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서 출발해, 사람들이 어디에서 굶주리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지 묻는 일은 시급하고 생산적인 과제다. 몇 주 전에도 이 질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는 세계은행(World Bank) 팀이 발표한 새로운 보고서 때문에 다시 이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폭력과 (역)개발((de)development)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가자지구-이스라엘-개발-(역)개발’이라는 고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는 데이터셋에 서안지구(West Bank)와 가자지구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목록은 전 세계로 확장된다.
2025 회계연도(FY2025) 기준,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FCS: Fragile and Conflict-affected Situations) 목록
이전 글에서 주장했듯이, 가자지구는 극단적인 사례다.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가, 철저히 통제되고 대부분 무방비 상태인 인구를 대상으로, 포위 상태에서 민족 청소를 명백한 의도로 진행하면서 동시에 정착 식민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0년대,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은 나치 점령 하의 폴란드에서 벌어진 바로 이러한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범주를 찾으려 고심했다.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가 ‘제노사이드(genocide)’였다.
최근 사례 중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일과 비슷한 예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제노사이드 사례는 있었고, 전쟁 중 민족 청소도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이처럼 압도적인 전력 차이와 포위 상태는 매우 이례적이다.
가자지구는 또한 이스라엘이 받은 전방위적인 지지 덕분에 예외적인 사례가 된다. 그 지지에는 내가 시민권을 가진 두 나라도 포함된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유사 사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예멘에서 벌인 전쟁에 대해 영국과 미국이 제공한 지원일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우리가 제공한 무기의 대금을 지불했다. 서방의 ‘자유주의’ 기관들은 가해자들에게 의례적으로 충성을 맹세하기보다는, 벌어지는 일들을 그저 외면하는 편을 택했다. 게다가 그 폭격과 공격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개방된 전장에서 이루어졌으며, 가자지구처럼 포위된 조건에서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가자지구 분쟁은 전 세계적으로 여론의 시선을 주기적으로 사로잡는다. 반면, 수천만 명이 영향을 받는 다른 분쟁들은 서방 언론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벌어진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티그라이(Tigray)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장 낮은 추정치를 기준으로 해도 수십만 명이 의도적인 기아 작전의 희생자가 되었다. 올여름 들어,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이번엔 서로를 상대로 전쟁을 재개하려는 조짐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더 큰 고통이 닥칠 위험이 크다. 수단(Sudan)의 내전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난민 및 기아 위기다. 콩고민주공화국(DRC)은 반복적인 충돌과 완화를 계속 겪고 있다. 부르키나파소, 말리, 니제르를 포함한 사헬 지대와 나이지리아는 지속적인 정치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출처: ACLED
세계은행 보고서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분쟁들이 어떻게 빈곤과 저개발을 야기하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들은 함께 세계은행이 ‘얽혀 있는 위기(intertwined crises)’라고 부르는 상황을 형성하며, 내가 ‘복합위기(polycrisis)’라고 명명한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분쟁들은 단순히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절대적 빈곤'이라고 부르는 개념 자체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신흥 시장 및 개발도상국들의 1인당 GDP는 상당히 성장했지만,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FCS: Fragile and Conflict-affected Situations)은 그렇지 않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
대규모 신흥 시장 및 개발도상국에서는 하루 3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단적인 수준의 절대 빈곤이 많이 감소했고, 이제는 점점 가장 소외되고 불안정한 계층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이 국가들은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극심한 불평등을 가진 중위소득국이다. 반면,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여전히 극단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비율은 한 세대가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는 ‘가난한 사회’, 혹은 ‘저소득 경제’로 정확히 분류할 수 있다.
극단적 빈곤율
전 세계적으로 보면, 1990년에는 전체 인구 53억 명 중 약 23억 명, 즉 거의 절반이 여전히 절대 빈곤 상태에 있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여전히 절대 빈곤에 처해 있으며, 그 대다수는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살고 있다.
극단적 빈곤층 인구 수
무엇보다도 이러한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에 집중되어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절대 빈곤의 42퍼센트가 이 지역 국가들에 몰려 있었다.
전 세계 빈곤층 비율 (%), 하루 3.00달러 기준 (2021년 구매력 기준 환율, PPP)/ 주황색: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FCS), 연노랑색: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이외 지역의 FCS, 하늘색: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비-FCS 국가, 짙은 파란색: 기타 세계 지역/ 출처: 빈곤 및 불평등 플랫폼(PIP), Foster ⓒ 2025/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FCS)의 정의는 세계은행의 2025 회계연도 분류 기준을 모든 연도에 동일하게 적용했다. 최근 몇 년(예: 2019년 이후)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특히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 조사 데이터의 수집 범위가 제한적이다.
음식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 필수 요소이며, 빈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음식 확보를 우선순위에 둔다. 하지만 분쟁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진다. 현재 전 세계 식량 불안정 상태로 분류된 사람들의 80퍼센트가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살고 있다. 그에 따른 신체적 결과는 영아 사망률, 영양실조, 발육 부진, 기대 수명 같은 수치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C. 기대 수명과 영아 사망률, D. 영양 결핍과 발육 부진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집을 떠나 여러 차례나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 중 90퍼센트가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살고 있다. 이주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인프라가 부족하며, 자본 축적은 극도로 어렵다.
1인당 자본 자산
인프라도 자본 축적도 없이, 분쟁에 시달리는 저소득 국가는 세계 무역에서 완전히 배제되거나, 원자재 수출국이라는 구조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편입된다. 이들은 세계 생산에 필수적인 원자재를 수출하지만, 정작 자국 경제를 돌리는 데 필요한 원자재나 에너지, 상품은 제대로 수입하지 못한다.
C. 무역 개방성(무역 규모(수출 + 수입)를 GDP 대비 비율로 나타낸 것), D. 원자재 수출 의존국(광물, 석유, 농산물 등 1차 원자재가 큰 비중을 차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우리는” 도움을 주고 있을까? 평화유지는 어떨까? 대답은 그렇다,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 원조가 흘러 들어가고 있고, 평화유지 활동도 있다. 이 둘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개발의 실패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글로벌 노스(Global North)가 그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원조와 평화유지 활동은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불과하다. 수억 명이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갖지 못한 거대한 지역에 연간 수백억 달러 수준의 지원이 흩어져 있는 정도다. 문제 규모에 비해 노력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으므로, 원조가 효과적인지 무의미한지를 일반화해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물 한 방울로 불을 끌 수 있을까? 어쩌면, 아주 작은 영역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 불은 곧 다시 번진다.
A. 평화유지 활동, B. 2005년 기준 IDA(국제개발협회) 지원 대상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 C. 취약국(FCS) 경제에 대한 공적 개발 원조(ODA), D. 2010~2022년 취약국 경제를 위한 공여국의 지원 공약
가자지구는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제노사이드적 민족 청소가 벌어지는 밀집된 전쟁터다. 각종 기괴한 방식으로, 권력 있고 부유한 세력들이 ‘전후’ 재건과 개발 등을 명분으로 자리잡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의 대부분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지역들에는 그와 같은 논의조차 없다. 예멘, 수단, 콩고민주공화국(DRC), 사헬 지역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세계은행과 여러 해설자들이 강조하는 더 큰 쟁점이다. 빈곤과 개발 문제는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21세기 이전까지 빈곤은 인류 대부분이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었다. 세계의 다수는 가난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극단적인 빈곤은 점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문제로 집중되고 있으며, 만성적 분쟁이 이어지는 구역에 모여 있다. 우리는 이 위기 지대의 규모, 위태로운 생명들의 수, 그리고 한 세대 이상 제대로 된 개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들과 ‘세계의 나머지’ 사이에서 점점 심화하는 단절과 분리를 직시해야 한다. 수십억 명이 실질적인 개발을 경험하는 동안, 수억 명은 생존의 기초와 현대 문명의 모든 요소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빈곤은 언제나 불평등의 문제다. 이 지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빈곤은 단지 어떤 국가 안에서 개인이나 가족, 공동체가 처한 지위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빈곤과 분쟁이 결합해, 국가 전체와 지역의 국가 체계를 ‘역개발’, 침체, 심지어 퇴보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분쟁들은 가자지구처럼 급진적인 강도나 극단적인 전력 불균형을 보이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외부 행위자들’과 지역 강국들이 개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르완다(Rwanda) 같은 위기 국가는 눈에 띄게 독자적인 지역 강국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르완다의 이웃인 콩고민주공화국처럼 극도로 취약하고 외부 영향에 흔들리는 나라에게는 큰 불행이다. 괜히 이스라엘이 르완다 현 지도부의 롤모델이 된 것이 아니다.
권력을 배제하고 개발을 논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권력과 이해관계를 피해서 이뤄지는 개발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질문은, 권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그것이 어떤 물질적 결과를 낳는가이다. 권력은 제노사이드를 낳을 수도 있고, 무정부 상태와 혼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적 혹은 더 넓은 패권 전략의 일부로서, 정치 권력과 사회적 이해관계는 물질적 고통을 줄이고, 세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구성될 수도 있다.
만약 르완다가 모델이라면,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경쟁적인 중위소득 국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다극적 세계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반면, 가자지구, 티그라이, 수단을 세계은행이 기술한 더 광범위한 취약하고 분쟁 영향을 받는 국가들과 함께 놓고 본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지정학적 경제 양극화, 분쟁, 극단적인 불평등이 그 대안일지도 모른다.
[출처] Chartbook 404 Violence and (de)development: From Gaza to "fragile and conflict-affected situation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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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