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과 요양원 등에서 일하는 병원·돌봄 노동자들이 오는 17일 공동파업에 나선다. 이번 파업은 2004년 이후 21년 만에 벌어지는 최대 규모의 공공병원 파업이자, 공공운수노조가 계획하고 있는 9월 중순 공공부문 산별 파업-산별 투쟁의 선두를 이끄는 파업이기도 하다.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4개 국립대병원(서울대병원, 강원대병원, 경북대병원, 충북대병원) 노동조합들은 각 지역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9월 17일 함께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가 상품으로 전락하고, 공공병원들조차 환자와 노동자의 존엄을 갈아 넣어 이윤만을 좇는 현실에 맞선 ‘사회적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의료연대본부 공동파업 선포 서울 지역 기자회견 현장. 의료연대본부 제공
“왜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시민은 받아줄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나”
의료연대본부는 이날 “병원·돌봄 노동자들의 사명은 모든 사람이 아플 때 외면받지 않고 적절하고 안전한 의료와 돌봄을 제공받도록 하는 것”이나, “노동자를 착취해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을 상품으로 파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이런 사명을 노동자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고 짚었다.
또한 의료가 상품이 된 한국사회에서 “병원·돌봄 노동자들은 환자를 돌보고 싶어도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병원 적자와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 때문에 노동권을 빼앗겼”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돌봄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고,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은 재정난과 인력난에 처했다”는 현실을 환기하고, 반면에 “민간병원들은 의료대란 속에서도 정부 지원금과 노동자 착취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본부는 이같이 “의료와 돌봄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섭과 투쟁을 반복해 왔지만 제자리걸음”이었고 “이재명 정부는 말로는 공공의료와 지역의료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실제 내년 정부예산에 공공의료, 지역의료 강화와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은 사실상 윤석열 정부와 다를 바 없”이 부족하다면서, “붕괴 위기의 응급 상황에 추상적인 중장기적 처방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병원·돌봄 노동자들은 “왜 노동자는 계속 착취당해야 하고, 시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나를 받아줄 병원을 찾아다녀야만 하는가”라고 분노하면서, “우리 의료연대본부는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를 위해, 위기의 지역의료와 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해,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병원·돌봄 노동자 인력확충과 노동조건 개선,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결의를 밝히고 지역 곳곳에서 △공공의료 공공돌봄 확충하고 붕괴위기 지역의료 해결하라 △보건의료, 돌봄 인력 충원하고 노동조건 개선하라 △어린이 청소년부터 무상의료 실현하자 △의료·돌봄 민영화 정책 즉각 중단하라며 힘차게 외쳤다.
발언 중인 박경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 의료연대본부 제공
“공공의료 강화하겠다는 이재명 정부… 사기에 가깝다”
이날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은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서 열린 서울 지역 기자회견에 참여해, “이재명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육성해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면서 “그런데 정부의 계획을 집행해야 할 바로 그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정부에 맞서 파업에 나선 이유는, 정부가 말한 국정과제를 정말로 달성하고 싶어서”라고 역설했다. 박 본부장은 정부의 “국정과제 어디에도 지역완결의료를 만들 수 있는 계획이 없고, 지역의료 총괄체계 구축 방안도, 무너지고 있는 공공병원을 살릴 예산도, 병원이 없는 지역에 공공병원을 설립할 계획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목표도 없다”며, 때문에 “의료연대본부는 정부의 계획이 사기에 가깝다고 판단한다”고 이야기했다.
의료연대본부는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 교육부, 노동부 등을 만나 “국가책임 강화로 공공·지역의료 살리기, 보건의료 및 돌봄 인력확충,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권 강화,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요구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했으나, “방향성에 공감한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 정부가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의료연대본부 노동자들은 “이제 구체적 계획을 같이 만들자”면서 “대한민국 누구나 어디서나 적절한 치료를 받고 아파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병원의 결단을 촉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박 본부장은 “9월 17일 파업에도 정부와 병원 측이 의료연대본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이어 2차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환자들이 의료공백으로 고통받지 않고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의료연대본부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힘 주어 말했다.
“더는 노동자와 시민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박나래 서울대병원분회장은 “무너지는 공공병원 시스템 속에서, 지금도 응급실에서 환자들은 헤매고, 극심한 심혈관 환자들은 치료받을 자리를 찾아 노동조합에 도움을 청하며 절박하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불평등과 무책임의 결과로, 아파도 어디에서 치료받아야 할지 걱정하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박 분회장은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은 국민 건강을 지키는 국가 중앙병원이자, 공공의료의 마지막 보루”라면서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국민의 건강, 환자의 생명, 동료와 가족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을 이어가, 누구나 아플 때 마음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밝혔다.
“노동자의 일터와, 시민 모두의 건강권을 함께 지키는 싸움에 연대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건강과대안’에서 활동하는 이상윤 연구위원은 “△공공의료와 공공돌봄 확대 △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 △무상의료 실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시행 △의료 민영화 시도 중단”이라는 이번 병원·돌봄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요구는 “환자와 시민 모두의 권리이자 사회 전체의 요구”라면서 “노동자들의 일터를 지키는 싸움이자,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싸움”에 나선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자고 호소했다. 이상윤 연구위원은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국민 생명 지켜내자!”, “공공의료 확충하라! 인력 충원 쟁취하자!”고 구호를 선창하면서 “의료를 돈벌이로 전락시킨 자본과,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야말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진짜 주범”이라 짚고는 “우리 모두는 그들의 거짓을 밝히고, 공공의료를 지켜낼 것”이라 강조했다.
의료연대 본부 공동파업 웹포스터. 의료연대본부 제공
“9천여 명 병원·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자들 공동파업…9만 6천여 명 공공부문 노동자들 산별 파업 투쟁 선두에”
의료연대본부에 따르면 현재 본부 소속 국립대병원 4개 노동조합이 노동위원회 노동쟁의 조정절차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를 모두 완료해 파업권을 얻고 17일, 2004년 이후 21년 만에 국립대병원 최대규모의 공동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4개 국립대병원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8,600여 명으로 파악된다.
또한 서울대병원 식당분회(70여 명), 요양지부 서울동부요양분회(120여 명), 대구지부 경북권역재활병운분회(110여 명) 등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병원과 요양원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 300여 명이 쟁의조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본부는 이들 9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9월 17일 공동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며, 이날 파업에도 정부와 병원들이 병원·돌봄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2차 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라 밝혔다. 한편, 공동파업 중에도 환자 안전 등을 고려해 조합원 일부는 필수유지업무를 지속할 예정이다.
의료연대본부의 이번 공동파업의 핵심 요구는 △국가책임 강화로 공공·지역의료 살리기 △보건의료 및 돌봄 인력 확충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권 강화 △의료 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다.
17일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오후 1시 30분 서울 숭례문 세종대로에 모여 공동파업 대회를 열고, 오후 3시부터는 같은 자리에서 열리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관 “공공기관 노동자 총파업·총력투쟁대회”에 참여한 후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에 나선다.
공공운수노조는 9월 중순부터 △공공부문 노정교섭 및 초기업교섭 실현 △공공기관 민주적 운영 △인력 충원과 안전한 일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 철폐 △윤석열 정부 악덕지침 폐기 △공공서비스 정부책임 강화를 핵심 요구로 내걸고 ‘산별파업-산별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이달 17일에는 의료연대본부와 함께 부산지하철노조가 먼저 파업에 나서고, 9월 중하순부터는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와 인천공항,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연이어 파업에 돌입한다.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이달 11일 기준 21개 공공기관 사업장 29,292명의 쟁의권이 확보되었으며, 9월 투쟁에도 정부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책임 있는 이행을 담보하지 않을 시, 10월 이후에는 6개 사업장 67,459명 조합원들의 쟁의권을 추가로 확보해, 27개 사업장 96,751명 조합원들과 함께 더 큰 사회적 투쟁을 벌여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