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세상을 떠났다. 이후 거의 모든 신문과 잡지에서 그를 혁신적인 학자이자, 아마도 한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로 평가하는 찬사가 담긴 부고 기사가 이어졌다.
그의 저서를 읽지 않았더라도, 카너먼의 생각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할 가능성이 크다. 그의 기념비적인 논문인 「불확실성 하에서의 판단: 휴리스틱과 편향(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이나, 베스트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을 읽지 않았어도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카너먼의 이론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다.
카너먼과 그의 자주 협업한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다양한 인지 편향과 휴리스틱(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 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간편하고 직관적인 방법이나 규칙)을 발견하고 이를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하다. 애틀랜틱(The Atlantic)은 카너먼을 “사람들이 어떻게 잘못 판단하는지에 대한 최고의 학자”라고 정확하게 평가했다. 이러한 연구는 심리학자, 행동 경제학자, 인지 과학자들이 각기 다른 인지 왜곡들을 분류하려는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냈으며, 이제는 그 왜곡들이 수십 가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비록 많은 연구들이 최근에 반박되기도 했지만).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출처: 위키미디어
하지만 이러한 연구의 광범위한 영향에도 좌파 매체들은 카너먼의 죽음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아마도 좌파에게는 카너먼이 그저 괴짜 연구원에 불과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의 경우, 좌파는 카너먼을 유용한 동맹으로 볼 수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카너먼의 연구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논리의 중심에 있는, 완벽히 합리적이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신자유주의적 모델에 결정타를 날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배층은 카너먼과 그의 사상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그의 연구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보다 엘리트에게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카너먼의 연구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정면 공격으로 요약되며, 그 정치적 결과는 암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모든 요리사가 스스로 통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통치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카너먼과 그를 따르는 자유지상주의적 온정주의자(Libertarian Paternalist,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부모'처럼 그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 접근)들의 연구를 읽고 나면, 요리사의 자치 능력이 매우 부족하게 느껴진다.
카너먼의 성공은 견고한 실험적 연구가 아니라, 기묘한 속임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의 실험들은 합리성을 엘리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한 대중의 반대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재정의했다. 한 사례로, 그의 연구는 엑손모빌(ExxonMobil, 당시 엑손코퍼레이션)이 그들의 가장 큰 환경 재앙인 엑손 발데스(Exxon Valdez)호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해 수십억 달러를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
이 이야기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사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내 팟캐스트 Cited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여 오디오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발견한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알래스카 코르도바(Cordova, Alaska)의 항구와 오르카 인렛(Orca Inlet)이 보이는 일몰. 제공: 린든 오툴
"그곳은 나의 성지였다"
이 이야기는 1989년, 프린스 윌리엄 해협(Prince William Sound)의 작은 알래스카 어촌 커뮤니티인 코르도바(Cordova)에서 시작된다. 린든 오툴(Linden O'Toole)은 막 그곳으로 이주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곧바로 매료되었다. "그곳은 나의 성지였다"고 오툴은 나에게 말하며, 그의 새로운 고향을 둘러싼 눈 덮인 산, 급류, 끝없는 숲을 묘사했다.
오툴은 곧 환경, 어업, 그리고 어부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지역 어업 산업에 뛰어들어 상업 어업 허가증을 구입했는데, 그 비용은 무려 30만 달러로, 집값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해, 1989년 3월 24일,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되며 약 1,100만 갤런의 기름을 해협에 쏟아냈다. 오툴과 그의 어린 가족은 거의 모든 것을 잃었고, 결국 산업과 커뮤니티를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35년이 지난 후, 내가 1989년 3월 24일에 대해 묻자 오툴은 즉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고 직후 그는 코르도바 시청에서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모으는 일을 했다. "한 남자가 바다수달이 눈에 묻은 기름 때문에 눈을 긁어내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고 오툴은 회상했다.
“모두 마음속에 샹그릴라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당신의 샹그릴라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달라.” 오툴에게 엑손은 이 샹그릴라를 파괴한 책임을 져야 했다.
오툴과 약 3만 4천 명의 다른 알래스카 주민들은 엑손을 상대로 역사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은 사고로 인한 경제적, 환경적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겼다.
1994년, 배심원단은 50억 달러라는 전례 없는 금액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결정했다. 그러나 14년 후, 미국 대법원은 이 금액을 약 5억 달러로 줄이며 90%를 삭감했다.
오툴과 그의 변호인단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합리성에 대한 논쟁에서 졌기 때문이다.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학자들, 그 중에는 카너먼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배심원의 의사결정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는 배심원들이 이러한 사건을 제대로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분노한 12명의 알래스카 주민
"그건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솔직히 말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자넷 게리슨(Janette Garrison)은 말했다. 게리슨은 초등학교 청소부였으며, 1994년 사건의 12명의 배심원 중 한 명이 되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다. 대체 우리가 이걸 어떻게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을까?”라고 묻던 그는 손해 배상을 계산하는 작업이 당시 얼마나 막중한 책임으로 느껴졌는지 회상했다.
게리슨은 이 12명의 배심원들을 잘 대변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청소부, 맥도날드 계산원, 승무원, 공장 노동자 등 평범한 노동 계층에서 일했으며, 일부는 실직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리슨과 다른 배심원들은 사건을 놀랍도록 잘 이해하며 논리적으로 판단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전문가들보다 사건을 더 잘 파악하는 듯했다. 이 사건을 다룬 책의 저자이자 변호사인 데이비드 레베도프(David Lebedoff)는 "이 사건의 배심원들은 매우 열심히 임했다“며 “이 배심원단은 변호사들보다 더 똑똑했다”고 말한다.
레베도프의 설명에 따르면, 배심원단은 변호인들이 사건의 핵심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교한 롤플레잉을 했다. 배심원들 중 각기 다른 인물들이 양측을 대신해 배심원실에서 사건을 재판했다.
알래스카 코르도바(Cordova, Alaska) 외곽의 어선. 제공: 린든 오툴
이와 같은 12명의 알래스카 주민들이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엑손의 변호인단은 회사가 유출된 기름을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초기 정화 작업은 논란이 되었지만, 5년 후 열린 재판에서는 엑손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리슨은 그렇게 쉽게 믿지 않았다. 그는 판사에게 배심원단이 해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현장 답사를 요청했다. 판사는 이를 허락했다.
게리슨은 기름을 찾아 뒤집을 각오로 자신의 노란색 고무 주방 장갑을 가져갔다. 그의 노란 장갑은 검게 변했다. “정말 화가 났다”고 게리슨은 말한다. “정리했고 이제 없다고? 아니, 아직 있다!”
곧이어 러셀 홀랜드(Russell Holland) 판사는 가득 찬 청중 앞에서 평결을 읽었다. "내 기억으로는 50억 달러라는 평결을 읽었을 때 법정이 그냥 폭발할 듯한 분위기였다"고 그는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그러나 엑손은 이 특정 배심원단뿐만 아니라 배심원제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인지 공학의 일반 원칙"
엑손은 항소심에서 배심원단의 의사 결정에 관해 그들이 자금을 지원한 학술 연구를 자주 인용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2002년에 출판된 『징벌적 손해배상: 배심원단은 어떻게 판단하는가(Punitive Damages: How Juries Decide)』라는 편집된 논문집이었다. 이 책의 주요 편집자는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었고, 저명한 심리학자, 행동 경제학자, 법학자들이 기여했으며, 그중에는 대니얼 카너먼, 리드 해스티(Reid Hastie), 데이비드 A. 샤케이드(David A. Schkade), W. 킵 비스쿠시(W. Kip Viscusi), 존 W. 페인(John W. Payne)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배심원단은 복잡한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을 다룰 경험, 전문성,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인지 편향과 휴리스틱의 존재가 그들의 의사 결정을 흐리게 하며, 그들은 주로 "비합리적인" 민속적 개념에 따라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저자들의 연구 방법은 모의 배심원단을 소집하거나 때때로 개인들의 의견을 통계적으로 종합해 "합성 배심원단"을 만들었다. 이 실험적 배심원단은 일관성 없는 판단을 내리며, 결론적으로는 혼란스러운 평가를 내렸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자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제의 요구 사항에 맞춰야 한다”는 인지 공학의 일반 원칙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전문가 행정 시스템이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보다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래스카 코르도바(Cordova, Alaska) 바깥에 있는 낚시배. 제공: 린든 오툴
"수많은 논문들"
여러 법학자들은 이 책의 방법론, 결론, 그리고 그 규범적 전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의 배심원 연구자인 메리 로즈(Mary Rose) 교수는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문제를 식별하고, 배상금에 많은 변동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연구자가 나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로즈 교수는 너무 많은 논문이 너무 빨리 '배심원단이 무능하다'는 결론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잠재적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개혁 또는 교육 조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듀크대학교의 명예교수인 닐 비드마르(Neil Vidmar) 교수는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에 대해 에모리 법학 저널(Emory Law Journal)에 광범위한 방법론적 반박문을 작성했다. 그 기사에서 그는 실험자들이 특정 결과에 편향되어 있었던 여러 사례를 제시했으며, 이는 연구 결과의 일반화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비드마르는 실험자들이 작성한 모의 재판 설명에서 원고의 주장을 피고의 주장보다 다섯 배 더 많은 문장으로 설명한 사례를 지적했다. 그 설명을 바탕으로 의논한 실험 참가자들은 “가혹성 이동(severity shift)”을 보였으며, 이는 집단 의사결정의 결함을 나타내는 증거로 해석되었다. 참가자들은 일종의 심리적 집단사고에 빠져, 그룹에 들어가기 전보다 더 가혹한 배상액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드마르에 따르면, 더 단순한 설명이 있다. 증거가 가혹한 결정을 내리도록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룹이 더 가혹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로즈와 비드마르의 연구는 실험과 달리 실제 배심원들의 관찰 및 징벌적 배상에 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이 방법론들은 배심원단의 합리성에 대해 매우 다른 그림을 제시했다. 로즈 교수는 배심원단의 결정이 대체로 일관성이 있으며, 그들의 사고는 사건에서 제시된 증거의 강도와 같은 합리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실험적 결과와 실제 판결을 기록한 연구 결과가 이렇게 상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로즈 교수는 주장한다.
“연구 결과의 왜곡”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스탠포드 로스쿨 학생이었던 시린 A. 바다이(Shireen A. Barday)는 한 수업 과제를 위해 이 연구를 검토했다. 현재 팔라스 로(Pallas Law)의 파트너인 바다이는 그의 발견을 2008년 스탠포드 로리뷰(Stanford Law Review)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는 1992년부터 2007년까지 징벌적 손해배상과 배심원 의사결정에 관한 모든 학술 연구를 추적했다.
그가 찾은 총 33편의 논문 중 약 절반은 기업의 자금 지원을 받은 연구였고, 그 절반 중 대부분은 엑손이 지원한 것이었다. 『징벌적 손해배상: 배심원단은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바다이가 추적한 이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논문들 중 다수를 포함하고 있었다.
결국 엑손은 전체 학술 연구의 3분의 1을 지원했다. 즉, 엑손은 15년 동안 이 주제에 대한 전체 학문적 지식 기반의 3분의 1을 후원한 것이다.
게다가, 기업이 자금을 지원한 논문들은 실제 법정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기업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는 25건의 실제 판결에서 인용되었지만, 일반 대학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는 단 한 건의 판결에서만 인용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징벌적 손해배상 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이 학문적 기반을 오염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바다이는 말한다. “배심원단이 합리적으로 처벌을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퍼뜨린 것이다.”
일부 편향을 보고 다른 편향을 놓치다
물론 엑손이 이 학자들에게 과도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거는 없다.
6명의 저자는 모두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거나 무시했으며, 그중에는 카너먼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이 글을 위한 조사를 하던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연구가 내부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엑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듀크대학교의 명예교수 존 W. 페인은 자신이 이 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서면 성명에서 밝혔다.
그러나 연구 자금이 연구 결과에 우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충분한 학문적 증거가 있다. 또한, 카너먼 등은 분명히 잘 알고 있을 심리학 연구 중 많은 것들이 이러한 연구 관계에서 암묵적 편견이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학자 윌리엄 R. 프로이덴버그(William R. Freudenburg)의 경험은 이러한 편향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프로이덴버그는 엑손으로부터 연구 의뢰를 받았고, 그는 이 경험을 기록한 광범위한 필드 노트를 남겼다. 나중에 그는 이를 잘 알려지지 않은 학문적 폭로로 출판했다. 이 논문에서는 엑손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프로이덴버그는 후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즈(Los Angeles Times)의 앨런 자렘보(Alan Zarembo)에게 엑손이 그 논문의 주제임을 확인했다.
프로이덴버그는 엑손 변호사가 연구를 법적 무기로 사용하려는 이유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판사들은 보통 연구 논문을 읽지 않지만, 그들의 서기가 이를 읽습니다. 그리고 요즘 서기들 중 상당수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이제 법과 경제학 프로그램을 졸업했습니다.” 변호사는 프로이덴버그의 필드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프로이덴버그는 엑손의 지원을 받아 연구 논문을 작성하기로 동의했다. 하지만 엑손은 최종 원고가 나오기 전, 그의 연구 지원을 끊었다. 프로이덴버그는 엑손이 자신에게 그들이 믿지 않는 내용을 주장하도록 압력을 가한 적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는 엑손의 친절함이 자신의 견해에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고려하며, 자가 검열 또는 자가 수정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반성했다. 그 이유는 “내가 친구로 여기기 시작한 사람들의 취향을 미리 예측하고 싶어졌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프로이덴버그는 결론지었다.
엑손이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2008년, 미국 대법원은 엑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90% 삭감하여, 엑손에게 45억 달러를 절약해 주었다. ‘엑손해운 대 베이커 사건(Exxon Shipping Co. v. Baker)’은 종종 역사상 최악의 대법원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판결에서, 대법원은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를 비난한 것처럼 보인다. 대법원의 주목할 만한 17번째 각주에서 그들은 “우리는 이 연구가 엑손에 의해 자금이 지원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적으면서, “이 연구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가 만난 많은 법학자들은 이 각주가 진심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했다. 바다이는 "자신이 편견이 없다고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정말 그 연구에서 배운 것을 분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바다이는 대법원의 논리 방식이 이 연구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용은 하급 법원에서의 항소는 물론 또 다른 대법원 사건에서 이미 등장한 적이 있었다.
알래스카 코르도바(Cordova, Alaska)의 항공 사진. 제공: 린든 오툴
이 사건은 해상 법의 특이한 면에서 결정되었지만, 대법원의 언급은 징벌적 손해배상의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H. 소터(David H. Souter) 대법관은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예측할 수 없고" "이상하다"고 말하며, “처벌은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명도 연구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동의한다.
"나는 또한 이 연구가 엑손 발데스 사건과 다른 법원 판결에서 미친 영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대법원이 우리의 연구를 인용하는 데 신중했지만 말이다"라고 페인 교수는 성명에서 썼다.
징벌적 손해배상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배심원 의사결정 연구로 돌아오지 않았다. 카너먼은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받았다. 그의 공동 저자이자 자주 협력한 선스타인은 오바마의 널리 알려진 '넛지(Nudge)' 팀을 이끌게 되었다.
합리성 전쟁
카너먼의 휴리스틱과 편향 연구 프로그램은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지만, 이러한 비판은 학계 밖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Gerd Gigerenzer)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와 일련의 논쟁을 벌였는데, 이것은 이른바 ‘합리성 전쟁’으로 불렸다.
“이것은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또한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는 통찰”이라고 기거렌처는 이 논쟁에 대해 말한다.
기거렌처는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서 나타나는 암울한 결과가 단순히 연구자들이 실험을 더 자연스럽게 표현하면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앞서 내가 카너먼의 연구를 "기만적인" 연구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해석될 수 있다. 실험은 세심하게 연구자들이 실험 참가자들을 속이려는 일종의 마술 같은 속임수라는 의미이다.
기거렌처의 합리성에 대한 설명은 피실험자의 실제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 더 민감하며,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을 고려하는 다원적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여기에는 문화적·사회적 지식, 대화의 격률, 습관, 전통, 그리고 일반적으로 유효한 정신적 지름길(즉, 휴리스틱)을 이해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과 공동체는 공유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상황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카너먼의 연구는 이런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연구는 피실험자에게 좁게 정의된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도록 요구하며, 실험 참가자들은 추상적인 논리 규칙을 따르도록 강요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예측대로 실패한다.
이것은 연구가 일종의 기만적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다. 독자가 교묘한 실험과 우리가 그 실험에서 실패하는 것에 주목하는 동안, 그 뒤에 숨겨진 규범적 가정들은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든다.
시장 친화적인 가정들
징벌적 손해배상은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에서 발전한 학문 분야인 법과 경제학의 전통을 따른다.
로즈 교수는 이 저자들의 가정을 묘사하며 “단순히 시장에 도움이 되는 특정 유형의 합리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긴다”고 말한다.
시장 친화적인 가정은 이 책의 세 가지 핵심적인 규범적 주장 아래에 깔려 있다. 이 주장은 주장으로서 제시될 뿐, 완전히 방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첫째, 법치주의는 예측 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 둘째, 피고인의 정체성(예: 회사의 규모, 위치 등)은 손해배상액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셋째, 배심원들은 기업의 비용-편익 분석에 우호적이어야 하며, 여기에는 환경 재앙에 대한 법적 배상의 잠재적 비용도 포함된다.
이 세 가지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원칙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이 항상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이유는 없다. 서로 다른 공동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환경적 피해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더 큰 회사가 더 강한 처벌을 받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더 큰 회사는 재정적 처벌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더 강한 제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의 비용-편익 분석은 도덕적으로 공동체의 비난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공동체의 고향이나 생활 방식과 같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비용으로 환산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연구 참가자들이 이러한 논란이 되는 규범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 그들의 추론은 무시된다. 그러나 이것은 논점을 회피하는 것 아닌가? 아마도 합리성의 초기 정의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구 참가자들은 단순히 실험자들과 의견이 다를 뿐이다.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내리는 처벌의 정도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비합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는 그들이 요구하는 처벌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라고 바다이는 주장한다.
자신이 참여했던 배심원단을 되돌아보며, 게리슨은 그들이 사건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엑손이 자금을 지원한 연구가 징벌적 손해배상금 50억 달러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그들의 작은 이론으로 무엇을 했든,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게리슨은 말한다. “그들은 이 일을 배심원단에게 맡겼고, 배심원단은 맡은 일을 해냈다. 그들이 더 자격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출처] The Insidious Elitist Upshot of Behavioral Economic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
고든 캐틱(Gordon Katic)은 과학, 연구, 그리고 전문성의 정치적 측면을 탐구하는 Cited 팟캐스트의 진행자이다. 그는 또한 토론토 대학교의 온타리오 교육 연구소(Ontario Institute for Studies in Education)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과학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이론화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