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 주] 이 글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기 전 작성된 글이다. 저자는 대통령 후보가 바뀌어도 미국이 가자지구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계속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곤경에 처해 있다. 정당 시스템은 미국을 일종의 고르디우스의 매듭(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풀기 어렵다고 알려졌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칼로 잘라버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롯)으로 묶어 놓았다. 이 제도는 각자의 방식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는 두 명의 노인이 두 개의 지배적인 정당을 지휘하도록 허용함으로써 그렇게 해왔다. 그 결과, 혼란스럽고 광범위한 환멸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선거의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한쪽 끝은 도널드 트럼프가 잡고 있다. 트럼프는 정신병적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으며 법과 헌법을 벗어난 행동을 하려고 할 것이다. 취임 초기에 이에 대한 암시를 볼 수 있었고, 지금 그가 주는 인상은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짜 파시스트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매듭의 다른 쪽 끝은 조 바이든이 쥐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 국내 문제에 있어서는 비교적 훌륭한 대통령이다. 그는 트럼프가 시도하는 무솔리니 유형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바이든에게는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이 있다. 우선, 그는 적어도 트럼프만큼이나 특정한 방식으로 중독되어 있다. 둘째,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완고한 지지에서 볼 수 있듯이 냉전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으며, 셋째, 그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대량 학살하는 이스라엘(바이든의 정서적 고향인 듯)을 합법적이고 매우 현실적인 의미에서 방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량 학살범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번 11월 선거에서 미국 유권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미국 주류 미디어의 '오피니언' 필진, 일명 '인플루언서'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민주당에게 투표하는 것이 유일한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특히 시온주의자(이스라엘)에 대한 바이든의 충성심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다음은 주류 입장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예시다.
다나 밀뱅크(Dana Milbank)는 워싱턴 포스트의 국가 정치 전문 칼럼니스트다. 2024년 5월 3일에 "트럼프 당선을 도운 가자지구 시위대에게 : 그만 좀 하세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시위대가 바이든을 대량 학살 공모 혐의로 비난하는 것은 파시스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이 될 뿐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트럼프도 친이스라엘/반팔레스타인이며, 그가 그들(시위대)을 "유료 선동가"와 "세뇌된 하마스 동조자"로 묘사한 것을 시위대가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밀뱅크는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시위대의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조를 학살하라'는 구호,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를 무산시키려는 계획, 바이든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무당파'의 확산 등 바이든을 적으로 만들면서 그들은 사실상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원칙적인 항의가 아니라 허무주의“라고 비판했다.
출처: Unsplash, Mohammed Ibrahim
밀뱅크가 트럼프에 대해 말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한 측면으로서 그는 매우 위험하다. 그리고 확실히 그는 팔레스타인의 친구가 아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 트럼프는 혼자가 아니다. 적어도 최근 미국 외교 정책의 역사에서 조 바이든이 대표하는 것은 특히 전 세계 남쪽에 대한 위험이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그의 정책은 미국의 광범위한 경제 및 군사 지배 역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중동(현재 최소 4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추가할 수 있음),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북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피해자들은 부분적으로는 전직 대통령들, 그중 상당수가 민주당 소속이었던 대통령들의 정책 결정에 기인한다. 이 중 어느 것도 민주당에게 투표해야 할 좋은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밀뱅크는 이 비극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위대는 이해한 것 같다.
밀뱅크와 그의 동료들은 또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아랍계 미국인, 특히 팔레스타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은 도덕적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이든에게 투표하라는 것은 가족을 죽이는 데 일조하고 그들의 죽음(과 조상의 유산)을 미국에 중요하지 않다고 무시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당 대통령이 저지른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와 함께 존재하는 것은, 바이든과 그의 이상화된 시오니스트들이 '그들의 이름으로' 행한 일에 대해 반 시오니스트 미국 유대인들(모두는 아니지만 주로 젊은이들)의 도덕적 혐오이다. 밀뱅크는 이 분노와 슬픔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백악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이든의 재선을 위한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의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딜레마, 즉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진짜 부분이다.
트럼프를 막으려면
문제의 본질을 고려할 때, 미국의 주류 친 바이든 인플루언서들은 시위대를 비난할 때 엉뚱한 청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위대의 감정과 분노는 가치있다. 이들은 국제법 수호, 민족 자결권, 다양한 인종 간의 평등(아파르트헤이트 반대), 고대 종교인 유대교가 인종주의적 정치 이단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막는 등 국가가 추구해야 할 이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밀뱅크와 그의 집단이 이러한 목표를 훼손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가지 대안을 제안한다.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이 정말로 트럼프가 파시스트 지도자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 나는 신이 원한다고 착각에 빠져 트럼프에게 투표할 미국의 수백만 기독교 근본주의 유권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밀뱅크와 그의 동료들은 근본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신의 대리인으로 여기게 만든 것이 악마의 소행임을 알려야 한다. 결국, 그들이 "지난 8년 동안 낮잠을 잤다"(밀뱅크가 시위대를 비난하는 표현)고 비난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했다면, 그들은 선천적 거짓말쟁이(몰몬교에서 악마를 지칭하는 말)에게 투표하는 것이 실제로는 "모든 거짓말의 아버지"의 대리인에게 투표하는 것이라는 제안에 취약해질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도 기독교의 참된 신자들 사이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안은 큰 혼란을 일으켰다(예: 종교개혁 당시의 성육신과 성화 논쟁). 이런 속삭임 캠페인은 바이든의 재선을 위해 아랍계 미국인이나 유대인 시위대에게 대량 학살 이미지를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다.
출처: Unsplash, Dixit Dhinakaran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든 우리는 계속 투쟁해야 한다. 조 바이든이 출마하여 승리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곤경에 처해 있다. 우크라이나나 가자지구의 전쟁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시오니스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시위는 가을에도 캠퍼스에서 계속될 것이며, 경찰의 탄압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계속해서 억압받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트럼프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무수히 많은 환경적, 경제적 위협과 더불어). 언론의 자유와 교육의 청렴성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을 몰락의 길로 이끄는 미친 자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어느 쪽이든 실패에 직면해 있다.
정치는 법치주의의 맥락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동선에 관심이 없는 시민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법 위에 군림하는 자아가 지나치게 큰 남성과 여성의 싸움터가 되었다. 물론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공화당이 혼란에 빠져 컬트 집단으로 전락한 반면, 민주당은 바이든을 훨씬 더 나은 후보로 교체하지 못하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깨지 못한다면 위험한 경직의 조짐을 보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선택은 무솔리니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 아니면 억압에 대한 저항을 완전히 악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재앙이다.
[출처] Confronting Disaster on the Home Fron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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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데이비슨(Lawrence Davidson)은 웨스트 체스터 대학교의 은퇴한 역사학 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