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왜? 문제는 자본주의

출처: Unsplash, Marek Studzinski

지난해 10월 21일 독일의 외무부 청사 앞에 일군의 군중이 모여 집회를 벌인 일이 있었다. 그 집회를 조직한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 집단들이었다고 한다. 튀르키예의 국영 통신사 아나돌루 아잔시는 그들이 모인 것은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이 10월 10일 연방 의회에서 행한 발언의 내용 때문으로 전하고 있다. 베어보크 장관이 무슨 말을 했기에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항의 집회를 한 것일까.

“레바논이 붕괴하기 직전입니다. 우리는 레바논에서도 테러리스트가 무책임하게 민간인들 뒤에 숨어서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베어보크가 말하는 ‘테러리스트’란 헤즈볼라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가장 큰 합법적 정치 및 군사 세력에 속한다. 베어보크는 그런 세력이 민간인 뒤에 숨어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한다며 테러리스트라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전혀 조리에 맞지 않다. 레바논의 합법 세력이 레바논에 있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베어보크는 헤즈볼라가 합법적으로 레바논 민간인과 함께 있는 것을 테러범이 하는 짓거리로 몰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이 그런 공습을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하마스 세력을 제거한다며 민간인 학살행위를 자행하는 데 대해 같은 이슬람으로서, 또 저항의 축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을 초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안지구를 유린한 데 이어서 레바논 영토까지 침공한 것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기도 하다. 게다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과는 달리 전쟁 수칙을 지키고 공습 대상을 군사시설에 국한하며, 가자지역과 베이루트 등을 무차별 폭격해 고의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범죄는 저지르지 않는다. 

베어보크가 민간인 뒤에 숨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며 헤즈볼라를 비난한 데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 헤즈볼라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이라도 해서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살상하는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그들의 고향에서 쫓아낸 나크바를 저지른 뒤로 폭행, 불법적 체포, 고문, 성폭행, 살상 등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들은 지금도 2023년 10월 7일에 자국을 공격한 하마스 세력을 제거하겠다며 가공할 폭격으로 가자지역을 초토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극악무도한 행위로 수십 만의 사상자를 낸 것에 대해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독일 등 서방 세력은 ‘부수적 피해’라고 둘러댄다. 

국제법에 따르면, 적군을 공격하더라도 비전투원 즉 민간인의 희생이 나올 것이 명확하면 공격을 멈춰야 하는 것이 의무다. 그런 규정이 생긴 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역에서 저지르는 것처럼 소수의 하마스 전투원을 공격한다며 수십 만의 비전투원을 희생시키는 따위의 불법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도 베어보크는 헤즈볼라 군이 “민간인 뒤에 숨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민간인이 전투원과 함께 있으면 공격해도 좋다는 것으로 위법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작년 9월 27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하며 33명 이상의 사망자, 175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독일의 정치계급이 이스라엘의 천인공노할 인종청소 행위를 두둔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일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자행한 불법적 침탈 행위를 외면한 것은 물론이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에 맞서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펼친 뒤 이스라엘군이 가자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하는 동안 독일은 이스라엘에 엄청나게 많은 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법을 위반하며 학살행위를 자행하는데도 이스라엘을 지원해주는 나라가 물론 독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의 선두에는 미국이 있고,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친다. 그러나 최근의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독일이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제공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등에서 자행한 학살을 앞장서 지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일은 이스라엘 지원이 자국의 국가이성이라고 말한다. 독일의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2008년에 이스라엘의 의회 크네세트를 방문해 “이스라엘의 안보는 독일의 국가이성”이라고 말하며 독일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책임을 지고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국가이성’은 “국가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국가의 행동 기준”을 가리킨다. 독일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자국의 국가이성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가는 메르켈의 후임자인 숄츠와 그가 이끄는 연립정부가 10월 7일 사태 이후 미국 다음으로 그리고 유럽에서는 최대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한 점이 웅변하는 셈이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나치 지배 시절 독일은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독일 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해 원죄 의식을 갖는 것은 그런 면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의 행태를 보면 이스라엘에 대한 죄의식을 강조하는 것이 사실은 계산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에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해 불법화했다고 전해진다. 언뜻 보면 과거 자신이 유대인에게 자행한 학살행위를 반성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불법화 이후 독일 당국이 보인 행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독일 당국은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에 항의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과 온라인 등에서 비판 활동을 조직한 친-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빈번하게 탄압하고 체포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이스라엘의 안보를 자국의 국가이성으로까지 격상한 것을 ‘과거 청산(Vergangenheitsbewältigung)’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독일 사회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 하는 것이야 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독일이 20세기 후반에 국제사회에서 제법 좋은 평가를 받은 데에는 유대인 학살을 뉘우친 모습을 열심히 보여준 점이 적잖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인의 견지에서 보면 독일이 과거 청산에 나선 태도는 식민 지배 기간 온갖 악행을 저질러 놓고 아직 제대로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일본과 비교하면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정말 제대로 청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년 11월 1일과 올해 1월 3일 자로 서아시아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 아이>에 기고한 두 편의 글에서 독일 포츠담대학의 사회학 교수 위르겐 마케르트가 하는 지적이 정곡을 찌른다. 마케르트 교수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데 대한 반성으로 독일이 이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스라엘을 지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과거 청산의 태도라기보다는 자국 이익을 계산한 행보인 측면이 크다. 독일은 이스라엘의 안보 지원을 국가이성이라 강조하지만, 독일이 청산해야 할 과거에는 유대인 학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에는 예컨대 아프리카의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1904〜08년 사이에 헤레로족 6만과 나마족 1만 명 이상을 살해한 죄과도 있다. 자신의 잔혹한 식민 지배의 청산을 계속 외면해오던 독일이 나미비아에서 대규모 종족살해를 범한 사실을 인정하고 30년에 걸쳐 11억 달러 정도의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 겨우 2021년이다. 이런 점을 놓고 보면, 독일이 자신의 죄악을 유대인 홀로코스트로만 국한하는 행위는 과거 청산이 아니라 은폐일 소지가 다분하다. 유대인에 대해서만 사죄 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정착-식민 역사를 포함한 자신의 다른 잘못된 과거는 청산의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심산일 공산이 큰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해 앞장섬으로써 독일은 새로운 범죄에 가담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종족학살은 독일 나치 세력의 소행을 빼닮았을 뿐만 아니라 능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도 독일은 국가이성을 내세워 미국 다음으로 이스라엘에 가장 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그런 지원은 나치 시기 자신이 범한 종족학살 행위를 반복하고 정당화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가자지역에서 대규모 살상행위를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국가이성의 명분으로 지원하면서 독일은 스스로 말하는 과거 청산을 사실상 무효로 만드는 셈이다. 

마케르트는 독일이 유독 유대인 홀로코스트만 자국이 저지른 유일무이한 절대적 과오로 치부하는 것은 교활한 역사 왜곡이요 부정인 것으로 본다. 나치 치하 시기 12년은 독일 전체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비정상적이며 비이성적인 시기였을 뿐이고, 독일은 원래 계몽된 문명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수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국제 범죄 행위가 나치 시기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에는 그전에 이미 아프리카와 태평양, 중국 등에서 식민지 또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자행한 역사가 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만 죄의식을 표명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다른 부끄러운 역사를 은폐하기 위함인 측면이 크다. 마케르트는 자신의 역사적 범죄 전체를 인정하지 않는 한 독일 사회는 왜 자국이 나치 시기에 홀로코스트라는 극악한 반인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나치 독일은 그냥 하늘에서 전례 없는 문명 붕괴 상태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문명국가’ 독일이 최근에 보인 반문명적 행태가 개인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 역사적 원인을 이해하는 데에 마케르트의 논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기 모국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를 국제무대에 고발하는 서구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 베어보크 같은 독일 지배층은 왜 레바논을 불법 침략한 이스라엘군 대신 자국 영토를 지키는 헤즈볼라 세력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지, 독일은 왜 미국 다음으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많이 지원하는지, 왜 최근에 이스라엘 비판을 반유대 범죄로 만들었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독일의 역사적 범죄를 들춰내 신랄하고 엄정한 비판을 가하는 그의 논고 덕분이다. 

마케르트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테러 행위를 지원하는 것이 독일에는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이때 ‘독일’을 독일의 인민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불법적 종족학살을 비판하는 반유대 행위로 처벌받는 독일인들은 독일의 정치계급, 이들과 함께하는 지배 블록, 특히 자본 세력과 구별해야 하며, 독일의 과거 청산도 다른 방식으로 하려 한다고 봐야 한다. 독일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할 때 ‘독일’은 따라서 독일의 인민과는 다른, 독일 상층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일 국가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마케르트는 독일 당국이 지금 “수많은 독일 은행들, 보험사들, 투자자들, 연구 기관들, 대학들, 무기회사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독일이 한사코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나서는 것은 그들 지배 블록이 “시장, 이윤, 그리고 중요한 지식”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지식노동자 출신으로서 나는 독일의 연구 기관과 대학들이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인 종족학살에 가담하고 있는 점에 대해 특히 관심이 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처럼 독일에서도 작년에 대학에 이스라엘의 가자 인민 학살을 규탄하는 집회가 널리 열렸었다.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 행위라는 법이 제정되었으니 그런 집회가 용납되었을 리는 없다. 반유대 행위 통제에는 대학 당국들도 소매 걷어 올리고 나선 모양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할 것이 예상되는 외부 강사의 초청 강연을 취소시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와 함께 대학들이 일제히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였다는 전언도 있다. 이스라엘의 대학이나 연구소가 이스라엘의 점령 및 학살행위에 연루된 것을 알면서도 독일 대학들이 그들과의 협력을 위한 예산을 늘린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독일과 이스라엘 대학 간의 협력 증진을 ‘학술적’인 순수한 활동이라고 옹호한다면 누가 믿을까. 설령 그런 성격을 지니더라도 그것은 양측이 이미 이익공동체라는 점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독일과 이스라엘 대학들에서 진행하는 공동 연구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생체 정보 등을 활용해서 위치를 특정해 정밀 타격하는 기술의 개발도 포함되어 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독일 대학과 연구소 등은 이스라엘의 상대와 더불어 종족학살에 참여하는 것과 진배없다. 물론 그들이 수행하는 연구의 많은 부분은 미국 다음으로 무기를 많이 제공하는 독일의 군수 자본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마케르트에 따르면 독일에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에 감시 기술에서 인구 관리에 이르기까지, 드론과 AI 전쟁에 이르기까지 독일 측이 배울 것이 무척 많은 팔레스타인 실험실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이런 점은 독일이 스스로 국제법을 무시하며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이 문명국의 국가이성과는 관계가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자신이 과거 나치 시절에 행한 것과 다르지 않고 심지어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그렇다면 독일의 이해관계 때문인 셈이다. 단 이때 이익이 독일인 전체의 것이라기보다는 지배계급의 그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독일 당국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나서는 자국 인민을 탄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민의 그런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익과 상반된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일 것이다. 역시 문제는 다수의 이해관계와 소수의 이해관계를 대립시키는 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덧붙이는 말

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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