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국정농단 ‘특종’을 버리고 선택한 것

출처: Bank Phrom, Unsplash

조선일보가 보수정권으로부터 이런 취급을 당한 적이 있던가결코 없던 일이다김건희 여사의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라는 음성파일이 공개됐다정확히 조선일보를 겨냥한다조선일보가 뭘 어쨌기에 김건희 여사의 입에서 폐간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2월 27시사IN 주진우 편집위원이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공개한 음성파일에는 김건희 여사의 보수언론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다그는 조중동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망치는 애들이라며 지들 말 듣게끔 하고뒤로는 다 기업들하고 거래하고얼마나 못된 놈들인 줄 알아나는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라고 말한다주진우 편집위원은 김건희 여사의 통화가 이뤄진 시점을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후라고 특정했다.

명태균의 USB, 조선일보는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정치평론가들은 김건희 여사가 화가 난 원인으로 명태균의 USB를 꼽는다명태균 씨는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나눈 통화와 모바일 메신저 대화를 보험용으로 보관해 왔다그가 USB를 무기 삼아 구명 로비에 나서면서 윤 대통령 부부와 관계가 틀어졌고조선일보가 양자 사이에 끼어들게 됐다는 얘기다.

2022년 6월에 치러진 창원 의창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사건의 발단이 됐다경남선관위는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이 명태균 씨한테 건넨 선거보전금의 흐름을 수상히 여겨 고발했고강혜경 씨와 명태균 씨가 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파국을 맞았다김영선 전 의원과 명태균 씨는 회계 책임자였던 강혜경 씨한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뉴스토마토가 <[단독] “김건희 여사, 4·10 총선 공천 개입”> 보도(9월 5)에 나서면서 더 이상 조용히 사건을 덮을 수 없게 돼 버렸다. ‘M=명태균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윽박지르며 세비의 반을 상납받던 명태균 씨. “1원이라도 틀리면 끝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기세등등한 태도에 온 국민이 놀랐다강혜경 씨는 이와 관련해 명태균 씨의 배후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있었다고 폭로했다그가 받던 세비 또한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를 위해 돌렸던 여론조사의 대가였다고 주장했다실제 여사님 전화 왔는데내 고마움 때문에 김영선 걱정하지 말라고나보고 고맙다고 자기 선물이래라는 명태균 씨의 녹취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또 다른 제보자에 의해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당에서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성까지 등장했다검찰 역시 명태균 씨에 대한 조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그가 USB를 꺼내 든 까닭이다.

명태균 씨에 따르면그는 구속 전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관련한 USB를 조선일보 기자를 통해 대통령실로 보내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가 USB를 입수한 연유다. 2024년 10월의 일이다.

김건희조선일보에 왜 화가 났을까

명태균 씨는 결국 11월 15일 구속된다. USB는 왜 명태균 씨를 구명하지 못했을까조선일보와 윤석열 대통령 부부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그 안에 김건희 여사가 화가 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주진우 편집위원의 폭로 후, “명태균 측에 수차례 보도에 동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답을 듣지 못해 기사를 쓸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취재원 존중과 보호를 규정한 「언론윤리헌장」과 「통신비밀보호법」 저촉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명태균의 USB에 대해서도 어떤 형태로든 자료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곧바로 조선일보에는 이런 물음표가 제기됐다. “니들이 언제 하나하나 허락받아 가며 기사 썼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10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명태균 게이트가 열린 상황이었다명태균 씨가 내가 감옥 가면 한 달 만에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할 만큼의 파괴력이 컸던 이슈였다그런 상황에서 특종할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린다고언론의 생리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조선일보가 명태균의 USB를 어떤 용도로 활용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김건희 여사가 폐간’ 운운한 것을 보면그저 손에 들고만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건희 여사의 지들 말 듣게끔 하고라던 부분이다조선일보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지키려던 게 아니라면보수세력의 괴멸을 막기 위해 윤 대통령 부부가 본인들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주길 바랐다고 보는 게 옳다.

조선일보가 USB를 입수 후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 관해 썼던 사설과 칼럼이 그래서 중요하다조선일보는 이 국면을 국정개혁을 통해 넘어가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치와 특별감찰관 도입’ 그리고 김건희 여사 단속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김건희 여사에 대한 요구가 두드러진다조선일보는 김영수 영남대 교수의 <나라인가아내인가칼럼(10월 16)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나라를 흔들고 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와 아내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시간이 얼마 없다고 주문했다사설 <대통령 크게 바꿔 크게 얻기를 바란다>(11월 8)에서도 대통령실 내부의 실세들로 불리는이른바 김 여사 라인은 모두 정리하는 것이 옳다. ‘조용히 성찰하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김건희 여사가 화가 난 건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특종을 버리면서까지 바라던 건, ‘밤의 대통령의 재현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결말은 오지 않았다윤석열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사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향이 다를 수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다그렇게 다듬어진 것이 바로 언론윤리그런 면에서 조선일보의 이번 행보는 파파라치를 떠올리게 한다조선일보가 특종 기회를 돈으로 바꾼 것은 아니지만그 행태는 다르지 않다한국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썩은 뿌리를 알고도 묵인한 게 아닌가그런 조선일보에 우리는 언론이라 부를 수 있을까다수의 국민은 이렇게 판단하지 않을까. “아니요.”

덧붙이는 말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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