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6일 MBC뉴스데스크 "방문진 현 이사들 임기 연장‥이진숙 복귀해도 '2인 체제' 한계". 출처: 방송 화면 갈무리
“피신청인(방통위)이 김동률, 손정미, 윤길용, 이우용, 임무영, 허익범을 각 방문진 이사로 임명한 처분은 본안 사건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
서울행정법원(이하 법원)의 주문이다. 앞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박선아 이사는 이진숙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방문진 후임 이사를 선임한 것에 대해 ‘임명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제기했었다. 그리고 법원은 신청인들에게 발생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문 어디에도 방통위에 유리하게 해석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방통위는 항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뒤집힐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다. 이번 판결로 MBC 장악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덜게 됐다.
법원, ‘방통위 2인 체제’에 제동을 걸다
법원은 방통위 2인 체제에 관해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방통위는「방통위법」에 의해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나머지 3인은 여당 1인과 야당 2인이 추천을 받아 국회 본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 중 본인이 가진 지명권만 행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사에 대해서는 임명을 지체했다. 사실상 거부했다는 말이 맞다. 그로 인해 방통위는 1년이 넘도록 ‘5인 위원회’로 운영된 적이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방문진 이사 선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지명한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단둘이 첫 출근 날 심사와 의결을 강행한 결과다.
‘방통위 2인 체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었다. 2023년 9월, 대통령이 지명한 이동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은 전임 정부에서 임명했으나 아직 임기가 남아있던 공영방송 이사 해임안과 보궐이사 추천을 강행 처리했다. 지상파 재허가도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 2024년 2월, YTN의 최대주주를 유진이엔티로 변경하는 안건을 승인할 때도 대통령이 지명한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둘뿐이었다. 이 같은 방통위의 운영은 사실상 장·차관을 둔 독임제 부처와 다르지 않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를 독임제로 운영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 같은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해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이동관 위원장 2인 체제에서 해임된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이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이 법원에 의해 인용되면서다. 2023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방통위의 항고를 기각하며 “방통위의 위원 구성 자체에서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법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MBC의 공정성 실현을 통해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방통위법에서 정한 바와 같이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방통위의 심의·의결에 따라 임명된 방문진 이사에게 법으로 보장된 3년의 임기와 이사로서의 심의·의결권을 보장해 주고,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에 대해 사후적으로 책임을 물을 때 그 사유의 당부 판단을 엄격히 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한 방법”이라고 판시했다.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의 정당성은 본안소송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결정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월, YTN 최대액 출자자 변경 승인에 대한 집행정지 사건 판결에서도 (‘기각’ 결정을 했지만)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해 “절차적 위법성이 문제 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방통위법」 상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로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에 기대서 법에 위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방통위를 방치해왔다. 이번 재판에서 방통위도 같은 논리를 댔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피신청인(방통위)의 주장은 법률조항의 문언에 충실한 해석에 기초한 주장”이라면서 “그런데 단지 2인의 위원으로 피신청인에게 부여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을 저해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본안소송을 통해 2인의 위원들의 심의·의결에 의한 위법 여부를 다퉈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판결문에는 한 발 더 나간 문구도 등장한다. 법원은 ‘방통위원의 결원이 생겼을 때는 지체 없이 보궐위원을 임명하도록 한 점’(「방통위법」 제7조 제2항)을 언급하며 “방통위법은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기본적·원칙적으로 정치적 다양성을 반영한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회의를 전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합의제 기관의 의사 형성에는 원칙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납득되어야 하는 합치(合致)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2인 체제의 방통위’가 적법하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이 사실상 ‘떼쓰기’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2인 체제’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일관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 체제에서 의결된 안건 전체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이 져야 한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공영방송을 장악해 본인의 국정 실정을 가릴 수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다. 방통위 2인 체제를 유지하며 본인이 입맛대로 방송을 주무르려 한 윤석열 정부는 방송 전문성은 고사하고 극우적인 역사관과 법인카드 사적 이용 의혹으로 ‘부적격’ 논란이 큰 이진숙 씨를 방통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마찬가지로 방송 문외한 김태규 전 권익위 부위원장을 방통위로 옮긴 것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는 과정과 내용도 졸속이었다. 방문진 이사 후보자는 총 31명이었으나, 면접 등 그 어떤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방문진은 9명으로 구성되지만 6명만 뽑았다는 점도 의심을 더한다. 방문진 이사 선임을 위한 방통위의 절차, 모든 순간이 MBC 장악을 위해 무리에 무리를 더한 결과였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방송장악을 위해 폭주 기관차처럼 막무가내로 달리는 윤석열 정부의 행정권을 견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기조가 변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 또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법원에만 매달릴 순 없다. 공영방송의 미래를 더 이상 정부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다른 쪽은 반대하는 상황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법원 판결 후, 다시 한번 ‘방송 4법’ 중재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한 일이다.
여야는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고 진지한 태도로 방통위 정상화와 공영방송의 독립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 그 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원점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도 구성원들의 제작 자율성이 보장되는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데 언제까지 공영방송이 ‘언론 장악’ 논란으로 시끄러워야 하나. 이는 한국 사회에도 큰 손실이다.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바란다. 다시는 다수 의석과 거부권의 격돌이라는 광경이 반복되지 않기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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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