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라이프치히의 linXXnet(린엑스엑스넷, 독일 라이프치히의 좌파 활동가 네트워크 및 의원 사무국) 의원 및 프로젝트 사무소 관계자들로 구성된 한 그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이미 2023년 1월 — 러시아가 전면 침공을 감행한 지 1년이 지난 시점 — 에도 우리는 현지에서 정치적 좌파와 시민 사회를 직접 만나보고, 독일 좌파에 대한 기대를 들어본 바 있다.
다시 이 여정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취임으로, 그의 외교정책은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 가자 지구 인구 철수, 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평화 협정 추진 등은 힘에 의한 질서만이 남은 미국 외교의 급진화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이 2022년 이후 러시아의 침공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한 국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현지 주민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4월 24일 새벽, 우리는 키이우에서 수개월 만에 가장 격렬한 드론 및 로켓 포격을 경험했다. 독일 언론이 “트럼프, 러시아와의 딜을 믿는다”는 제목을 뽑는 그 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우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2023년 겨울의 방문에서도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번 2025년 봄의 인상은 달랐다. 전쟁 중임에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라, 그리고 놀라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활기찬 시민 사회는 국가의 무기력을 보완하고, 좌파 구조는 전시 상황에서도 사회권과 진보적 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침공뿐만 아니라, 미국의 지정학적 희생 시도에도 고집스럽게 맞서고 있었다. 2023년과 달리, 이번에는 추가 무기 지원이나 독일의 역할보다는 러시아의 지배나 영향력에 반대하는 강력한 저항 의지가 주요 화두였다.
다음은 이번 체험에서 중심이 되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만, 주요 부분에 집중한다.
우크라이나의 좌파 정치
2023년에 이어, 이번에도 우리는 우크라이나 좌파 인사들과의 접촉에 중점을 두었다. 사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많은 동유럽 국가에서 좌파는 주변화되어 있다. 1989/90년 체제 전환 이후, 구국가사회주의의 후견주의와 억압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서방과 동방 사이에서 균형감 있게 위치하는 개혁적 좌파 대안은 구축되지 못했다.
구소련 지역에서 좌파 정치는 종종 스탈린주의, 간섭, 억압, 후견주의로 연상된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체제 전환 후 공산당의 후신이 좌파의 주류였다. 우크라이나 공산당(KPU)은 1990년대~2000년대 중반까지 주요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부패와 신뢰 부족으로 지지층을 잃었다. 2014년 의회 진입에 실패했고, 2015년에는 두 개의 소규모 공산당과 함께 활동이 금지되었다.
이에 반해, 구질서와 결별한 소규모 개혁 좌파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사회운동(Sotsialnyi Rukh), 의료운동 우리처럼(Be Like We Are), 잡지 <커먼즈>(Commons)를 중심으로 한 지식 네트워크, 인권 단체인 연대 집단(Solidarity Collective) 및 직접행동(Direct Action)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우크라이나를 지향한다. 마이단 시위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이들은 유럽 통합을 긍정하며 러시아를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반제국주의 정체성을 공유한다.
사회운동(Sotsialnyi Rukh)은 노동자를 대변하고 계급 문제에 집중한다. NGO로 등록되어 있으나 정당 설립은 쉽지 않다고 활동가이자 노동소송 전문 변호사인 비탈리 두딘(Vitalij Dudin)은 말한다. 키이우, 크리비리흐, 리비우, 오데사 등에서 활동하며, 전시 상황에서도 노동권 악화를 막고 노조 조직화를 지원하고자 한다. 이들은 학생 노조 직접행동(Direct Action), 의료운동 우리처럼(Be Like We Are)과 협력한다. 과두 정치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조직화를 중시하며, 러시아의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일부는 자원입대하거나 징집되었다. 장기적으로는 EU 가입을 바라나, EU 역시 신자유주의적 프로젝트로 비판한다. 두딘은 “민영화와 과두지배가 지배하는 우크라이나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서유럽 좌파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EU를 위해 싸워야 할 책임이 있다.
학생 노조 직접행동(Direct Action)은 2010년대부터 활동했으며, 마이단 시위 당시 교육부 점거로 주목받았다. 러시아 침공 이후 활동을 재개, 전국 학생 조직화,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반대, 좌파 청년 교육 공간 제공 등의 활동을 벌인다. 예로, 크림 망명대학의 폐쇄를 막아낸 성과가 있다.
우리처럼(Be Like We Are)은 2020년 출범한 의료운동이다. 창립자 옥사나 슬로보디아나는 2019년 한 간호사의 페이스북 글이 수만 명에게 공유된 것을 계기로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기존 노조와 달리 새로운 노조 결성을 장려한다. 페이스북 그룹 회원은 8만 5천여 명, NGO 등록 회원은 700명 이상이며 대다수가 여성이다. 이는 간호 분야의 성별 구성과도 연관된다. 우크라이나 의료 시스템은 매우 열악하며, 공공 의료는 기초 수준이고 고급 치료나 약품은 대부분 개인 부담이다. 전국민 건강보험은 없으며, 국가 의료 서비스 목록도 10년 넘게 갱신되지 않았다. 정부는 영국식 모델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이 운동은 병원 인건비가 총비용의 85%를 넘지 않는 조건 하에 의사(월 20,000 흐리우냐, 약 400유로)와 간호사(월 15,000 흐리우냐, 약 300유로)에게 수당을 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연대 집단(Solidarity Collective)은 러시아 침공 이후 형성된 반권위적 네트워크로, 투쟁하는 다양한 좌파를 지원한다. 이는 제국주의적 질서에 맞서 자유로운 세계를 위한 실천이라 여기며, 국제적 연대와 전투 지역 인도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운동의 일환으로 매년 열리는 ‘필마(Filma)’ 행사는, 보수적 페미니즘이나 프라이드 운동 내의 민족주의적 경향과는 선을 긋는다. 교차적 접근, 트랜스 포함, 반인종주의, 반식민주의, 비위계성과 포용성을 지향한다. 필마 활동가 이라 탄치우라는 국가 주도의 군국주의가 우크라이나 사회의 우경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의 좌파 진영은 소수지만 결연하다. 새로운 좌파는 운동 중심의 풀뿌리 조직이며, 중심축인 사회운동(Sotsialnyi Rukh)은 좌파 의제의 다양성을 더 포괄할 필요가 있다. 진보적 계급 정치는 반드시 페미니즘, 반인종주의, 포용성과 이론+실천을 결합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전쟁과 러시아의 영향력에 대한 거부는 모두가 공유하며, 전쟁 장기화는 특히 군 복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 방어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삶,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전후에도 좌파의 활동 여건이 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 인프라
우크라이나는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으며, 러시아의 전쟁 이후 그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미 2014년 크림과 동부 지역의 합병 전부터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 채권자에 대한 의존이 컸다. 독립 이후 경제는 불안정했고, 복지 및 인프라 관련 자금 흐름은 부패로 인해 투명하지 않았다.
전쟁으로 빈곤은 급격히 심화되었다. 전쟁 전에는 인구의 약 18%가 빈곤층이었지만, 현재는 24%에 달한다. 40%는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며, 약 600만 명이 국내 실향민이다. 사회복지와 의료 체계는 붕괴 직전이며, 국제 인도적 지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없고, 시골 지역은 기초 의료 서비스조차 접근이 어렵다. 양질의 치료는 대부분 본인 부담이다.
특히 전쟁 상황에서 NGO들은 취약계층, 실향민, 전선 인접 지역 주민 지원에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밝힌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대외 원조 중단 방침으로 이들 활동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여기에는 전투지역 민간인 대피, 이동식 의료/심리 지원, HIV 예방 및 치료 등이 포함된다. 2023년 기준 우크라이나는 USAID 최대 수혜국으로, 144억 달러의 원조를 받았으며 이는 주로 인도적 지원과 재건에 사용되었다.
스히드 SOS(Skhid SOS)와 우크라이나 공중보건재단(Ukrainian Foundation for Public Health)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원조금 중단이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이래 스히드 SOS는 약 1만 2천 명의 장애인을 포함해 총 8만 8천 명의 사람들을 교전 지역이나 점령지에서 대피시켰다. 이 조직은 전적으로 기부금에 의존해 운영되며,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빈 건물을 피난 공간으로 전환하며, 피란민을 지원하고, 전쟁 범죄를 문서화한다. Skhid SOS는 유럽 전역의 여러 조직들과 협력하며 해외로의 대피도 진행한다. 또한 위기 지역의 아동들이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시범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 대피소가 없는 지역에서는 아동과 청소년이 온라인 수업을 받으며, 이 모델은 유치원에도 적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공중보건재단 또한 비슷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재단은 전국적으로 여성 보호소, 이동 지원팀, 의료·심리·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취약계층을 위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재단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과 심리 상담 서비스를 기초 복지에 통합하며, HIV 감염자 지원에도 핵심적인 기여를 해왔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HIV 감염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2020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감염률이 41명이었고, 독일은 3.1명이었다. 국제사회의 지원 덕분에 전쟁 전까지 예방 및 치료 환경이 개선되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인도적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면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크라이나에서는 재건이 시작되었고, 수십억 유로가 주택, 학교, 기반 시설, 에너지 및 수도 공급 복원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과제는 여전히 막대하다. 우크라이나 사회가 재건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포럼 연극(Forumtheater) 기법을 활용해 주변화된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얀나(Yanna)를 만났다. 그녀의 한 개입 프로젝트는 장애인용 주거 재건 시, 시설 수용이 아닌 자율적인 개별 주거가 고려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좌파 정치는 우크라이나 내 삶의 불평등, 전쟁으로 인한 경제 파괴, 확대되는 사회 불평등을 다루어야 한다. 국제 원조에 대한 의존은 국가를 취약하게 만들고, 대출과 이자는 막대한 부채 부담을 낳아 국민에게 전가되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가속화한다. 부채 탕감이 필요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자원의 헐값 매각과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연합(EU) 가입은 위험 요소를 수반하지만,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민주적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 제도, 의료 시스템, 노동권, 재건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좌파 운동이 필요하다.
기억문화, 극우, 군대
기억문화는 우크라이나에서 치열하게 논쟁되는 주제로, 나치즘과 스탈린주의 양쪽 모두에 대한 성찰과 관련된다. 이는 좌파의 주변화와 극우 정치 세력의 형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2025년 5월 8일, 우크라이나는 나치로부터 해방된 지 80주년을 기념했다. 이는 2024년부터 의도적으로 5월 9일이 아닌 날짜에 기념하게 되었는데, 이는 러시아의 추모 행보와 거리를 두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러시아의 침공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다. 이와 관련해 독일 내에서도 시선을 다시 맞춰야 한다. 붉은 군대에서는 1941년부터 16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출신 사람들이 함께 싸웠다. 여기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카자흐스탄 등도 포함되며, 이들은 독일 국방군에 맞서 싸웠다. 우크라이나는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하여 비례적으로 더 많은 희생자를 냈다. 특히 바비 야르(Babyn Yar) 학살은 이를 상기시킨다. 1941년 9월, 독일 SS 특수부대는 단 이틀 만에 거의 3만 4천 명의 유대인을 총살하고 바비 야르라는 키이우 인근 협곡에 집단 매장했으며, 일부는 산 채로 묻혔다. 나치의 이러한 만행은 오랫동안 독일 학계와 역사 청산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내에서도 이 학살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투쟁이 있었지만, 국가적 기억은 주로 소련 측 희생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이로 인해 해당 장소에서 희생된 유대인, 신티(Sinti), 로마인(Roma), 장애인,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기억은 가려졌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기록 보관소가 개방되면서 비로소 포괄적인 추모와 역사 청산이 가능해졌다. 현재 바비 야르에는 다양한 희생자 집단을 기리는 개별 기념비들이 존재하며, 바비 야르 홀로코스트 기념센터(Babyn Yar Holocaust Memorial Center)에서는 더 큰 추모 및 연구 센터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러시아 출신을 포함한 다수의 과두재벌들이 관여하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지 기념 단체들은 이를 두고 ‘기념의 디즈니화’가 우려된다고 비판한다.
우크라이나 반란군(UPA)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B)의 나치 정권과의 협력은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UPA는 OUN-B의 군사 조직으로,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의 지도 아래 반공주의적이고 울트라 민족주의적이며 반유대주의적 요소를 포함한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민족 청소와 학살에 관여했다. 독립된 우크라이나 국가 수립이라는 목표가 나치로부터 거절되자 OUN-B는 1943년 이후 독일 국방군에 맞서 싸우게 된다. 반데라 본인은 1941년부터 작센하우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2015년 제정된 탈공산화법(Dekommunisierungsgesetz)은 OUN과 UPA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들을 독립 투사로 규정하고 참전용사 지위를 부여했다. 이 법은 또한 공산주의와 나치의 범죄를 동일시하며, 공공장소에서 해당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에트 시절 기념물들이 철거되었고, 반데라의 이름을 딴 거리들도 생겨났다. 역사학자 뱌체슬라프 리하체프(Viacheslav Lichachev)는 현재 전쟁으로 인해 이러한 역사 논쟁이 일시 중단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공산주의와 나치의 동등한 범죄 시각이 반좌파적 내러티브를 조장한다고 경고한다.
러시아는 이러한 역사 해석을 활용해 이번 전쟁을 '파시즘에 맞선 전쟁'으로 규정하며, 유럽연합(EU)을 파시즘의 동조자로 매도하고 있다. 동시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재해석과 소련 역사의 영웅화는, 스탈린 시대의 범죄들(예: 홀로도모르)과 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외면한 채, '서방'에 맞서는 제국주의적 정치 도구로 활용된다.
조직화된 우크라이나 극우는 여전히 UPA와 반데라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2019년부터 특히 2022년 이후로는 의회에서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 2019년 총선에서 극우 정당 스보보다(Swoboda)는 우익 섹터(Rechter Sektor), 국민군단(National Corps)과의 연합에도 불구하고 2.4% 득표에 그쳤으며, 단 한 명만이 지역구에서 당선돼 우크라이나 의회(베르호브나 라다)에 입성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거부하고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극우의 입지는 매우 협소하다. 안드리 빌레츠키(Andriy Biletsky)가 이끄는 제3돌격여단 같은 부대는 전쟁 영웅 서사를 통해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많이 논의된 아조우 여단(Asow-Brigade)은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성격을 지닌 조직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2014년 자원자로 구성된 부대로 시작한 아조우는 극우 구성원들과 인권침해 혐의로 비판받았다. 미국은 2015년에 아조우에 대한 무기 지원을 금지했지만, 지난해 이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아조우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에 편입되어 정규 연대로 전환되었고, 2022년 마리우폴 전투에서 격렬한 저항을 벌이며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후 극우 핵심 인사들이 떠나면서 조직의 이념적 성격은 희석되었다. 현재 아조우 운동은 군사, 정치, 시민사회, 준군사 조직이 혼재된 느슨한 네트워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극우 세력은 조직적으로는 사회적으로 거의 존재감이 없으며,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극우 폭력 사건은 감소했다. 이는 다수의 네오나치들이 군에 입대한 데 기인한다. 그러나 최근 1년 사이, 극우 청년 단체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으며, 독일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LGBTIQ 커뮤니티를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군사주의 중심주의가 낳는 남성우월주의와 전투정신의 미화는 우크라이나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전쟁에 따른 군비 경쟁 논리가 유럽 전역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의 좌파는 이제 우크라이나를 '파시즘의 소굴'로 간주하며 폄하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이는 사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잔혹한 제국주의 침공을 정당화하려는 러시아의 서사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는다.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기억 정책은 문제적이며, 소련 시대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나치 협력에 대한 정교한 역사 청산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개혁적 좌파의 입지를 좁힌다. 전쟁 중에는 이러한 정책을 수정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독립 투쟁에 대한 영웅화 서사는 오히려 강화되며 현재의 대러시아 저항과 결합된다. 전쟁은 국가 정체성 강화, 군사 중심 사고, 극우 및 권위주의 영향에 대한 사각지대를 키운다. 그럼에도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민사회 주체들이 존재한다.
전쟁 이후에는 정교한 역사 청산이 결정적 과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적 좌파와 학계가 더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적 함의: 독일 좌파 외교 정책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방문은 독일 좌파 내에서도 계속되는 논쟁, 즉 우크라이나 지원 여부에 관한 논쟁과도 연결된다. 독일 좌파당(DIE LINKE)은 당 대회를 통해 국제법을 명확히 지지하며, 이에 따라 러시아의 국제법 위반 전쟁을 반대하고, 유엔 헌장 제51조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무기 지원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분명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2024년 다시 시작된 러시아의 대규모 공격을 고려할 때, 이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에서는 훨씬 더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무기 지원 없이는 전선에서 싸우는 수많은 동지들도 무기력했을 것이다.
좌파당은 러시아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를 분명히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독일 내 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붕괴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채무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명확히 지적하며,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효과적인 방어와 자위권 행사 문제는 여전히 명백한 공백 상태로 남아 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외교는 군사적 세력 균형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 무방비 상태의 우크라이나는 협상 테이블에서 아무런 협상력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연대 운동 역시 대부분 자유주의 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좌파가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가 어려워진다. 설득력 있는 좌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지정학적 전략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국제법과 평화의 보장을 위한 좌파의 대안적 비전이 필요하다. 이때 분명한 지침은 인권의 보장과 폭력의 금지가 되어야 한다. 현재의 국제 기구들, 특히 유엔(UN)은 기능이 마비되었고 효과도 미미하다. 따라서 유럽연합(EU)의 역할을 재고하고, 그것을 서방과 동방의 권위주의 블록 간 대결 구도 속에서 좌파적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얀 슐레머마이어(Jan Schlemermeyer)는 2022년에 이렇게 썼다.
“중기적 목표는, 유럽연합이 미국과 러시아/중국 사이의 블록 대결에서 독립적으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이는 동유럽의 좌파 정당들만의 요구가 아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면에서도 전혀 다른 출발점을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독일 좌파당(Die Linke)은 실제로 제3의 입장을 형성하고, 유럽 프로젝트의 좌파적 날개로서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동유럽 국가들과 그 안의 진보적 좌파 세력들은 유럽연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컨대 루마니아, 조지아, 몰도바 등의 선거에서 러시아는 유럽 친화적 정당과 정치인을 겨냥해 허위정보 캠페인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동시에 서방의 행위자들 역시 경제적 종속 관계를 만들고 NGO 지원 등을 통해 사회에 이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러나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삶을 향한 열망은 해방적 좌파에게 있어 중요한 연결고리다. 목표 중 하나는, 동유럽의 국가사회주의 경험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요소들—예컨대 사회적 보장이나 집단경제—을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전망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해방적 사회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일 수 있다. 어쩌면 여기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좌파들과의 협력 강화를 촉구한다. 그들의 경험과 요구를 연대적이고 해방적인 실천의 토대로 삼기 위해서다.
[출처] Die ukrainische Linke verdient es, gehört zu werden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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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레 나겔(Jule Nagel)은 작센 주의회 의원이며, 라이프치히 남부 선거구에서 세 차례 연속으로 지역구 직선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개방형 의원 및 프로젝트 사무소인 linXXnet의 공동 설립자다. linXXnet은 그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중동부 및 동유럽 좌파들과의 프로젝트 및 협력의 일원이자 동력이 되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