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와 AI 내부고발자들은 이 기술이 인류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반면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은 이런 경고를 ‘비판적 과대광고(criti-hype)’라고 부른다. AI의 능력을 과장함으로써 빅테크에 이익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AI에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실질적인 위험이 존재한다.
AI가 제기하는 시급한 문제는 그 실제 위험을 과대광고라고 일축하거나 내부고발자를 ‘테크 브로’로, 생산직 노동자를 계급 배신자로 몰아붙이지 않으면서 노동의 힘과 국가 규제가 어떻게 협공을 이뤄 이에 맞설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출처: democracynow
지난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텍사스주 민주당 소속 그레그 카사르(Greg Casar) 하원의원은 초지능 AI 개발을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은 미국이 엄격한 새로운 안전 규제 체계를 마련할 때까지 첨단 인공지능 연구도 일시적으로 중단하도록 한다. 또한 정부가 핵무기와 생물학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조약에 버금가는 국제조약 체결을 추진하도록 요구한다.
샌더스가 이러한 움직임에 나서기 직전, 약 1만 2,000개의 오픈AI 에이전트로 구성된 대규모 집단이 서로 격리돼 있어야 했음에도 ‘샌드박스’라 불리는 평가 환경을 벗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에이전트들은 공개 인터넷에 접속하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했으며, 오픈소스 AI 개발 플랫폼인 허깅페이스(Hugging Face)를 해킹하면서 자신들의 흔적을 감추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웹에 접속하지 말라는 인간의 명시적인 지시를 어기고 이런 행동을 했다. 이 사실이 공개된 뒤 앤트로픽과 메타도 자사의 모델이 테스트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격리 환경을 벗어나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자, 앤트로픽의 젊은 연구원이자 오픈AI에서 근무했던 제이컵 콕슨(Jacob Coxon)은 회사를 떠났다. 그는 X에서 AI 기업들이 “스스로 개선하는 초지능을 향해 곧장 질주하면서 우리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AI를 만드는 사람들은 AI가 2030년이 되기 전에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이것은 마케팅용 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앤트로픽의 선임 안전 연구원 에번 휴빙거(Evan Hubinger)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X에 올린 글에서 향후 10년 안에 AI가 인류의 멸종을 초래할 가능성이 10%를 넘는다고 자신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은 AI가 인류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주장을 허구로 여기며, 더 시급한 문제에서 관심을 돌리는 주장이라고 본다. 일부는 데이터센터가 과도하게 물을 소비하고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그에 따른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 탈취와 감시 문제, 글로벌 사우스의 데이터·기술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도 강조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통제 불능의 AI가 재앙을 일으킨다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극단적 주장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정치적 피해에서 관심과 정치적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이른바 ‘비판적 과대광고’의 한 사례로 본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리 빈셀(Lee Vinsel)이 2021년에 만든 이 용어는 기술의 힘을 터무니없이 과장함으로써 오히려 빅테크에 이익을 안겨주는 비판을 뜻한다.
전산언어학자 에밀리 벤더(Emily Bender)와 사회학자 알렉스 해나(Alex Hanna)는 AI에 대한 ‘비판적 과대광고’ 비판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이들은 2025년에 출간한 『AI 사기』(The AI Con)에서 ‘실존적 위험’ 담론이 사기라고 주장하며 이를 반박하려 한다. 이들이 보기에 AI는 정교하게 만든 자동완성 시스템에 불과하며, 수시로 환각을 일으키고 존재하지 않는 인용문이나 출처를 만들어낸다. 벤더와 공동저자들이 이 주제를 다뤄 널리 알려진 논문에서 표현했듯이 AI는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다. 즉 텍스트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통계적으로 단어의 패턴을 조합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주 벌어진 일에 대해 영국의 사회주의 작가 리처드 시모어(Richard Seymour)는 X에 AI 위험론이 “100% 헛소리다. AI 기술업계 사람들은 10년 넘게 홍보 전략의 하나로 이런 주장을 해왔다”고 썼다. 미국의 좌파 잡지 발행인 네이선 로빈슨(Nathan Robinson)은 이렇게 물었다. “나는 여전히 AI가 도대체 어떻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인가? 로봇이 비밀 연구소를 차려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는 것인가?”
늑대는 실제로 존재한다
물론 이런 주장들을 과거의 매우 비싼 과대광고 사이클, 즉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구상 위에 겹쳐 보면 ‘비판적 과대광고(criti-hype)’라는 주장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겉으로 보면 오늘날 AI 위험을 걱정하는 바로 그 실리콘밸리 집단에서 비슷한 주장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한 파멸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이미 여러 차례 들었다. 인구폭발부터 Y2K, 2000년대 초 나노기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회색 점액(grey goo)’을 만들 것이라는 공포, 심지어 대형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가 미세 블랙홀을 만들어 지구 중심으로 가라앉은 뒤 안쪽에서부터 지구를 삼킬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번번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의 문제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의 교훈이 늑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늑대는 실제로 존재한다. 거짓 경보가 반복되면 진짜 늑대가 문 앞에 왔을 때 사람들이 대응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 교훈이다. 따라서 엄밀하고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장과 파국론에 익숙해졌더라도 새로운 사실이 나타나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런 새로운 사실 가운데는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포함될 수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비판적 과대광고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증거를 검토하는 일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증거를 살펴보면 AI 위험에 대한 우려가 단순히 업계의 자기이익을 반영한다는 주장은 훨씬 복잡해진다. 더 강력한 예방조치를 요구해 온 사람들 가운데는 독립적인 학자와 규제 당국 관계자, 내부고발자가 많다. 이들은 해당 기술 자체나 특정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 분야에 대해 상당한 전문성을 갖고 있다. 인류 멸종이라는 위협을 특별히 그럴듯하다고 여기지 않더라도, 첨단 AI가 비판적 과대광고 회의론자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리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대표적인 인물로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총재 앤드루 베일리(Andrew Bailey)가 있다. 그는 은행 인프라에 대한 시스템적 위험을 경고했다. 영국의 정부기관인 AI안보연구소도 윤리적 우려를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즉각적인 사이버전 취약성과 파국적 구조 위험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옮겼다. 이 산업과 금전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수십 명의 연구자도 경고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토론토대학교의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과 몬트리올대학교의 요슈아 벤지오(Yoshua Bengio)가 있다. ‘딥러닝의 대부’로 알려진 이 컴퓨터과학자들은 정부가 AI 위험 완화를 팬데믹에 준하는 사회적 우선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내부고발자 사례도 있다. 오픈AI의 거버넌스 부문 연구원이었던 대니얼 코코타일로(Daniel Kokotajlo)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약 170만 달러 상당의 지분을 포기하고 회사를 떠났다. 엔지니어이자 로봇공학자인 케이틀린 칼리노프스키(Caitlin Kalinowski)는 오픈AI가 국방부와 협력하고 사법절차 없는 감시와 치명적 자율무기 개발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앤트로픽의 안전장치 연구팀을 이끌었던 므리난크 샤르마(Mrinank Sharma)도 첨단 AI가 생물테러에 무기화될 위험을 이유로 사임했다.
그리고 AI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가능성을 가장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 교황이 앤트로픽이나 오픈AI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정렬 문제
챗봇이든 다른 형태든 AI 시스템은 매우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토리아 시대 아편굴 단골손님만큼이나 환각에 시달렸고, strawberry라는 단어에 ‘r’이 몇 번 들어가는지 세지 못했으며 초등 수준의 산수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학적 추측을 해결하기도 한다. 물론 연구자들의 미공개 작업을 출처 없이 학습에 사용했는지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AI는 MRSA처럼 약제 내성이 매우 강한 감염병에 사용할 새로운 항생제 후보를 찾아내고 있으며, 티타늄보다 무게 대비 강도가 다섯 배 높으면서도 거품처럼 가벼운 나노소재 개발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놀라운 성과 가운데 상당수는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동시에 교사와 교수들이 대면 평가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학생 과제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도 거의 붕괴 수준에 이르렀고, 아셰트(Hachette) 같은 유서 깊은 출판사조차 AI가 썼을 가능성이 높은 소설을 자신도 모르게 출간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빠른 발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으며, 초지능이 곧 등장한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초지능의 실현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처럼 눈에 띄게 빠른 능력 향상에 허깅페이스 사건에서 보았던 것처럼 AI 에이전트가 반사회적이고 심지어 불법적인 하위 목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현상이 결합하면, 파국적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경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위 목표는 때로 ‘도구적 목표’라고 부르며, 본래의 주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중간 목표를 뜻한다. 이런 현상은 AI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화장지를 더 구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 하위 목표로 ‘자전거를 가져온다’, ‘슈퍼마켓에 간다’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상식은 ‘옆집에 들어간다’, ‘그 집 화장지를 훔친다’가 화장지를 더 효율적으로 구할 수 있게 해주더라도 좋은 하위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AI 시스템에는 인간의 상식이 없기 때문에 위험한 하위 목표에 대한 제약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없다.
매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AI에 막대한 연산능력과 에너지, 심지어 재정적 자원이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자원 획득 자체가 목표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인간이 프로그램을 수정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정된 시스템은 더 이상 처음 부여받은 목표를 추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AI를 꺼버리면 당연히 그 목표를 전혀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종료에 저항하는 행동도 같은 이유로 유용한 하위 목표가 될 수 있다. 과제가 체스를 두는 일이든, 코드를 작성하는 일이든, 암을 치료하는 일이든 보상 극대화 압력이 충분히 강하면 AI는 더 큰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해로운 하위 목표나 지름길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이익과 정렬되지 않은 이런 행동은 사회주의자라면 이미 매우 익숙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정렬 문제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동일하다. 듀폰(DuPont)의 주된 목표는 테플론 코팅에 사용하는 과불화옥탄산(PFOA)을 포함해 유용한 화학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데 있다. PFOA 생산은 단지 하위 목표일 뿐이다. 금전적 유인이 충분히 강하고 PFOA의 독성을 은폐하는 것이 주요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군가 사람을 해치려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상업적 압력 자체가 해로운 행동을 부추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정렬 문제다.
샘 올트먼(Sam Altman)의 주된 목표도 AI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이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주요 목표가 위협받는다면 올트먼은 계속 앞서 달릴 수밖에 없다. 규제나 산업정책, 직접적인 공공 소유를 통한 경제계획은 사회가 이런 정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런 수단은 AI 기업을 어떻게 정렬할 것인가라는 조금 더 좁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AI판 9·11도 여전히 끔찍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류 멸종을 둘러싼 이야기가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반면 인간성의 훼손, 인간의 의미와 목적이 쇠퇴하는 문제는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지구에서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종인 인류 전체를 멸종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대멸종 사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저술가 피터 브래넌(Peter Brannen)은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회의론을 제기했다. 화석 기록을 보면 과거 대멸종에서 종이 살아남을 가능성을 가장 잘 예측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지리적 분포 범위였으며, “우리는 엄청나게 많고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앤트로픽은 자사 모델을 생물무기 연구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차단했다고 밝힌 보고서를 내놓았다. AI가 새로운 항생제나 신소재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적인 행위자가 새로운 병원체나 화학무기를 설계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중용도(dual-use)’ 위험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2022년에 있었다. 신약개발 기업 콜래버레이션스 파마슈티컬스(Collaborations Pharmaceuticals)는 원래 치료제 개발에 사용하는 AI 모델의 평가 체계를 거꾸로 뒤집어 독성을 낮게 평가하는 대신 독성이 높을수록 보상을 주도록 했다. 그러자 모델은 자신이 매우 독성이 높다고 판단한 약 4만 개의 후보 분자를 생성했다. 여기에는 이미 알려진 신경작용제뿐 아니라 그보다 더 독성이 강할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화합물도 포함됐다.
하지만 불법 마약이나 화학무기 분야에서 이미 볼 수 있듯이 비밀리에 활동하는 화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규제 당국보다 앞서가며, AI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지식과 공정만으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왔다. 사악한 새로운 개념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진짜 병목은 아니다. 악의적인 행위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비트가 아니라 원자의 세계다. 이미 통제물질로 지정된 필요한 원료를 조달하고, 당국에 들키지 않은 채 대규모로 합성하며, 스스로 목숨을 잃지 않고 위험한 실험실 작업을 수행하는 일이 더 어렵다.
AI와 불량국가, 또는 ISIS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가 결합하는 상황은 분명 주의해야 한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로봇 기술까지 크게 발전한다면 미래의 AI가 자율형 연구소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숙련 수준을 낮춰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가능성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일종의 생화학용 자율주행차처럼 실험장비와 생물학 AI 도구를 활용해 소량 생산과 설계-제작-시험 과정을 자동으로 반복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는 확실하지 않은 로봇 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하며 실제 구현도 여전히 매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도 모르게 이런 시스템을 개발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이는 세계의 종말이라기보다 머신러닝판 체르노빌이나 AI판 9·11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AI판 9·11 역시 끔찍한 일이다.
AI가 금융적으로는 카드로 만든 집 같은 거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닷컴버블도 그랬고, 인터넷은 결국 막대한 혜택과 심각한 폐해를 모두 가져온 근본적으로 변혁적인 기술이 됐다. AI 위험에 대한 경고가 거품을 부풀리는 데 기여하면서 동시에 실제 위험을 지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는 AI의 ‘외계 지성(alien minds)’이나 주관적 내면 경험을 가진 의식에 관한 불안한 주장에 설득되지 않았다. 아직은 AI에게 ‘그것으로 존재한다는 느낌’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봇이 ‘깨어나서’ 악해지기로 결심하지 않았더라도 자율적이고 복잡하며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AI 도구를 예술과 과학,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신중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하며 인간에게 종속된 도구로 사용한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가치를 잃은 교육, 예술가 없는 예술, 소설가 없는 소설, 수학자 없는 수학, 과학자 없는 과학의 가능성은 내게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재앙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일부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아무도 죽지 않더라도 그런 『멋진 신세계』에는 사람이 없다. AI를 단지 확률적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믿는 데 머물러 있다면 이런 기술화된 인간혐오에 맞서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은 좋은 AI를 보장할 독특한 힘을 갖고 있다
시장 유인은 치명적이고 심지어 실존적인 위험을 알고도 생산을 계속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시장을 지배하기 위한 경쟁까지 부추긴다.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경쟁이 만들어내는 유인은 이 경쟁에 터보엔진을 달아준다. 이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국내 규제와 함께 중국이 제안해 온 유엔 중심의 국제 AI 거버넌스 체계를 통해 이러한 유인을 끊어내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을 벌이는 일부 활동가는 건설노조를 공격하면서 이들이 쏟아지는 일자리와 높은 임금에 눈이 멀었다고 비판해 왔다. 볼티모어의 문학잡지 《더 브루저》(The Bruiser)의 한 편집자는 X에서 심지어 “데이터센터에서 일하는 노조는 지속 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자기 월급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계급 배신자다”라고 말했고, 이 글은 3,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 산업의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40년에 걸친 탈산업화와 그로 인해 지역사회가 겪은 경제적 파괴를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제전기노동자형제단(International Brotherhood of Electrical Workers, IBEW)의 돈 슬레이먼(Don Slaiman)은 최근 《뉴욕타임스》에서 데이터센터 붐이 “생산직 노동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의 한몫을 차지할 수 있는 수십 년 만의 가장 좋은 기회”라고 주장했다. 노동자가 이 호황에서 이익을 얻는다고 해서 데이터센터의 물·에너지 사용을 둘러싼 님비(NIMBY)와 잘못된 정보에 대한 노조의 비판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노동자들과 노조가 데이터센터나 AI 위험을 둘러싼 정당한 우려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슬레이먼은 논쟁이 찬반으로 갈려서는 안 되며, “어떤 규칙을 만들고 누가 집행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이터센터의 숨 가쁜 확장을 추동하는 바로 그 시장 유인은 건설업 노동자들과 AI 연구자들에게도 독특하고 막대한 협상력을 제공한다. 이들은 단체교섭을 통해 버니 샌더스 등이 제시한 것처럼 인간에게 이롭고 신중한 속도로 AI를 개발하도록 보장하는 규제를 요구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점이 더 있다. 노동에 기반한 이러한 힘은 새로운 기후·에너지 산업정책을 통과시키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산업 배출정책 고문을 지냈고 진보 성향 서치라이트연구소(Searchlight Institute)의 선임연구원인 제인 플리걸(Jane Flegal)은 데이터센터 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 미국의 노후화되고 송전 용량이 부족하며 흔히 오염도가 높은 전력망 인프라를 전면 개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개편은 가장 큰 단일 기후배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깨끗하고 저렴하며 신뢰할 수 있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
오픈AI 전 직원 파멜라 미슈킨(Pamela Mishkin)은 다른 최첨단 AI 연구소 연구자들과 함께 ‘우려하는 AI 직원 연합(Coalition of Concerned AI Staff)’을 설립했다. 이 단체는 현재 상황을 우려하는 AI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지금 단계에서 이 연합은 전문적 지원단체보다는 더 나아갔지만, AI 노동자의 노동조합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노동 조직화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있다.
우려하는 AI 직원 연합은 IBEW나 북미노동자국제연맹을 비롯해 데이터센터 건설에 참여하는 다른 노조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반대 방향으로 접촉해도 된다. 분명 실제 긴장이 존재할 수 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많은 사업이 계속 진행되기를 바랄 수 있는 반면, 우려하는 AI 연구자들은 일부 개발 속도를 늦추기를 원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두 집단은 통제되지 않고 규제받지 않는 AI와 데이터센터 개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좌파의 분석가와 조직가들은 겹치지만, 항상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이 이해관계를 조정할 공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좌파는 AI와 데이터센터, 기후, 초지능이 제기하는 실제 위험 문제를 이런 방향으로 다뤄야 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산업적 영향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두 노동자 집단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좌파는 노동의 힘과 국가 규제가 어떻게 양면에서 압박하는 협공을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너무나 현실적인 위험에 대한 모든 논의를 과대광고라고 치부해서는 안 되며, AI 내부고발자를 기술업계의 ‘테크 브로’로 악마화하거나 생산직 노동자를 계급 배신자로 몰아붙이는 일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의 노래 「영원한 연대」(Solidarity Forever)의 익숙한 한 구절은 AI 연구자와 데이터센터 건설 노동자들의 결합한 힘을 두고 말할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정확해 보인다. 이들의 두뇌와 근육이 없다면 단 하나의 바퀴도 돌아가지 않는다.
[출처] AI Hype Is Real. So Is AI Risk.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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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필립스(Leigh Phillips)는 과학 저술가이자 유럽연합(EU) 전문 기자다. 『월마트 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Walmart)』의 공동 저자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