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현장 노동자들의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와 노동시장은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노동자들은 일의 세계 전반에서 만연한 성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경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지난 1월 13일부터 31일까지 실시한 '성별 임금 격차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채용·배치·승진 등에서의 직장 내 성차별 경험 △경력단절 경험 및 일·가정 양립과 돌봄 △구조적 성차별에 대한 인식 △성별 임금 격차 발생 원인 △성별 임금 격차가 미치는 경제·사회적 영향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우선 과제 등에 대한 현장 노동자의 인식을 분석했다. 조사에는 총 1,095명이 응답했다.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
채용부터 업무 배치·승진까지, 만연한 직장 내 성차별 경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성차별의 심각성을 5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 승진에서의 성차별(3.53점)을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임금 차이(3.43점)와 중요한 업무 배제(3.4점)도 전체 평균(3.37점)보다 높았다. 채용에서의 성차별(3.35점)과 성희롱(3.13점)에 대한 심각성이 뒤를 이었다.
5가지 항목 모두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성차별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과 남성의 인식 차이는 성별 임금 차이를 두고 가장 컸다(0.91점 차이). 채용, 승진, 업무 배치, 성희롱 등에서도 성별 차이가 존재해 직장 내 성차별 경험에 대한 여성의 인식이 남성보다 더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 경험을 살펴보면, ‘나는 직장에 채용될 때 가족 사항이나 개인적 문제 등, 일과 상관없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41.3%)의 비율이 남성(25.1%)보다 16.2%포인트 높았다. 특정 성별에 유리한 채용 조건으로 인해 불이익을 경험한 경우도 여성(24.4%)의 응답률이 남성(5.9%)보다 18.5%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의 경우 주요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업무 배치에서도 성차별을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또는 최근 일했던 직장에서 ‘여성(혹은 남성)에게 적합하지 않은 일’이라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된 경험이 있는 여성 응답자의 비율은 25.1%로 남성(10.9%)보다 14.2%포인트 높았다. 현재 직장에서 주요 부서 또는 핵심 업무에 성별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질문한 결과 '남성이 주요 부서·업무에 많이 배치된다’는 응답률(39.0%)이 가장 많았다.
승진 경험에서도 성별 격차가 나타났다. 10년 이상 근무한 남성의 경우 67.0%가 승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나, 10년 이상 근무한 여성 중 승진 경험이 있는 비율은 36.1%에 그쳐 남성보다 30.9%포인트 낮은 비율을 보였다.
고용형태별로는 남성과 여성 모두 정규직에서의 승진 경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나, 정규직 내에서도 남성의 승진 경험이 여성보다 21.5%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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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 경험 및 일·가정 양립과 돌봄
조사에 참여한 여성의 61.9%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이는 남성(40.6%) 응답자보다 21.3%포인트 더 높은 수치다.
남성의 경우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한 준비'와 '급여, 업무 내용 등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을 쉬거나 그만둔 경우가 각각 22.4%로 가장 많았으나, 여성은 '결혼, 출산, 등의 문제'(24.3%)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일로 인해 가족에게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는 항목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평균 점수(3.2점)가 남성(2.9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나의 근무 시간은 가정생활이나 직장 외 사회생활을 하기에 적당하다’는 항목에서는 남성(3.4점) 응답자의 평균 점수가 여성(3.0점)에 비해 높았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에 비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시간 부족을 더 크게 인식하고, 남성 노동자는 여성 노동자에 비해 자신의 노동 시간이 적절하다고 느끼는 경향을 드러낸다.
‘식구 중 환자가 생겨서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는 여성(2.4점)의 평균 점수가 남성(1.9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임신·출산·육아 등 돌봄 책임이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항목에서도 여성 응답자(2.9점)의 평균 점수가 남성(2.1점)보다 높았다.
육아휴직 제도와 관련해서는 남성 응답자 중 22명이, 여성 응답자 중 105명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육아휴직 후 원래 자리로 복귀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로 배치될 것에 대한 우려’ 항목에서 여성(2.9점)이 남성(1.9점)보다 더 높은 평균 점수를 보였고, ‘육아휴직 사용으로 인해 고과나 승진 심사에서 제외되거나 낮은 평가를 받을까 봐 우려’ 한다는 항목에서도 여성(3.2점) 응답자의 평균 점수가 남성(2.2점)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고용상 성차별 경험과 성별 임금 격차 인식'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해
지난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가 주장했던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84.6%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여성과 남성 응답자 모두 5점 척도 응답에서 4.0점 이상으로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나타냈는데, 여성의 평균 점수가 4.5점으로 남성(4.0점)에 비해 더 높았다.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한 응답자 중에서는 20·30대 이하 여성 응답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성별 임금 격차, 원인과 해결 방안은
응답자의 월 평균임금을 성별에 따라 살펴보면, 여성 응답자의 월 평균임금은 310.8만 원으로 남성 응답자(414.7만 원)에 비해 232.6만 원 낮았다. 여성과 그 외의 성의 월 평균 임금은 전체 평균(330.6만 원)보다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 학력,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 업종, 직종, 부문, 근무 기간, 승진 경험, 지역, 결혼 상태, 미성년 자녀 유무, 노동조합 조합원 유무 등과 교차해 성별 간의 임금 차이를 분석했을 때, 판매직종을 제외한 모든 분석에서 여성 응답자의 월 평균 임금이 남성 응답자에 비해 더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참여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복수응답에서,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사노동담당자라는 성역할 고정관념'(31.1%)을 1순위로 꼽았다. '정부의 성평등 정책 실현 의지가 없어서'(16.2%), '‘여성이 육아와 가족 돌봄으로 경력단절되고, 경력단절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14.6%), ‘여성과 남성의 젠더갈등을 조장하는 보수정치, 자본세력과 언론’(9.1%) 등이 뒤를 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의 해결 중요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92.9%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5점 척도 응답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4.02점 이상으로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높게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 응답자의 평균 점수가 4.71점으로 남성(4.25점) 응답자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성별 임금 격차가 지속될 경우 예상되는 경제·사회적 영향에 대한 5점 척도 응답에서는 '저출생 심화(4.6점)'에 대한 전망이 가장 높은 점수를 보였고, 그다음으로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침체’(4.49점), ‘저임금 여성 노동자 증가와 여성 경제적 자립 악화’(4.45점), ‘젠더갈등 심화 및 민주주의 약화’(4.33점) 순이었다.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우선 과제를 묻는 복수응답 문항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에동일한 임금을 지급’(33.5%), ‘남성은 가장, 여성은 가사노동 담당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해소와 성평등 의식 강화’(25.2%)가 1·2순위로 꼽혔다. 다음으로는 ‘구조적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평등(노동)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정부’(10.8%), ‘성평등하고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안전한 일자리 확대’(8.8%), 노동시간 단축과 돌봄 사회로의 전환‘(7.7%) 등의 순이었다.
정경윤 연구위원은 "설문조사 결과, 여성 노동자들은 채용·배치·승진 등에서 전반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남성은 가장, 여성은 가사·육아·돌봄 전담자'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여성의 노동시장 내 지위를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결혼과 임신·출산이 노동시장에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와 노동시장이 여전히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또한 "이러한 조사 결과는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한 노동시장과 사회 구조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설문 응답자 대부분이 성별 임금 격차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지속될 경우 경제적·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고, 특히 성별 임금 격차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저출생 사회가 심화될 것이라는 응답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 노동시장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노동자들은 평등한 노동시장과 사회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실제로 설문조사에 성별과 연령대에 관계없이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우선적 과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과 ‘성역할 고정관념 해소’를 꼽은 것은 기존의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지적하고,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약화시키고, 성평등한 노동시장과 사회 구조를 설계하여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노동·경제·사회 문제와 연계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현장의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노동기본권 강화 및 노동운동 활성화, 법·제도 개편 및 정부 정책 개선 등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에게 가족 돌봄의 책임을 부과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고,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여 사회적 돌봄 책임을 확대하는 정책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제시했다.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웹포스터. 민주노총
한편, 민주노총은 오는 8일 오후 2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세상을 바꾸자! 우리가 평등이다!'를 슬로건으로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는 이날 낮 12시 30분, 명동 세종호텔 농성장 인근에서 3.8 여성파업 대회를 개최한다.
오전 11시 20분부터 오후 5시까지는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시대를 잇는 우리의 연대,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를 구한다'를 슬로건으로 제40회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