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블랙홀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 형성된 별들의 흔적을 남긴 모습이다. 출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판 도쿰 외(van Dokkum et al.)이다.
지난해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바깥 먼 곳에서 날아와 우리 태양계를 통과한 질주 소행성에 매료됐다. 이 소행성은 초속 약 68킬로미터, 즉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의 두 배가 조금 넘는 속도로 이동했다.
만약 그것이 훨씬 더 크고 더 빠른 천체였다면 어떠했을까. 예를 들어 초속 3,000킬로미터로 이동하는 블랙홀이라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강력한 중력이 외곽 행성들의 궤도를 교란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소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사이 여러 독립적인 증거가 모이면서 이러한 방문자가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천문학자들은 다른 은하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초대질량 블랙홀의 명확한 흔적을 관측했으며, 더 작고 직접 탐지하기 어려운 질주 블랙홀도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질주 블랙홀: 이론
이 이야기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의 수학자 로이 커(Roy Kerr)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의 해를 구해 회전하는 블랙홀을 기술했다. 이 해는 블랙홀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졌다.
첫째는 이른바 ‘무모발 정리(no-hair theorem)’이다. 이 정리는 블랙홀이 질량, 스핀, 전하라는 세 가지 물리량으로만 구별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둘째를 이해하려면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식 E = mc²를 떠올려야 한다. 이 식은 에너지가 질량을 가진다는 사실을 말한다. 커의 해는 블랙홀의 경우 그 질량의 최대 29%가 회전 에너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의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50년 전 블랙홀의 회전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고 추론했다. 회전하는 블랙홀은 막대한 스핀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일종의 배터리와 같다.
블랙홀은 같은 질량의 별보다 약 100배 더 많은 추출 가능한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두 블랙홀이 병합하면 이 거대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몇 초 만에 방출한다.
두 개의 회전하는 블랙홀이 충돌해 병합하면서 중력파를 생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려고 연구자들은 20년에 걸쳐 초고성능 컴퓨터 계산을 수행했다. 블랙홀의 스핀 정렬 방식에 따라 중력파 에너지는 특정 방향으로 더 강하게 방출할 수 있으며, 그 반작용으로 블랙홀은 반대 방향으로 로켓처럼 튀어나간다.
충돌한 두 블랙홀의 스핀이 적절하게 정렬되면 최종적으로 형성된 블랙홀은 초속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속도로 가속한다.
실제 블랙홀에서 얻은 교훈
이 모든 내용은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15년 라이고(LIGO)와 버고(Virgo) 중력파 관측소가 충돌하는 블랙홀 쌍이 방출한 중력파 신호를 탐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 가운데 하나는 블랙홀의 ‘링다운(ringdown)’ 현상이었다. 이는 새로 형성된 블랙홀이 소리굽쇠처럼 울리는 신호로, 블랙홀의 스핀 정보를 알려준다. 더 빠르게 회전할수록 더 오래 진동한다.
병합하는 블랙홀에 대한 관측이 점점 정밀해지면서 일부 블랙홀 쌍은 스핀 축이 무작위로 정렬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매우 큰 회전 에너지를 지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모든 결과는 질주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빛의 속도의 1%에 해당하는 속도로 이동하는 이들의 궤적은 은하 내 별들처럼 휘어진 궤도를 따르지 않고 거의 직선에 가깝게 우주를 가로지른다.
우주에서 발견한 질주 블랙홀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 질주 블랙홀을 발견하는 단계다.
상대적으로 작은 질주 블랙홀을 탐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태양 질량의 백만 배 또는 십억 배에 달하는 질주 블랙홀은 은하를 가로지르면서 주변의 별과 가스에 거대한 교란을 일으킨다.
이 블랙홀은 제트기가 지나간 뒤 구름이 남는 것처럼 항적을 남길 것으로 예측한다. 성간 가스에서 별이 형성되며 긴 항성 꼬리를 만든다. 지나가는 블랙홀의 중력이 가스와 먼지를 끌어당겨 붕괴시키면서 별이 탄생한다. 질주 블랙홀이 은하를 가로지르는 동안 이 과정은 수천만 년에 걸쳐 지속한다.
2025년에 발표한 여러 논문은 아래와 같은 은하 영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곧은 별의 흔적을 제시했다. 이는 질주 블랙홀의 설득력 있는 증거로 보인다.
예일대학교 천문학자 피터 판 도쿰(Pieter van Dokkum)이 이끈 한 연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이 촬영한 매우 먼 은하에서 길이 20만 광년에 이르는 밝은 항적을 보고했다. 이 항적은 블랙홀이 지나가면서 가스를 중력으로 압축할 때 나타나는 압력 효과를 보여주었다. 이 경우 태양 질량의 천만 배에 달하는 블랙홀이 초속 약 1,000킬로미터로 이동한다고 해석한다.
또 다른 연구는 NGC 3627이라 부르는 은하를 가로지르는 길고 곧은 항적을 보고했다. 이는 태양 질량의 약 200만 배에 해당하는 블랙홀이 초속 300킬로미터로 이동하면서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항적의 길이는 약 2만 5천 광년이다.
이처럼 극도로 거대한 질주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더 작은 동류 역시 존재해야 한다. 중력파 관측은 강력한 반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반대 방향 스핀 정렬을 가진 블랙홀 병합 사례가 일부 존재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속도는 은하 사이를 이동하기에 충분히 빠르다.
따라서 은하 내부와 은하 사이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블랙홀은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다. 그러한 블랙홀이 우리 태양계에 출현해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발견 때문에 잠을 설칠 필요는 없다. 그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이는 우리 우주의 이야기가 이전보다 조금 더 풍부해지고 조금 더 흥미로워졌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출처] New fear unlocked: runaway black hole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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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블레어(David Blair)는 서호주대학교(The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중력파 발견 우수연구센터(ARC Centre of Excellence for Gravitational Wave Discovery, OzGrav) 명예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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