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가 미군에 의해 납치된 뒤 델시 로드리게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차비스타 진영에서 오랜 이력을 쌓아왔지만, 국가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 속에서 험난한 싸움을 마주하고 있다.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와 호르헤 로드리게스(Jorge Rodríguez·왼쪽)는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지도 체제를 시작할 태세를 갖췄다. 출처: oscar villa
트립틱 룸(Triptych Room)은 베네수엘라 연방입법궁을 짓누르는 세 개의 음울한 권력의 장면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장면들은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의 내밀한 삶을 비춘다. 몬테 사크로에서 스승에게 한 약속, 지친 병사들에 둘러싸여 깊이 사색하는 순간, 그리고 카리브해에서 결핵으로 맞이한 외로운 죽음이다.
이 엄숙한 장면들 아래에서, 올해 1월 5일 델시 로드리게스는 치밀하게 연출된 대통령 취임식에서 니콜라스 마두로의 후계자로 취임 선서를 했다. 마두로가 미군에 체포돼 뉴욕으로 이송돼 마약 테러 혐의로 기소된 이후 전 세계가 이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나 이 행사는 거의 30년 가까이 권력에 집요하게 매달려 온 소수 인물 사이의 가족 행사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로드리게스의 왼편에는 마두로의 외아들인 니콜라시토(Nicolasito)가 서 있었다. 그는 국회의원이었고, 붉은 벨벳 쿠션 위에 베네수엘라 헌법을 받치고 있었다. 델시는 한 손을 헌법 위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을 들어 선서하며, 국회의장으로 그녀 앞에 선 오빠 호르헤 로드리게스를 올려다봤다. 연단 위에서 델시와 호르헤는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킬 준비를 마쳤고, 니콜라시토는 마두로의 상징적 재현으로서 그 위에 자리했다.
델시는 돌아가신 아버지 호르헤 안토니오 로드리게스의 이름과 베네수엘라의 모든 어린아이를 위해 호르헤에게 대통령 선서했다. 델시와 호르헤 역시 어린아이였던 날, 아버지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76년 7월, 로드리게스는 미국 사업가 윌리엄 니하우스 납치 혐의로 베네수엘라 정보기관에 구금된 상태에서 사망했다. 부검 결과 갈비뼈 일곱 개가 부러졌고 내부 출혈이 확인됐다. 서른네 살의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였다.
로드리게스의 짧은 성인 인생은 정치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교를 막 졸업하자마자 신생 자유주의 정당의 청년 조직에 들어갔고, 이후 더 급진적인 반체제 그룹으로 옮겨 1968년 카라카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베네수엘라는 격동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미국과 동맹을 맺은 중도 정부는 쿠바 혁명으로 촉발되고 좌파 분열과 함께 확산한 게릴라 운동을 진압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무장 조직의 온상으로 여겨졌던 그의 모교 베네수엘라 중앙대학교(Universidad Central de Venezuela, UCV)는 이 시기 반복적으로 폐쇄됐다. 1970년대 초가 되자 로드리게스는 혁명적 무장 투쟁의 저명한 옹호자가 됐고, 사회주의 연맹(Socialist League)이라는 레닌주의 조직을 창립하며 그 목표를 추구했다.
국내에서 악명을 얻던 로드리게스는 니하우스 납치 사건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니하우스는 유리 제조업체 오언스일리노이(Owens-Illinois)의 부사장이었고, 1976년 2월 27일 카라카스의 부유한 교외 지역 자택 앞에서 납치됐다. 베네수엘라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이 납치 사건은 중대한 지정학적 파장을 낳았다.
인질범들은 오언스일리노이에 350만 달러의 몸값 지급, 빈민층에 대한 식량 배급, 직원 200명에게 각 100달러 지급, 그리고 기업과 정치의 부패한 결탁을 고발하는 선언문을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런던 타임스>(London Times), <르몽드>(Le Monde)에 게재할 것을 요구했다.
경영진이 이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하자 베네수엘라 대통령실과의 관계는 악화했다. 당시 정부는 국내 반란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미국 내각 산하 테러 대책위원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비국가 행위자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납치된 지 3년이 넘은 뒤, 니하우스는 우연히 지방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오리노코강 강변 오두막에서 기둥에 쇠사슬로 묶인 상태였다.
아버지가 경찰에 의해 살해됐을 당시 로드리게스의 세 자녀는 아직 초등 교육도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장남과 장녀의 이후 행로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니하우스 납치에 연루된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호르헤와 델시는 1961년 헌법으로 사실상 불법화된 당파 조직 전통을 뿌리로 한 베네수엘라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차비스모(chavismo, 차베스의 볼리바르주의적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국가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로 이동했다. 이는 포코주의(foquismo, 소수의 무장 전위가 불씨가 되어 혁명을 촉발할 수 있다고 보는 혁명 전략)로의 전환과 쿠바와의 접근을 촉발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두 사람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UCV의 복도를 오가며 학생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아버지의 암살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호르헤는 정신의학을 공부했고, 여가 시간에는 우울한 단편들을 썼다. 델시는 법학을 전공했고, 국가 지원을 받아 파리 낭테르 대학교와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두 남매는 우고 차베스가 처음 당선된 지 4년 뒤인 2002년에야 정부에 입성했다. 그곳에서 이들은 1992년 낙하산병으로 쿠데타를 시도했던 차베스를 지지했던 군 내 반란 세력과 합류했고, 이들은 이후 정당 정치로 전환한 차베스의 사회주의 정부에서 핵심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게릴라 투쟁의 잔존 세력, 정치화된 군부 집단, 노조 지도자, 포퓰리스트 정치인, 좌파 법조인, 공공 지식인, 전략적 기업 이해관계가 결합한 연합이 형성됐다. 이 연합은 수익성 높은 석유 부문의 이익을 재원으로 삼아 볼리바르 혁명으로 발전했고, 이전 40년간 지속된 양당 권력 분점 체제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여동생보다 다섯 살 많은 호르헤는 더 빠르고 더 높이 올라갔다. 그는 독립 선거 관리 기구로 설계된 국가선거위원회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2005년에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2007년에는 차베스의 부통령이 됐고, 젊은 시절 게릴라였으며 그의 아버지와 가까웠던 호세 비센테 랑헬(José Vicente Rangel)의 뒤를 이었다. 1년 뒤 그는 카라카스 시장으로 선출돼 8년간 재임하며 화려한 문화 정책과 눈부신 건축 프로젝트를 후원했고, 이는 볼리바르 혁명의 도시적이고 밀레니얼적인 브랜드를 과시했다.
반면 델시는 2006년 대통령실 장관으로 출발하며 다른 경로를 탔다. 국가 원수와의 불화설 속에서 그는 불과 6개월 만에 해임됐고 차베스의 형으로 교체됐다. 이후 5년 동안 그는 대통령 부대표였던 호르헤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차베스가 사망한 뒤에야 델시는 마두로 체제 아래에서 다시 기회를 얻었다. 2013년 이후 그는 홍보, 외교, 경제·재정, 천연자원 분야의 핵심 장관직을 오갔고, 2018년에는 오빠가 물러난 지 10년 만에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델시와 호르헤는 항상 실용적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권력을 키워 왔고, 나라가 형언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 5년 동안 마두로의 핵심 측근 그룹이 축소되고 경직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협력은 더 빨라지고 강해졌다. 국제 제재의 위협은 일부 인사들을 직위에서 물러나게 했고, 다른 이들은 범죄 혐의로 송환됐다. 또 다른 이들은 희생양으로 내몰리거나 내부 분열 속에서 탈락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1월 3일 토요일 한밤중에 마두로 자신이 미군에 의해 체포돼 제거된 일이었다.
많은 관측자는 도널드 트럼프가 기존 행정부와 협력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사실상 야권 지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ía Corina Machado)가 최고 권력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배제됐고 선택은 로드리게스 남매에게 돌아갔다. 이 결정은 트럼프가 미주 지역에서 미국 패권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와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동맹 세력의 정치적 배치 중요성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식 노선
냉정하게 보면 이 결정은 트럼프에게 일관된 전략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 운영을 사업 운영과 같은 방식으로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이 논리는 이제 그의 정치적 사업 확장에도 적용된다. 최근까지 델시는 석유·탄화수소 장관을 맡았다. 그는 이 부문에서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고 OPEC 거물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경제·재정 장관으로서 그는 생산 부진을 끌어올리고 초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국영 석유 산업을 부분적으로 민영화했다. 경제적 필요에 떠밀려 반자본주의 입장에서 물러나며, 그는 트럼프가 마무리하려는 작업의 출발을 알렸다.
베네수엘라가 지정학적 동맹을 재편하던 시기에 외교부 장관을 오래 지낸 경험은 그가 적대적 환경에 유연하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게 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베네수엘라의 독재화가 공격적이기보다 중재적 양상을 띠었을 때, 호르헤는 광범위한 미국 협상에서 마두로를 대표했다. 노련하고 능숙한 소통가인 그는 트럼프의 최측근 가운데 하나인 리처드 그레넬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의 조류는 한때 그의 아버지를 추적하던 이들의 해안으로 그를 데려왔다.
호르헤와 델시가 긴밀히 협력하며 트럼프의 의제를 따른다면, 시간과 비용이 드는 선거를 치를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이미 국가 석유 경제 재편, 정치범 석방, 베네수엘라 이주민 추방, 마약 유통 차단, 반제국주의 수사의 완화 등 시급한 사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일 의사가 있음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몇 주와 몇 달이 순탄하다는 뜻은 아니다. 두 사람은 이중의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의 삶과 경력은 미국의 추가적 폭력 위험과 국내 강력 이해관계 집단의 동요 위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에 달려 있다. 다가올 과제 중 하나는 군부 실력자인 디오스다도 카베요와 블라디미르 파드리노를 달래는 일이다.
이들은 권력 핵심에서 위압적인 존재로, 최근 미국의 기소 대상이 된 로드리게스 남매와는 달리 뿌리 깊은 경쟁 관계를 맺고 있다. 한때 랑헬 이전에 잠시 부통령을 지낸 카베요는 차베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자신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이들에 대해 오랜 원한을 품어왔다. 그는 내무장관으로서 국방장관 파드리노와 함께 대체로 군의 충성을 장악했고, 나라 곳곳을 통제하는 무장 집단들의 지지도 확보했다.
주간 TV 프로그램인 「몽둥이로 후려치기」(Con el Mazo Dando, 베네수엘라 국영 정치 토크쇼)에서 카베요가 보이는 차분한 모습은 당분간 순서를 기다리겠다는 신호다. 그러나 자신의 입지가 위태롭다고 느낀다면 그는 군의 힘을 소집해 현직 대통령을 전복하기 위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마두로의 그림자는 니콜라시토의 모습으로 핵심 권력층의 모든 움직임 위에 드리울 것이다. 아버지의 이해관계를 대신 대표하는 이 젊은 의원은 이 과도기를 살아남기 위해 빠르고 현명하게 편을 선택해야 한다.
티토 살라스의 「볼리바르 삼부작」. 1911년. 베네수엘라 연방입법궁 소장. 카라카스. 출처: utopix.cc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명목상 권력을 쥔 베네수엘라의 인물들이 지난 세대 동안 그래왔듯 협력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행보는 이념보다 생존이 우선임을 보여준다. 이는 1911년 군사 독재자 후안 비센테 고메스의 의뢰로 엘 리베르타도르(El Libertador, 라틴아메리카를 해방시킨 인물 시몬 볼리바르를 가리키는 존칭)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볼리바르 삼부작」(Tríptico Bolivariano, 몬테 사크로의 맹세, 고독한 사색, 죽음)을 그린 화가 티토 살라스(Tito Salas)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살라스는 정치 권력이나 그 획득을 위한 희생을 미화하는 금빛 미학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어둡고 음울한 색채를 선택했다.
삼부작의 마지막 초상은 구겨진 흰 수의 아래에 누운 볼리바르의 연약한 시신을 보여준다. 그의 야망은 생명 없는 몸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로 변했다. 이것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열망을 떠받치는 집단적 고통의 최종 잔재라고 살라스는 말한다. 언젠가 어떤 길을 가든, 델시와 호르헤에게도 결국 이것만이 남을 것이다.
[출처] Delcy Rodríguez Heads a Compromised Bolivarian State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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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자먼(Rebecca Jarman)은 리즈대학교(University of Leeds) 인문학 교수이며 『바리오스를 재현하다: 20세기 카라카스의 문화, 정치, 도시 빈곤(Representing the Barrios: Culture, Politics, and Urban Poverty in Twentieth-Century Caracas)』의 저자다. 대니얼 로코(Daniel Rocco)는 리즈대학교 연구원이며 베네수엘라 안데스대학교(Universidad de Los Andes)에서 민족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