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Unsplash, Vikram Aditya
빈곤은 어떤 생산 방식에서든 동질적인 현상으로 간주된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조차 빈곤에 대한 이러한 동질적 개념을 믿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의 빈곤은 자본주의 이전의 빈곤과는 완전히 다르다. 통계적 목적을 위해 빈곤을 생산 방식과 관계없이 생활에 필수적인 일련의 사용 가치에 대한 접근성 부족으로 정의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이러한 부족은 다른 사회적 관계에 얽혀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하에서의 빈곤은 특히 견딜 수 없는 불안과 모멸감과 관련된 특정한 형태를 취한다.
자본주의 빈곤의 특징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계약의 불가침성에서 비롯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과 상관없이 계약한 금액을 지불해야 하며, 이는 자산 손실 또는 빈곤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이전 무굴 인도에서는 지대 요구가 생산량의 일정 비율을 차지했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농민에 대한 지대 요구가 자동으로 축소되었다. 즉, 흉작의 부담을 생산자와 군주가 함께 분담했다. 그러나 식민지 인도에서는 자본주의 정신을 반영하여 토지에도 세금이 부과되었고, 생산자와 대지주 사이의 계약이 변경되어 생산자는 국가에 일정 수익을 지불하면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다. 즉, 흉년이 든 해에는 흉작의 부담이 전적으로 생산자에게 전가되었다. 고정 금액을 지불하는 계약으로 인해 농민의 자산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이전되는 현상이 뒤따랐다. 요컨대 빈곤은 누적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었다.
두 번째 특징은 개인이든 가구든 빈곤을 개인이 경험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같은 카스트 집단이나 같은 마을에 속한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이 흉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개인이 주요 경제 주체로 부상하면 개인이 고립된 채로 빈곤을 겪게 된다.
경제 이론의 비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이러한 변화를 보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고전 경제학이 역사의 특정 시점에만 출현한 개인을 항상 존재했던 것으로 간주하는 역사에 대한 맹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 고전파 경제학은 개인을 영원한 범주이자 경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빈곤과 전자본주의적 빈곤 사이의 대비를 놓쳤다. 전자는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이 경험하는 빈곤이고, 후자는 공동체 내에서 겪는 박탈, 즉 박탈의 공유만을 지칭한다.
자본주의의 특징이 소외된 개인(이들이 조합이나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체제에 대항하는 공동 투쟁을 벌이기 전까지는)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개인이 빈곤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빈곤에 또 다른 차원을 부여한다. 자본주의 빈곤은 사용 가치에 대한 접근성 부족뿐만 아니라 이러한 접근성 부족에 따른 심리적 외상도 포함된다.
자본주의적 빈곤의 세 번째 특징은 고용된 사람들의 저임금과 고용의 부재로 발생한다. 특히 빈곤에 시달리는 것은 노동의 예비군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기는 빈곤과 관련된 심리적 트라우마가 더욱 만연해 있다. 취업의 부재는 주어진 사용 가치에 대한 접근성 부족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개인적인 실패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적 빈곤의 네 번째 특징은 빈곤의 원인에 대한 불투명성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생산된 것의 크기와 지배자가 가져가는 몫에 따라 빈곤이 발생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조건 하에서 왜 어떤 사람이 실업 상태로 남아 가난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빠지는 이유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1943년 벵골(Bengal) 기근을 다룬 사티아지트 라이(Satyajit Ray)의 영화 '대지의 눈물(Distant Thunder)'에서는 기근이 발생하기 직전,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하는 동안 벵골의 물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적인 식량 가격 상승에 기여하고 있으며, 이는 아프리카나 인도의 외딴 마을에서도 빈곤을 초래한다. 자본주의 빈곤의 뿌리가 불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빈곤의 이러한 구체적인 특징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빈곤을 줄이거나 없애고자 하는 많은 선의의 사람들은 정부 예산에서 이전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본적인 최저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는 어느 곳에서도 필요한 규모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초래한 불황과 함께 전 세계적인 식량 가격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빈곤은 사회 현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빈곤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는다.
충분한 이전이 이루어지고 사용 가치에 대한 접근성 부족의 의미에서의 빈곤이 극복될 수 있다고 해도, 실직으로 인한 심리적 외상과 자존감의 박탈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적 빈곤을 극복할 수는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빈곤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보편적 고용이 제공되어야 한다. 케인즈(Keynes)는 자본주의 하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는 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전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하는 불충분한 미봉책일 뿐이라는 뜻이다.
인도에서도 현재 약 80만 명의 수혜자에게 한 달에 1인당 5kg의 무료 양곡이 제공되고 있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이 제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팬데믹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도가 현대 인도에서 빈곤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착각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고용, 교육, 의료, 노후 보장, 식량의 보편적 제공으로 사람들에게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The Specific Form of Poverty under Capitalism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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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서 가르쳤다. 참세상은 이 글을 동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