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수천 명의 농민들이 새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과 새로운 상속세 규정 강행에 항의하기 위해 런던으로 모였다. 한 달 후인 12월 12일, 또 다른 시위가 열렸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트랙터가 동원되었으나 유명 인사는 적었으며, 언론 보도는 거의 없었다. 비슷한 시위는 카디프, 펠릭스토우, 요크, 엑서터, 더비셔 등 여러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유럽 전역에서 극우와 포퓰리스트 그룹들이 농촌 지역과 이런 농민 시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올해 초 웨일스에서 농민 시위를 연구하면서 비슷한 움직임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농민들은 이를 거부하고 “농민이 주도하고, 농민을 위한” 입장을 내세웠다.
출처 :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영국의 시위가 극우, 음모론자,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영국 농민들의 불만을 이용하게 된다면, 국가의 탄소 중립 목표와 지속 가능한 농업 전환이 위협받을 수 있다.
농업은 영국이 탄소 중립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핵심적이다. 그러나 일자리 감소의 가능성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개념과 충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웨일스의 지속 가능한 농업 계획은 가축 수 감소와 더불어 인간 노동의 11% 감소를 의미한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사회가 화석 연료를 벗어나 더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만약 이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집단이 이 상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려 할 것이다.
극우 세력 외에도 ‘No Farmers, No Food’와 같은 단체들이 농민 시위를 활용하려 하며, 탄소 중립 전환에 대한 의구심을 조장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No Farmers, No Food’는 홍보 컨설턴트에서 반(反) 봉쇄 및 반(反) 탄소 중립 운동가로 변신한 제임스 멜빌(James Melville)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농업이 “탄소 중립이라는 제단에 희생되고 있다”고 묘사했다.
농민들 사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3월에 열린 한 농민 시위는 20마일 속도 제한에 반대하는 단체와 공동으로 조직되었는데, 여기에는 반(反) 탄소 중립 정서와 허위 정보가 만연했다.
하지만 대체로 웨일스 농민들은 비농민 단체와의 연대를 거부했다. 그 대신, 현재 자신들이 직면한 막대한 재정적 압박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새로운 정부, 새로운 시위
노동당 신정부가 도입한 변화로 인해 많은 농장이 더 이상 상속세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는 농업의 재정적 압박을 국가 주요 언론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게 만들었고, 새로운 시위 물결로 이어졌다.
이 모든 일은 농민들과 다른 농촌 지역 주민들이 이미 일반적으로 정부를, 특히 이번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해 영국 총선 전에 당시 야당 환경·식품·농촌사무장관이었던 스티브 리드(Steve Reed)는 노동당이 상속세 규정을 변경할 의도가 없다고 농민들에게 확약했었다. 그러나 이후 정책 번복(리드는 노동당이 집권한 후에도 같은 직위를 유지함)은 이러한 불신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TV 진행자이자 현재 사실상 농업계의 전국적인 목소리가 된 제레미 클락슨(Jeremy Clarkson)은 이러한 시위를 우익 음모론으로 몰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 런던 대규모 시위 직전에 <더 선>(The Sun)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스타머(Keir Starmer)와 리브스(Rachel Reeves)가 사악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은 이민자와 탄소 중립 풍력발전을 위해 농지를 새로운 마을로 뒤덮으려 한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려면 먼저 농민들을 정리해야 한다.”
클락슨 외에도 다른 단체들이 시위를 장악하려는 노력을 새롭게 기울이고 있다. 음모론 단체 ‘투게더 디클러레이션’(Together Declaration)은 No Farmers, No Food의 설립자인 멜빌(Melville)이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위의 초점을 상속세 변경 문제에서 탄소 중립에 대한 의구심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11월 시위에서는 ‘리폼 UK’의 지도자인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가 발언하는 것이 차단되었다. 대규모 런던 시위를 주도한 농민들은 현재 상속세 변경 문제를 논의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정치적 단체보다는 피해를 본 다른 소규모 사업체들과 연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출처: 현지 방송 화면 갈무리
탄소 중립(net-zero)이 의미하는 것
농업과 탄소 중립 사이에는 부딪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영국 사회가 화석 연료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함에 따라 추가적인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력망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노동당의 제안에 따르면, 이는 농촌 지역에 송전탑의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송전탑을 “농촌을 파괴하려는 계획”으로 묘사하며 강하게 반대하는 단체들이 존재하며, 이는 새 송전탑이 농사를 방해할 것이라고 비판하는 농민들의 주장과 겹친다. 한편, No Farmers, No Food와 같은 단체들은 농민들을 “원조 환경운동가”이자 “진정한 영국 땅의 수호자”로 반복적으로 묘사하며 이러한 담론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농민연합(National Farmers Union)은 상속세 변경이 농업 부문의 환경 목표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웨일스 농민들의 시위는 웨일스 정부의 정책 방향 전환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농촌 및 농업 공동체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는 향후 몇 년 동안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영국 농민들은 대체로 농업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지만, 유럽에서는 포퓰리스트와 극우 세력이 이러한 영역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농민들에게 진정으로 공정한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이러한 위협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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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카터-브룩스(Tom Carter-Brookes)는 킬 대학교(Keele University)에서 지속 가능한 농촌 미래 연구를 하고 있는 리버흄 박사과정 장학생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