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을 겨냥하고 쿠르드 운동을 유인하며, 앙카라는 선거 이후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할 기반을 다지고 있다.
9월 15일, 튀르키예에서는 공화인민당(CHP) 전당대회의 무효화를 다투는 소송의 세 번째 심리가 열렸다. 공화인민당은 튀르키예의 주요 야당으로, 이 회의에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Kemal Kilicdaroglu)가 축출되고 외즈귀르 외젤(Ozgur Ozel)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다.
결과가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진 이 소송은 10월 24일로 연기됐다. 이는 야당을 마비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위기를 의도적으로 장기화하려는 조치였다.
이러한 사법적 술수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사실상 국가 정책으로 삼은 전략의 일환이다. 이른바 ‘탈선거화’ 전략은 선거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지만, 투표의 의미를 무력화하려 한다. 이 전략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도록 하고, 그의 후계자가 무난히 권력을 승계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이 있다.
야당을 범죄화하고 통제를 공고히 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주요 야당인 공화인민당을 ‘내부의 적’으로 재분류하고, 마치 ‘적법(敵法)’과 같은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달 공화인민당의 부대표인 부르하네틴 불루트(Burhanettin Bulut)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AKP는 3월 19일에 새로운 정치적 적을 지목했으며, 그 적은 바로 공화인민당”이라고 말했다.
이 캠페인의 주요 전선은 공화인민당이 장악한 지방 자치단체다. 공화인민당이 운영하는 여러 도와 구의 지방정부는 ‘부패’ 또는 ‘테러와의 연계’라는 명분 아래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됐다. 다수의 시장과 관료들이 체포돼 수감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이스탄불 시장이자 공화인민당의 전 대통령 후보였던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glu)다. 그는 과거의 대학 졸업장이 소급 적용으로 무효가 되면서 공직 자격을 상실했고, 그 직후 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후에는 그가 테러와 연계됐다는 별도의 소송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마모을루와 공화인민당 인사들 가운데 누구도 정식 기소되지 않았고, 재판 일정도 잡히지 않은 채 여전히 구금되어 있다.
정부는 이 전략을 튀르키예 전역에서 반복해 적용하고 있다. 선출된 공직자들을 협박하거나 회유해서 집권당으로 이적하게 만들고, 단 한 표의 투표도 없이 지방정부의 통제권을 뒤집고 있다.
이제 정부의 캠페인은 지방정부를 넘어 공화인민당 중앙지도부로 확장되었다. 사법부에 대한 장악력을 활용해 정부는 공화인민당의 지난 전당대회 결과를 무효화하고, 클르츠다로을루를 다시 대표직에 앉히려 하고 있다. 이는 야당을 분열시키고 선거에서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시도다.
탈선거화와 비무장화가 맞물리다
튀르키예의 선거 시스템을 무력화하려는 이 시도는 또 하나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바로 쿠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쿠르드노동자당(PKK)의 비무장화다. 이 두 가지 흐름은 별개가 아니라, 깊이 얽혀 있다.
지난해 에르도안은 이스라엘의 위협을 구실로 ‘국내 전선을 강화’해야 한다는 수사적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자 및 레바논 공격을 언급하며, 튀르키예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 통합 요청의 진짜 목적은 텔아비브와 맞서기 위함이 아니라, 국내 권력 구도를 재편하려는 것이었다.
에르도안의 새로운 권력 공식에서 공화인민당은 ‘내부의 적’으로 설정됐고, 반대로 야당과 오랫동안 연대한 쿠르드 정치운동은 PKK 해체와 비무장화를 조건으로 협상 테이블로 초대됐다.
튀르키예 최대의 민족주의 정당이자 집권당의 비공식 연정 파트너인 민족주의자운동당(MHP)이 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지난해 10월 1일 국회 개회식에서 MHP 대표 데블렛 바흐첼리(Devlet Bahceli)는 친쿠르드 성향의 인민평등민주당(DEM Party) 의원들과 악수했다. 이 정당은 해산 위기에 몰린 옛 인민민주당(HDP)을 대체하기 위해 창당된 당이다.
바흐첼리는 자신이 에르도안의 ‘국내 전선 강화’ 요청을 지지하기 위해 이같이 행동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26년째 수감 중인 PKK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Ocalan)을 국회로 데려와 PKK 해체를 직접 요청하게 하자는 놀라운 제안을 내놓았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미 외잘란과 비공식 접촉을 재개하고 있었고, 이는 새로운 해결 과정의 초기 단계로 해석됐다. 이번에는 범위가 튀르키예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확대되었다. 정부는 PKK의 시리아 분파인 인민수호부대(YPG)의 비무장화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앙카라는 외잘란의 권위를 활용해 PKK와 YPG 모두 무장 해제를 유도하려 했다.
2월 말, 외잘란은 격리 수감 상태에서 벗어나 친쿠르드 정당 대표단을 통해 서신을 발표했고, PKK에 대해 민주적 채널 외의 모든 요구를 포기하고 무장 해제하라고 촉구했다.
PKK는 이에 공개적으로 호응하며,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에서 상징적인 비무장화 의식을 열었고, 정부가 약속을 이행한다면 완전한 무장 해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회는 이를 위한 법적 틀을 준비할 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작된 위협이 국내 전선을 재편하다
공식 담론과는 달리, 이번 정치 재편은 ‘이스라엘 위협’과 무관하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으로서 미국에 전략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텔아비브를 직접적으로 맞설 자율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을 언급하는 것은 국내 결속을 위한 수단이며, 민족주의적 결기를 과시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꾸며내는 방식이다.
실제로 튀르키예는 시리아에서 이스라엘이 자국이 지원하는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 세력의 거점을 공습해도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카타르에 있는 하마스 요원을 이스라엘이 타격했을 때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못했다. 이는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랍 국가들조차 넘지 않는 선이었다.
에르도안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의 전장을 정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장의 중심에는 쿠르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공화인민당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는 동시에, 쿠르드 운동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며 야권의 선거 기반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PKK와 YPG가 이에 실제로 응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양측 모두, 외잘란의 해체 요청이 자신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앙카라의 주장에 반발하며, 해당 요청은 오직 PKK에만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초 튀르키예 정부는 YPG가 해체를 거부하면 시리아에서 군사 작전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과정은 시리아 문제를 계기로 무산될 수도 있고, 혹은 튀르키예 내에서는 비무장화를 진행하되 시리아에서는 무장을 유지하는 선에서 멈출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정부의 목적은 분명하다. 마지막 에르도안 대통령 임기를 위한 쿠르드 정치 세력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분열을 통한 권력 재건
결국, 탈선거화 전략과 쿠르드 평화 프로세스는 동일한 프로젝트의 두 축을 이룬다. 이는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니라, 튀르키예 내에서 선거 이후 권위주의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치밀한 설계다.
이 계획이 성공할지는 야당에 달려 있다. 법원이 공화인민당 전당대회를 무효로 할까? 국가가 임명한 수탁자가 당을 접수할까? 정부가 공화인민당을 분열시켜 선거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의 답은 법적 판단보다 정치적 저항에 달려 있다. 외젤과 클르츠다로을루가 이번 주에 회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무라트 에미르(Murat Emir) 의원이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야당과 그 대중 기반이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면, 이 권위주의적 전환을 막을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하면 튀르키예는 더 이상 투표가 아닌 행정명령이 지배하는 새로운 정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출처] Erdogan's ‘domestic front’: The dismantling of democracy in Turkiye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파티흐 야슬르(Fatih Yasli)는 튀르키예의 학자이자 작가다. 가지대학교(Gazi University)에서 금융학을 전공한 뒤, 정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 이젯 바이스알 대학교(İzzet Baysal University)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파시즘, 튀르키예 정치, 정치 사상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주요 학술지와 신문에 수많은 글을 기고해 왔다.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