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철도 사고에 대응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사고로 인한 책임과 온갖 비난은 문제가 일어나고 난 뒤 한 명에게 뒤집어 씌워지거든요. 아무 일 없으면 어영부영 넘어가고 문제가 되면 허둥지둥 옭아매고요. 딱 한 명만 책임지면 사고는 그냥 그렇게 넘어갑니다. 시스템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직원들의 교육 시간, 안전을 다짐하는 횟수만 늘어날 뿐입니다. 회사는 한 명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이를 지켜본 모든 직원이 정신을 바로 차리고 집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같은 사고는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납니다. 한 놈만 팬다는 그 영화 주인공은 이렇게 다음 대사를 이어갑니다.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상관없어, 난 한 놈만 패.”
참세상 자료사진
철도 기관사는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있을 수 없죠. 안전은 사고의 교훈을 통해 진보해야 합니다. 안전한 시스템도 갖추어야 하고요. 철도는 사람과 시스템의 조합입니다. 사고는 고도의 기술과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발생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신이 아니니까요. 사람의 실수를 백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데, ‘직원을 엄히 가르치면 실수하지 않겠지’라는 잘못된 안전문화가 문제입니다.
회사 징계로는 부족했는지, 현재 정부는 기관사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철도안전법이 개정돼 업무 중 과실로 인한 잘못까지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합니다. 승객들을 해치려는 테러나 납치범에게나 적용되는 줄 알았던 철도안전법이 도리어 기관사를 죽이고 있습니다. 물론, 잘못한 기관사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설령 일하다 하는 잘못이라도 벌을 피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무엇을, 얼마나 그릇되게 했는지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요. 수사 기관은 “누구 짓인가,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려서 처벌하려고만 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형법으로 들볶아 기관사들을 전과자로 낙인찍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유가 하나뿐인 사고는 없습니다. 복잡한 사고를 단순화해서 사고의 꼭짓점에 있는 기관사에게 무작정 떠넘기고 있습니다.
출처:철도노조
더 나아가 국토부는 열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 설치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고조사와 경위 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기관사가 운전하는 열차는 선로를 따라 신호 조건에 맞춰 움직입니다. 움직이는 열차에는 사고를 대비해 여러 보안장치도 설치돼 있습니다. 여러 보안장치는 열차가 속도를 초과하면 줄여주고 신호를 위반하면 멈추게 해줍니다. 기관사가 졸면 벨이 울리고 5초 안에 반응이 없으면 열차는 멈춥니다. 긴급한 상황에 ‘열차방호장치’가 동작하면 반경 2㎞ 이내에 모든 열차는 멈춰 서고요. 기관사가 통화하는 무전은 실시간 녹음되고 제어하는 모든 기록은 ‘열차의 블랙박스’라 불리는 ‘운행정보기록장치’에 보관됩니다. 기관차 앞에는 카메라가 달려있어 전방을 상시 녹화하고 있죠. 기관차에서 기관사가 다루는 모든 것은 기록되고 보관되어 확실히 알 수 있는데도 국토부는 애써 열차 운전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고 합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면 처벌을 쉽게 할 수는 있겠지만 사고를 막을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업무 중 감시가 붙는다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렇다고 카메라 설치를 다짜고짜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믿음 없는 감시에 반대하는 겁니다. 일부러 사고를 내는 기관사는 없습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전에 책임을 추궁해 어떻게든 불이익을 주려는 철도 안전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덮어놓고 탓하는 철도안전법을 개정하고 난발하는 과태료 부과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인은 놔두고 평가와 책임을 떠넘기는 데에 감시카메라가 쓰일 게 뻔합니다. 무슨 꼬투리를 어떻게 잡을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감시카메라가 부디 약자를 보호하고 안전해지는 일에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폭주 기관차는 없습니다. 사람과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감시한다고 폭주하는 기관차를 막을 수는 없는 겁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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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는 철도노조 대전기관차승무지부에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