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가 아니라 사람, 생태, 공동체의 미래를 찾자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단>은 시장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고, 모두의 평등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가장 유력한 길이라고 제안하는 사회단체들의 모임입니다. 행진단은 기획연재 <공공성으로 평등하자>를 통해 우리에게 기후위기란, 공공성이란, 평등이란 무엇인지 참여 단체들의 목소리를 나눕니다. 경쟁과 이윤 논리에 잠식당한 ‘공공성’의 진의를 민중의 이름으로 탈환하기 위해,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향해, 927기후정의행진에서 만납시다!

 

“저는 반도체에서 일하는 게 좋았어요. 삼성에서 반도체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고, 제 아이 옷도 돈 신경 안 쓰고 사줄 수도 있고! 그런데 이렇게 아프고 보니, 마음이 복잡해요” - 삼성 반도체 21년 근무, 거대세포종(희귀질환), 정향숙

영화 <무색무취>(이은희 감독, 2004)에서 증언 중인 정향숙 님. 반올림 제공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을 찾아온 수백 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직업병 피해 이전까지 반도체를 연구하고 생산하는 것은 보람과 자부심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첨단 산업에서 일하며 받는 비교적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내가 만든 반도체가 휴대폰, 컴퓨터 이제는 AI에 주요 부품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노동자인 동시에 편리를 누리는 소비자였다. 반도체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에 반도체 노동자들과 지역, 국가는 외면하기 힘든 주제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발의된 반도체 특별법이 노동자, 지역 그리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반도체 생산에 따른 유해 물질은 하청노동자와 지역사회로 쏟아진다

우선, 반도체 산업은 유해화학물질을 많이 쓴다. 사용 유해화학물질의 종류만 많은 게 아니라 사용량도 엄청나게 많고, 이에 따른 오염물질 배출도 어마어마하다. 2021년~2023년 삼성반도체의 화학물질 사용량은 연간 50만 톤을 넘는다.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은 연간 천 톤을 넘고, 수질오염물질 배출량은 연간 2천 톤을 넘는다. 연간 백만 톤의 폐기물이 발생하고, 그 중 유해폐기물이 대략 40%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폐기물 처리 작업은 대부분 협력업체로 외주화되어 있고, 직업병 피해 제보에 따르면 이런 협력업체 안전보건 관리는 부실하다.

이렇게 많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고 배출하는 산업이다 보니, 일하는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 위험 요인이 높다. 고황유미씨 이후 삼성전자에서 직업병 인정은 계속되고 있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도 이어졌다.

지금도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 현장실습생, 폐기물 노동자 등의 피해 제보가 반올림에 이어지고 있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더 낮은 곳으로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 방진복 다이인 퍼포먼스. 반올림 제공

반도체 기업을 위해 투입되는 보조금, 전기, 물, 노동력... 이대로 괜찮은가

지난 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에 치명적일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예외를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수 발의되었다. 여러 논쟁 끝에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예외는 빠졌으나, 여전히 직접 보조금 지급. 인프라 구축, 조세 감면 등의 특혜가 담겼다. 국민의 세금이 반도체 재벌 기업에게 간다는 의미이다. 인허가 간소화 및 신속 처리,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환경안전보건 규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들도 포함되었다. 반도체고등학교 신설 등 안전보건 교육이 없는 30만 명의 반도체노동자 양성계획은 있어도, 에너지와 용수 대책도 없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쓰일 어마어마한 전기를 100% 대체에너지가 아닌 가스발전소를 지어 충당하겠다는 계획만 있다. 재벌기업에 특혜를 주고 환수 대책도 노동안전보건, 기후와 환경 등에 대한 책임도 부과하지 않는다. 국민의 혈세는 그렇게 반도체산업만을 위해 특별하게 사용될 예정이다.

3.6 고 황유미 18주기 및 반도체특별법 저지 규탄대회 후 행진. 반올림 제공

반올림은 간다, 기후정의 행진으로!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함께 윤석열 탄핵을 외치던 추운 광장에서 방진복을 입고 행진을 했다. 3.6 고 황유미 추모제에서 시민들은 114개의 영정사진을 들고 “반도체 특별법 폐지”를 목놓아 외치기도 했다. 반도체 편리함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 반도체를 사용하는 시민들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고려해야 함을 전하고자 했다. 

927 기후정의행진의 3번째 요구에 짧게 담긴 “반도체특별법 재검토”는 노동권 보장, 공공성 강화, 기후정의 실현을 주문한다. 반도체산업 경제성장과 기술로 그려진 미래에 사람, 생태, 공동체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에 함께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92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다. 부스에서는 반도체에서 일하다 돌아가신 노동자들의 이름 한 명 한 명을 적은 폐 CD를 전시하고, 커다란 국화꽃을 들고 평등으로 가는 공공성 행진을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추운 광장에서 우린 깨끗하고 푸른 광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927 기후정의행진 발족 기자회견 후. 반올림 제공
덧붙이는 말

권영은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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