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돌봄 현장을 지탱해온 노동자들이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파업’에 나선다. 국립대와 사립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병원 구내식당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자들이 함께 “지역과 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의료 공공성 강화로 “모든 시민을 구하기 위한” 투쟁에 힘을 모은다.
의료연대본부 공동 파업 총력 투쟁 선포 기자간담회 현장. 참세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이하 ‘본부’)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본원 김종기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동 파업 총력 투쟁” 계획을 밝혔다.
본부는 지난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한국사회 의료·돌봄 공공성은 더욱 파괴되어 “환자와 노동자들은 비상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 광장 투쟁으로 집권한 새 정부의 국정계획도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이어받는 측면들이 존재”하며, 의료·돌봄 현장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소극적” 조치에 그쳤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부는 △국가책임 강화로 공공·지역의료 살리기 △보건의료 및 돌봄 인력 확충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권 강화 △의료 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네 가지 핵심 요구로 내걸고 투쟁에 나선다.
정부와 병원 경영진이 이같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다음달 17일, “지역의료와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누구나 어디서나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의료연대본부 전 조합원이 공동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28일 기준, 의료연대본부 소속 7개 사업장 분회가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해 공식 파업 절차에 밟고 있다. 이들 7개 사업장 분회는 △국립대병원 4곳(강원대학교병원, 경북대학교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충북대학교병원) △민간사립대병원 1곳(울산대학교병원) △비정규직 1곳(서울대병원식당분회) △요양원 1곳(울산동구요양원)이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 후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에서 과반이 파업에 찬성하고, 중노위가 노사 간 입장차를 좁히기 어렵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동조합은 ‘파업권’을 얻게 된다. 쟁의 신청을 한 7개 사업장 분회들은 9월 3일 강원대병원분회를 시작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예정하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결의한 이들 의료연대본부의 국립대·사립대병원, 비정규직, 요양원 분회 노동자들이 참여해 한국사회 의료·돌봄 현장의 구조적 문제와 사업장별 현안과 함께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 과제들을 톺았다.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이 병원 복도에 만든 "통곡의 벽". 참세상
“노동조건 개선과 의료공공성 강화, 노동자·병원·시민 모두를 위한 요구”
박나래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코로나와 메르스 등 감염병 위기 상황과 지난해 전공의 사태 등 여러 혼란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묵묵히 병원을 지켜왔으나, 그에 맞는 정당한 보상은 없었다”면서, 숙련 노동자 유치를 위해 임금을 높이는 민간병원들과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기존 40호봉에서 72호봉으로 세분화된 임금체계는 “1살에 입사해 평생을 일해도 정상 임금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들며,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지속적으로 하락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노동강도와 위험은 높아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면서, 실질임금 인상과 인력 충원으로 병원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시민들에게 질 좋은 공공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병원은 기획재정부의 총액인건비제도 및 정원 관리제도를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대병원은 “과잉 진료를 유발하고 병원 수익을 중심으로 의료 행태를 조장해 환자 의료비 부담과 진료의 질을 저하를 초래”하는 의사 성과급제와, 2천만 원의 고액 연회비를 받아 병실을 우선 배정하는 VIP회원제 등으로 “의료공공성을 훼손하고, 공공기관이 지켜야 할 윤리적·사회적 책무를 저버리고 있다”면서, 이러한 현실에 맞서 “노동자와 병원, 시민 모두를 위한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투쟁에 나섰다고 밝혔다.
“환자 안전과 직결된 병원 노동자 처우”…”노사합의도 발목잡는 정부 정책”
조중래 경북대병원분회장도 “병원 노동자의 규모는, 의료의 질 및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 “인력 충원이 매우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과 병원이 교섭을 통해서 지난 21년 합의한 인력조차도 현재까지 충원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공공기관’인 국립대병원의 정원을 제한하는 기획재정부의 책임을 짚었다.
그는 병원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의 발목을 잡는 것” 또한 총액인건비제도 등 “정부의 정책 지침 때문”이라며, 공공의료 현장을 지탱하는 공공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사측 간의 합의를 넘어서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북대병원은 지난 ‘의료 대란’ 으로 인해 적자 규모가 1200억에 달한다”면서 “공공병원이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누적된 이 '착한 적자'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에 대한 책임도 정부에 있다고 짚었다.
이요한 강원대병원 분회장은 “강원대병원 노동자의 호봉체계는 25년을 근속해도 임금 수준이 250만 원 선에 머무르도록 설계되어 있다”라며 반면, “의사직 연봉은 2024년 평균 1천만 원 이상 대폭 인상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분회장은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공백을 메워 밤낮없이 환자 곁을 지키며 병원의 운영을 유지한것은 우리 노동자들”이었음에도, “의사직 임금만 폭등하고 우리에게는 한 푼도 한 푼의 보상도 없었다”면서 공공의료 현장을 지켜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쟁에 함께 나서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지역 공공병원 외면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권순남 충북대병원분회장은 “지난해 충북대병원은 418억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면서 이에 노동자들은 병원 재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앞다퉈 무급휴가를 사용해, 지난해 6개월 동안에만 15억 상당의, 올해 6월까지는 25억 규모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나섰으나, 병원은 이대로라면 대규모 임금체불이 발생할 병원 재정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가 지역 책임 의료기관 지원을 위해 마련한 759억 원 상당의 예산도 절반 이상이 민간 사립병원의 몫으로 편성”됐으며, “충북도가 이달에 편성한 7천억 이상의 추경에서도, 국립대병원에 대한 지원은 제외”되었다며,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 책임을 외면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이같은 태도가 이어진다면, “지역의 공공의료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짚었다.
권 분회장은 이어서 의생명연구관(암병동)을 지어놓고도 정부의 인력 통제 정책으로 필요한 인력을 정규직으로 충원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해 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충북대병원의 사례를 환기하면서, 앞선 현장 노동자들과 같이 한 목소리로 공공병원의 인력 충원을 가로막는 기재부의 정원 제한 제도의 문제를 짚고, 이같은 현실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은 공공의료 현장을 지키기 위해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며 공동 파업 투쟁을 결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5년 연속 수백억 흑자에도, 돈벌이에만 힘 쏟는 사립대병원”
쟁의 조정 신청에 나선 사업장 중 유일한 사립대병원 현장인 울산대병원분회 이민규 분회장은, 울산 지역의 경우 공공병원이 없어 유일한 대학병원인 울산대병원이 사실상 공공병원의 역할을 맡아, 대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코로나 때부터 매년 300억에서 500억 규모로 5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으나, 지역 시민들을 위한 의료 공공성 확대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책임은 회피하고 돈벌이에만 힘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분회장에 따르면 울산대병원은 단 3명의 인력충원 요청 조차도 받아들이지 않고, 유급 생리 휴가 사용 금지와 연차 휴가 강제 소진, 간호 노동자들의 인수인계 시간 폐지 등을 실시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악하고 있다.
또한 암 환자 등 중증 질환자들의 안식처인 호스피스 병동의 문을 닫고, 의사 성과급제를 다른 직군으로도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직영으로 운영되던 병원 어린이집 폐쇄 계획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병원이 받고 있는 엘리오앤컴퍼니의 경영 컨설팅이, 이 같은 개악에 관계맺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이번 공동 파업 총력 투쟁에는 병원 현장의 중요한 부분들을 지탱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참여한다.
정재미 서울대병원식당분회장은 “병원 식당 노동자들은 서울대병원과 임대계약을 맺은 업체들이 바뀔 때마다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고, 저임금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삶을 삶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과, 작업 환경 개선, 휴게 공간 마련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음에도, 사측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정 분회장은 조합원들이 “수십 년간 땀 흘린 만큼 사람답게 살 권리를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투쟁을 결의했다면서 “이 투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과 사회 곳곳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의 투쟁이라고 생각한다”고 짚고는, “우리 정당한 요구와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부당한 현실을 바꾸는 길에 함께해 주시기를”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서울대병원식당분회는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본부 소속 사업장 중 가장 먼저 조합원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률 100%로 파업 참여가 가결된 바 있다.
의료연대본부 공동 파업 총력 투쟁 선포 기자간담회 현장. 참세상
“의료 공공성 강화로, 모든 시민을 구하는”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밝힌 “지금 한국의료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은 의료가 상품이기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시민들이 누구나 어디서나 제대로 된 의료를 제공받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으려면 의료가 상품이 아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박 본부장은 이에 병원·돌봄 노동자들은 “자신만의 요구가 아닌 모두의 건강권을 지키는 파업을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으로 집행하려 한다”면서 의료 공공성 강화로 “모든 시민을 구하기 위한” 이번 투쟁에 “많은 시민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이야기했다.
본부는 이날, 복지부·교육부·노동부 등 정부 부처가 노동조합과 즉각 대화에서 나서 파업 예정일인 9월 17일 전까지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한 수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계획대로 전 조합원 공동 파업 총력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