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이 제한되고 구급차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자지구에서는 작은 부상조차 사형선고가 될 수 있다.
7월 30일, 이스라엘 식민군은 고(故) 아우다 하탈린(Awdah Hathaleen)의 친구와 친척들이 모여 있던 조문 텐트를 습격하고 움 알-카이르(Umm al-Khair)를 군사 지역으로 선포해 손님과 기자들이 마을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한 그들을 향해 충격 수류탄을 발사해 공격하고, 두 명의 연대 활동가를 구금했다. 이후 불도저를 몰고 온 정착민들은 국경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마을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사우스 헤브론 힐스(South Hebron Hills) 출신의 저명한 활동가였던 아우다 하탈린은 정착민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이논 레비(Yinon Levi)에 의해 살해됐다. 레비는 약 30미터 거리에서 하탈린을 향해 총을 발사했으며, 당시 하탈린은 마을 커뮤니티 센터 울타리 뒤에 서 있었다. 그가 쓰러진 피 자국은 어제까지도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민군은 같은 날 밤 마을에서 팔레스타인인 8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한 명은 정착민의 공격으로 머리에 부상을 입은 아마드 하탈린(Ahmad Hathaleen)이다. 출처: 아비샤이 모하르(Avishay Mohar), 오렌 지브(Oren Ziv), 모사브 샤웨르(Mosab Shawer) / Activestills.
2024년 3월 말 아침,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24세 야스민 시암(Yasmin Siam)은 갑작스러운 복통에 휩싸였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지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수 개월에 걸친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구급차는 거의 사라졌다. 구조 요청이 빗발쳐도 모두 대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공습은 계속됐고, 가자지구는 완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차량은 사라졌고 연료도 바닥났다. 구급차는 공격의 주요 목표가 되어 대부분 파괴되거나 불길에 휩싸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시암의 가족은 그를 당나귀 수레에 태웠다. 움직임 자체가 사라진 이 시기에 남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칸 유니스 곳곳의 잔해와 폭격으로 생긴 크레이터, 붕괴된 도로를 피해 나서면서, 원래라면 20분이면 갈 수 있는 나세르 병원까지의 여정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암은 이미 위험할 정도로 출혈이 심했고 혈압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의사들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끝내 그를 무너뜨리는 말이 들려왔다. “아기가 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첫 아이였다.
그 아이는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부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가자 전역의 교통망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죽었다.
야스민 시암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가자의 교통 시스템이 무너져 발생한 수많은 비극 중 하나일 뿐이다. 2023년 11월 말부터 2024년 1월 말까지 약 60일 동안 이어진 임시 휴전 기간 동안, 북부 가자에서 남쪽으로 피신해 1년 넘게 파괴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갇혀 있던 주민들이 북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점령군은 북쪽으로 돌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도보 이동일과 차량 이동일을 따로 지정했지만, 전쟁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주민들을 사로잡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기다릴 수 없었고, 3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귀환해야 했다.
그중에는 칸 유니스로 피신했던 내 삼촌 이야드의 가족도 있었다. 삼촌은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 노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노인은 80세 정도였는데, 귀환길에 걷다가 갑자기 쓰러져 결국 집에 도착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긴 여정과 극심한 피로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비극적이었지만, 삼촌은 그 노인이 1년 동안의 슬픔 끝에 집으로 돌아가려는 시도 자체에서 작은 기쁨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귀향은 평생의 꿈이었으나, 그의 몸은 그 의지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목격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2024년 2월 이스라엘군이 지상 봉쇄를 했을 때 일어났다.
그 끔찍한 날들 동안 우리는 모든 창문을 단단히 막고 숨죽여 지냈다. 어떤 소리도, 불빛도 내지 않았다. 생명 기척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면 이웃 모두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전 7시쯤, 희미하게 젊은 남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목말라요…” 조심스럽게 창문 틈으로 내다보니, 자전거를 타던 젊은 남자가 탱크 포격을 맞아 어깨에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부상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적절한 치료만 받았더라면 살 수 있었다. 그는 내 집 바로 아래에 누워 물을 달라며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그 절박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봉쇄 기간 동안에는 구급차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구조는 불가능했다. 작은 상처 하나가 곧 사형선고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피를 흘리며 점점 힘없는 목소리로 울부짖다가 결국 목소리가 사라졌다. 사흘 후,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뒤에야 이웃들이 그의 시신을 발견해 알리말의 알카히라 학교 마당에 묻을 수 있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묘지는 이미 꽉 찼고, 남은 교통수단이 없어 도달할 수도 없었다. 가자에서 죽은 이를 묻는 행위마저 사치가 되었고, 학교 운동장과 병원 마당이 우리의 집단 매장지가 되었다.
5월 24일, 달리아 아부 라마단(Dalia Abu Ramadan)은 “사람들과 가방을 여전히 실어 나르는 구급차 역할을 하는 불타버린 버스 뒤편에 앉아 있을 때, 피로로 발이 욱신거렸다”고 말했다. 출처: 달리아 아부 라마단(Dalia Abu Ramadan)
교통수단의 부재로 인한 고통은 멈추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계속된다. 구호품이 배급될 때는 종종 네차림 검문소 근처, 즉 가자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분계선 근처에서 이루어진다. 북쪽이든 남쪽이든 사람들은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15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걷기조차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1년 반이 넘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누가 그런 힘을 남겨두고 있겠는가? 구호품을 받기 위해 15킬로미터를 걸어갔다가, 또 15킬로미터를 걸어 돌아와야 하는데, 많은 경우 빈손으로 돌아온다.
내 아버지를 보라. 그는 몸무게가 20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단지 음식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끝없는 걸음 때문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생필품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그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끝없이 걸어 다니고 완전히 지친 채 돌아온다. 노인들은 어떻겠는가? 무거운 물통을 등에 메고 걸어야 한다. 운반을 도와줄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가자에서 물은 귀하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찾아가야 하고, 험난하고 가혹한 길을 걸어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단 한 모금의 물을 얻는 일마저 고통스러운 여정이 되어버렸다.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제는 당나귀마저 사라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말이 끄는 수레는 대부분 표적이 되어 파괴되었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이동수단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 마리 당나귀들도 이제 굶주림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가자 거리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보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2025년 6월 28일,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한 마리 당나귀가 길 한가운데 쓰러져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고, 주인은 그것을 들어 올리려고 애쓰며 발버둥쳤다. 끌어보기도 하고, 불러보기도 하고, 애원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 동물은 너무 쇠약했고, 굶주려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만약 우리의 마지막 교통수단마저 길 한가운데서 쓰러져 버린다면, 여전히 달려야 하는 인간들에게 어떤 희망이 남을까?
가자지구의 침묵한 거리를 한 아버지가 달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의 품에는 피 흘리는 아이가 안겨 있다. “조금만 버텨. 병원에 갈 거야.” 그는 속삭인다. 그러나 차도 없다. 구급차도 없다. 수레조차 없다. 들리는 것은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와 점점 사라져가는 아이의 숨소리뿐이다. 그 아이는 결국 상처 때문만이 아니라, 움직일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잔혹한 현실 때문에 죽는다.
가자에서는 삶이 모든 형태로 죽어버렸다. 집도 없다. 병원도 없다. 거리도 없다. 교통수단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텐트뿐이고, 지친 몸들이 천천히 죽어갈 뿐이다. 그리고 가자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모든 방식으로, 아무 소리 없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출처] Israel’s Decimation of Transportation Is Adding to Gaza’s Death Toll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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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아 아부 라마단(Dalia Abu Ramadan)은 가자 이슬람대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으로, 가자에서의 삶이 지닌 강인함, 회복력, 그리고 도전들을 보여주는 강력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