고 본다.
그러나 ‘금융화 학파’의 주장과 달리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실증연구에 따르면 금융소득은 기업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며, 생산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금융투자를 자본축적 과정에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본다. 마르크스는 이를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에 대한 투자라고 불렀다. 생산부문의 이윤율이 하락하면 금융·투기 부문에 축적된 자본이 생산부문보다 높은 이윤율을 얻으려고 움직이는 현상을 뜻한다.

이 세션에서 마브루데아스와 폰티스는 금융화 관련 문헌의 상당 부분이 가공자본을 ‘가상자본(virtual capital)’으로 취급한다고 주장했다. 즉 생산과 독립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며, 인간 노동에서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박탈’을 통해 착취하는 자율적인 영역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케인스주의적 관점이다.
마르크스에게 가공자본은 이자 낳는 자본이 수행하는 특정한 기능이다. 가공자본은 미래에 잉여가치를 추출할 수 있다는 기대에 거는 베팅이며, 따라서 여러 단계에 걸쳐 생산과 분리돼 있더라도 여전히 생산영역과 연결돼 있다. 가공적이라는 말은 가상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금융이윤은 여전히 잉여가치를 재분배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하고 싶다. 올해 WAPE 평의회는 내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크게 기여했다’며 상을 수여했다. 아주 묵직한 청동 지구본과 함께 말이다! 수상 연설문은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출처] WAPE 2026: Adam Smith, imperialism and financialisation – and an award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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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