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생에너지로, 모두의 존엄 향한 지렛대를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2024년 907 기후정의행진 현장.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폭염과 한파, 가뭄과 혹한, 산불과 홍수가 예고 없이 뭇 생명의 일과 삶을 쓸어가버린다. 매일의 재난, 매일의 참사를 마주하는 절망과 무력함 사이에서, 저무는 여름이나 번져가는 가을의 정취에 더는 마음을 빼앗길 겨를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9월 무렵에는 마음이 달아오른다. 이 타오르는 지구에, 단비를 불러올 기후정의행진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돌아오는’ 행진은 해마다 ‘거듭’되는 하루짜리 행사일 수 있다는 일각의 세평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재난이 일상이 된 세계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노동자, 시민, 비인간 존재들은 해마다 수개월간 이날의 행진을 함께 준비하면서 절망과 무력함 사이 희망을 발견한다. 기후위기가 뿌리내린 이 가혹한 체제가 조각내고 찢어놓은 저마다의 분투를 연결하고, 그 체제에 균열을 낼 더 너르고도 날카로운 사회적 힘을 벼려낸다. 

기후정의행진은 다만 한국사회, 서울 도심의 경계에도 갇히지 않는다. 행진은 일국을 넘어선 촘촘하고 깊이 얽힌 사슬로 우리의 일과 삶, 생태를 파괴해 온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전 세계적 기후 정의 운동의 일부로서, 국가와 지역을 넘고 연결하며 지구적 차원의 실천을 이어왔다. 

지난해 9월에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수만 명의 외침이 한국사회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부인 강남 한복판과 지역 곳곳을 두드렸다. 올해는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여러 지역에서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며 마음을 모으고 있다.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를 외쳤던 3.29 민중의 행진.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우리의 광장, 우리의 민주주의

927 기후정의행진이 환기하는 지난 겨울과 봄의 광장에서, 우리는 윤석열의 파면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 짚었다. 

광장을 밝히고 넓힌 불빛들은 정권 교체만이 아니라, 모두의 평등하고 존엄한 일상을 구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선출된 권력’이 민중을 배반하고 뭇 생명을 짓밟도록 허용하는 ‘쭉정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이들 모두가 자신과 이웃들이 어떻게 일하고 관계맺고 나누며 살아갈 것인지를 평등하게 토론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온전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함께 꿈꿨다. 

하청 노동자이고, 성소수자이고, 장애인이고, 여성이고, 이주민이고, 쪽방촌 주민이며, 무엇인 동시에 또 다른 무엇인 이들은 그 광장에서 ‘우리’가 되어, 내란 이후 새로운 세상이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여야 한다고 마음을 모았다. 

대통령은 바꾸어냈지만, 우리는 아직 광장에서 꿈꾸었던 나라를 만나지 못했다. 광장의 힘으로 집권한 이재명 정부 역시 노동자와 시민, 뭇 생명의 일상을 재난의 한복판에 버려두는 불평등과 차별, 혐오에 맞설 국가 권력의 책임보다는, 자본의 이윤만을 담보하는 부정의한 성장주의 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다시 ‘평등 시민’들의 고민과 바람을 이어 간다. 우리가 함께 광장에서 꿈꾸고 구현했던 민주주의는 다만 ‘투표할 권리’에 갇히지 않고,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을 환기한다. 그 민주주의가 우리 삶 곳곳에서 실제 작동하도록 할 토대로서, 공공성의 ‘탈환’을 요구한다. 시장과 기업들의 이윤 경쟁에 내맡겨져 부서진 우리 삶의 기반들을 되찾고, 모든 이들의 존엄한 일상을 위한 필요와 책임을 우선해 사회적 자원과 역량을 민주적으로 재편하는 경로를 함께 질문한다. 노동자와 시민들이 함께 탐색해 온 그 구체적 경로 중 하나는 공공재생에너지다. 

6월 24일, 공공재생에너지법 5만 국민동의청원 돌입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공공재생에너지로, '공공(성)'의 민중적 가치를 탈환하자

타오르는 지구에서 모두의 절멸과 정의로운 전환 사이, 절박한 분투를 이어가는 이때, 한국사회 에너지 전환은 여전히 이윤만을 좇는 민간 기업들에 내맡겨져, 더디고 부정의한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이같은 현실에 맞서 에너지 전환의 공공적 경로를 제시한다. 초국적 민간 기업들의 이윤 경쟁에 재생에너지 산업을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공공기관, 지자체, 노동자·시민의 민주적 협력과 공적 투자를 통해 ‘공공’이 재생에너지를 신속하고 정의롭게 개발하고 소유하며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정부가 계획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중 최소 50%를 공공재생에너지로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될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 새롭게 만들어질 공공재생에너지 발전 현장에 우선 고용되어 일과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담보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자원의 개발 이익을 노동자·시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할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우리 모두의 것인” 태양과 바람을 민간 기업들이 사유화하면서 그 비용은 시민들에게 떠넘겨 에너지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가난한 이들도 ‘상품’이 아닌 ‘권리’로서 삶과 사회의 필수재인 에너지에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려는 대안이기도 하다. 

전기는 이 가혹한 체제의 불평등과 부정의가 타고 흐르는 통로이기도 했다.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지구의 생태를 위협하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동시에, ‘우회적 민영화’로 심화된 중층적 원하청 구조 속에서 ‘위험을 외주화’하며 고 김용균·김충현과 같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국가와 공기업들은 공공의 책임보다는 민간 기업과 다름없이 이윤을 추구하며, 전기가 흐르는 길을 따라 노동자의 생명과 지역 주민의 일상,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를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 접근권마저도 위협하는 폭력을 자행해 왔다.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은 이처럼 시장화된 국가와 공기업들이 오염시킨 ‘공공(성)’의 민중적 가치를 탈환하는 시도다.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민주적인 통제를 통해서, 전기를 정의롭게 생산하고, 그 전기가 뭇 생명이 흘리는 눈물을 타고 재벌 대기업들을 위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존엄을 향해서 평등하고 평화롭게 흐르는 길을 함께 밝힌다.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선 체제 안에서 체제 너머를 향한 민중의 상상력을 실험하며, 자본의 이윤이 아닌, 모두의 존엄을 우선하는 세상을 향한 지렛대를 놓는다. 

이같은 대안을 구현할 힘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 한 사람이나 국회의원, 권력자들 몇몇에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열망을 매어두지 않는다. 우리는 광장을 넓히고 밝혀온 우리의 민주주의로, 모두의 존엄을 향한 민중의 대안들을 함께 요구하고 실현해 나갈 것이다.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하자. ”공공성으로 평등하자” 함께 외치며 기후가 아니라, 이 참혹한 세상을 바꾸자. 

지난 겨울, 광장에서 "공공재생에너지" 피켓을 든 노동자 시민들. 공공재생에너지연대
덧붙이는 말

류민은 기후정의동맹에서 활동하고,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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