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순환: 2025년 여름, 중국을 지나며

돌이켜보면이번 여름의 첫 몇 달은 마치 미국 정치라는 끔찍한 소용돌이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탈출 같았다이런 변화는 독일이 아니라, 7월의 중국에서 일어났다.

베를린은 독일의 새 정부와 트럼프에 집착하면서 콜롬비아 등등에 대한 끝없는 고통스러운 질문을 유발한다그 외의 것들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게다가 베를린은 내가 사는 곳이다이곳에서는 이질감이나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낯선 충격보다는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이 있을 뿐이고, '리셋'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다르다프라이팬에서 불 속으로 뛰어드는 느낌이라기보다는프라이팬에서 매우 분주한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느낌에 가깝다진정한 안도감이 있긴 하지만한가롭게 몽상할 시간은 없다머리를 들고 정신을 차릴 시간이다.

돌이켜보면내가 톈진 여름 다보스 이후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썼던 첫 글은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의 '악어 감옥(Alligator Alcatraz)' 시기와 중국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을 비교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 글에서 중국에 지나치게 관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내 대답은 그것이 실은 중국에 관한 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그 글은 미국의 끔찍함을 중국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경험에 더 가까웠다사람은 거울 자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반사된 얼굴이다.

미국의 난장판이 배경광처럼 깔려 있을 때중국이 세계에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은 블레어와 클린턴 시절 1990년대의 복고적 미래(future-retro) 투영처럼 보였다.

톈진에서의 오찬 자리에서 토니 블레어(Tony Blair)를 처음 가까이서 보게 된 경험이 이런 백 투 더 퓨처식의 감각을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이건 그가 가자 지구 인종 청소와 관련된 자문 활동으로 비난받기 전의 일이었다.)

실제로 이번 여름 다보스 포럼이 열린 톈진 컨퍼런스 센터는적어도 중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충격적인 장소였다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마이클 페티스(Michael Pettis)의 과잉 투자’ 비판에 공감하게 되었다텅 빈 컨퍼런스 단지의 거대한 건물들은 파라오 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졌고그 외곽 경사로에서 땡볕 속에 녹초가 된 채 오토바이와 스쿠터 위에 쓰러져 있는 배달 기사들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그런 인상은 더 강해졌다.

나는 진짜로 중국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아니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경험이 쌓이면서—수많은 관료기자싱크탱크 인사들과의 대화차트북 차이나 팀의 멋진 친구들을 포함한 사람들과의 만남거의 공개적인 토론들직접 대면으로 중국어 수업을 듣고베갯머리 대화를 나누고갤러리를 둘러보고더위를 견딜 수 있을 때는 밖을 걷고도로 여행을 떠나고, ‘어울려 놀면서—이런 모든 것들이 겹겹이 쌓여가며 처음의 반사적 반응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백인 남성의 시선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그건 어리석은 얘기다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관심사와 정체성자신의 위치 인식이 변화한다는 점이다나는 점점 미국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청두의 독립 서점에서 행사를 진행하던 즈음에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덕분에 인터넷 노출을 조절하게 되었다며 농담하곤 했다. VPN과 로밍 요금 걱정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디지털 해독 기간이었다.

이런 변화가 생각의 흐름을 잃게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다만 사고의 초점과 방향이 달라진다특히 행사의 중반쯤경찰과 다소 위협적인 인상의 사복 요원들이 나타나 참가자 전원을 촬영하기 시작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내가 중국과 글로벌 녹색 전환에 대해 CCG에서 강연했던 순간이 바로 그 변화 과정 속 하나의 장면이었다그 자리에서 나는 적어도 내 중국 청중을 약간이나마 놀라게 할 만한 이야기를 중국에 관해 찾아낸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 결과로 중국 언론인들과 더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어졌고특히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의 매우 날카로운 동료 기자와의 대화가 인상 깊었다.

이 자리를 마련해준 페키놀로지(Pekinology)의 왕쯔천(Zichen Wang)에게 감사한다.

왕쯔천(Zichen Wang)은 중국과 세계화 센터(CCG)의 국제 커뮤니케이션 담당 국장이자 연구원이다.

여기약간 편집한 내 강연 서문의 발췌가 있다.

중국의 산업 발전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종종 과장된 표현에 빠지기 쉽다어쩌면 우리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떤 면에서는 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번 경우에는오히려 과장을 더할 필요가 있다중국의 경제 발전특히 물질적 경제 발전—그중에서도 에너지 부문—에 대해 사고할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과제 중 하나는지금까지 벌어진 일의 급진성을 제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언어를 찾는 것이다그리고 그만큼 앞으로 다가올 과제들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건 결국 우리 자신을 꼬집어 깨우는 일이다안일함과 일상의 무감각에서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이 그래프는 Our World in Data에서 가져온 것으로이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자료다하지만 이건 내가 이 화면에 올릴 수 있는 것 중 가장 충격적인 그래프이기도 하다대개는 이걸 보면서 그냥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당연하지원래 저런 거잖아.” 하지만 다시 보자!

이건 인류 역사상 기록된 석탄 생산량이다이건 말 그대로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종으로서의 존재(species-being)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이 채굴한 석탄의 총량이다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석탄은 현대 도시 산업 발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다석탄 없이는 산업혁명도산업 자본주의도마르크스주의 문헌이 19세기에 설명했던 유기적 잉여가치 생산과 착취도 존재하지 않는다이 지표를 기준으로 보면우리가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과장이 아니다여기에 담긴 모든 수치가 전부다어디 숨어 있는 다른 에너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데이터를 보면인류의 에너지사는 세 시기로 나뉜다.

1750년 이전 시기는 인간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생물학적 에너지 체계에 의존하던 시기였다땔감인간의 힘동물의 힘이 전부였다그다음은 1750년부터 20세기 말까지로고전적인 산업 체제의 시기다영국에서 시작되어 독일미국일본소련그리고 50~60년대 발전 국면의 중국이 이 모델을 모방했다.

… 기후 정치의 글로벌 프레임이 형성된 것은 1980~90년대였다우리는 그때 기후 문제가 뭔지 안다고 생각했다그것은 미국 중심이었다엑슨(Exxon), 텍사스유럽크루프(Krupp), 루르(Ruhr), 다시 유럽즉 서구의 산업 역사였다하지만 이제 글로벌 경제 발전의 세 번째 시기가 시작된다.

이건 말 그대로 이 방 안에 있는 모두의 생애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2000년 거의 정확히 그 시점부터 이 곡선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시 강조하자면이건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우리가 고려하지 않은 또 다른 역사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이건 석탄이라는 변수를 통해 요약한 모든 화석 연료의 역사이고그 안에서 지난 25년간 중국이 무엇을 했는지가 그대로 보인다이건 이전 인류 역사 전체와 갑작스럽고 철저한 단절이다중국의 과거와도 단절된다마오 시대의 중공업 발전은 무겁고규모가 크고놀라울 만큼 비효율적이었다덩샤오핑(Deng Xiaoping)의 개혁·개방 초기에는 두 가지 급진적 정책이 있었다하나는 한 자녀 정책이고다른 하나는 에너지 효율화 정책이었다… 그 시기 동안 중국은 화석 연료 사용을 폭발시키지 않고도 성장을 해냈다그런데 우리가 모두 살아 있는 이 생애 안에서중국에서 완전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중공업 생산과 에너지 소비가기록된 인류 역사상 어떤 시점보다도 가파르게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서구의 선의 있는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중국의 배출량은 사실 서구가 오염을 외주화한 결과야.” 물론 그런 측면이 있었다하지만 그건 작은 부분이다중국 성장의 10~15% 정도일 것이다대부분은 중국 내부의 도시화다우리가 지금 이 강연을 하고 있는 이 사무실 같은 건물들그런 건축이 그것이다… 중국의 대규모 신도시 건설새로운 이주민 5억 명의 도시화그리고 지난 30년간 중국 전체 주거 환경의 현대화가 그것이다… 중국 사회가 도시 사회로 재편된 이 변화는 세계사적 차원의 사건이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90% 가까이가 1980년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유럽인의 시각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중국에서는 모두가 새롭게 뒤엎고 다시 지은 도시적 현대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그리고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려는 핵심은바로 그 점이 기후 정책의 판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다.

왕쯔천과 CCG 팀 덕분에 이 글의 나머지는 (편집되지 않은 형태로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안일함에서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일중국의 거대하고 급진적인 현실을 서구의 익숙한 자로 재단하지 않는 일, “그냥 중국이니까라는 자동 반응을 멈추는 일 — 이런 태도야말로 내가 샤시(Shaxi)의 산골 마을에서 열린 카이저 쿠오(Kaiser Kuo)의 이상적인 밴드 캠프에서 나눈 대화의 핵심 주제였다.

카이저와 내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건 아마 다롄의 어느 호텔방에서 밤에 이루어진 인터뷰였던 것 같다이번 대화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이 대목은 더 잘 읽히도록 내가 대본 일부를 편집한 것이다이건 정말 흥미로운 대화였고약간 유체이탈’ 같은 느낌도 있었고때때로 말이 내 손을 벗어나 흘러갔다다음은 그 대화의 마지막 쯤에 오간 문답 중 일부다:

나는 『파괴의 대가(Wages of Destruction)』를 쓰고 난 뒤본격적으로 중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러고 나서 2006~2007년에 『델루지(Deluge)』라는 책 집필에 들어갔는데그 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다룬 것이었고바로 그 시기에 미국이 세계 문제의 핵심 국가로 떠오르게 된다. ‘세계 문제(world affairs)’라는 말을 우리는 당연히 쓰지만그 말이 본격적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20세기 초였다그리고 그 당시 우리가 말하던 세계는물론 유럽 제국들을 의미했지만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미 그 세계에서 중국의 운명이 중심적인 요소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내 개인적인 역사 속의 점들이 연결되기 시작했고 (매우 늦게서야), ‘근대(modernity)’의 역사를 쓰거나, ‘근대라는 개념을 사유하려는 서구의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세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제 더는 중국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 작업이 성립할 수 없다단순히 중국에 대해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중국으로부터 사고하기 시작해야 한다.

『델루지』 이후에 나온 『크래시드(Crashed)』는 그 인식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었다.

최근 나는 차트북에서지리학자 제이미 펙(Jamie Peck)의 작업을 다뤘는데그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결합(conjuncture)’ 개념을 중국의 정치경제 문제에 적용하고 있었다중국은 근대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열쇠 중 하나다나는 심지어 그것이 그 핵심 열쇠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다만 나는 단일한 열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다원주의자라 그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 대해 정형화된 사회과학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려는 시도는 깊이 경계해야 한다단지 일반적인 방법론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규모와 역사적 무게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전 세계의 중간소득국 데이터를 다 합쳐도중국의 여섯 개 성()만큼에 불과하다… 이건 지금껏 존재했던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조직된 근대화의 실험실이다그러니 이건 판을 바꾸는 문제다우리가 지금까지 발전시켜 온 모든 사회 이론은 하나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서구의 산업사는 사실 중국 산업사의 서문이었다이는 에너지 역사만 봐도 명확하다내가 기후 문제에 빠져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 때문이다이건 내가 중국에 대한 책을 쓰는 하나의 방식이다기후는 중국이 지난 25년간 모든 관련 대안 중심지를 단순히 능가한 게 아니라말 그대로 날려버린 영역이다.

그래서 지금 에너지 전환 문제는 본질적으로 중국 문제다우리가 이야기했듯이현재 전 세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75%는 중국에서 진행 중이고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33%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그리고 전체 배출 증가분의 압도적 다수가 중국발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우리가 중국에 대해 개념적으로 사유할 때문제 정의 자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시다우리는 에너지 전환을 정적이고 제로섬적인 문제—A를 B로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로 여겨왔다그런데 중국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방식의 사고를 보여주었다. “개발이야말로 마스터 키다.” 성장이야말로 에너지 기술 전환을 가능케 하는 핵심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 나머지 세계에도 훨씬 잘 맞는다인도에 가서 석탄발전소 멈춰라라고 말하는 건 터무니없다그들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여전히 매우 낮다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가서 가스 인프라 갖추지 마라라고 말하는 건 더욱 어이없다그들에게 유럽식 개발 모델을 따르라고 요구하면서도 가스 인프라는 깔지 말라고 한다면그건 처방이 아니라 착취다… 그래서 나는중국의 성장을 단순한 일반 성장의 한 사례나 예외적인 특수 사례로 간주하는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우리가 파악해야 할 것은—그리고 이 점에서 기후라는 예시가 큰 도움을 준다—중국의 성장은 지금 세계 발전의 중심 동력이라는 점이다이건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예외도 아니다. “이게 바로 게임의 전부다.”

… 이건 한편으론 진부하게 들릴 수 있다하지만 서구 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사람들은 이 사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반복적으로지속적으로이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왜냐하면 이건 너무나 무력감을 안겨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이 말이 진짜 뜻하는 바는서구가 세계사 중심에서 물러나는 물질적 퇴위다이것이 바로 서구의 주변화(provincialization)’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그리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 곳곳을 돌아다닐 필요조차 없다이 나라의 광대한 공간 위에 남겨진 물리적 흔적들—그 어마어마한 인프라인구 규모—그 자체가 곧 그것이다.

카이저맞아정말 압도적이지그리고 나한텐 이게 꽤 답답한 문제이기도 해나는 서구이른바 중국 전문가들이 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어그런데 그 누구도 너를 순진한 외부자로 공격하지는 않더라고적어도 집단적으로 너를 배척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어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연구하면서일종의 확신 곡선(confidence curve)’을 거치지처음엔 큰 불확실성과 인식론적 겸손 속에서 시작해서어느 순간 위험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게 되고그러다 이상적으로는 정보에 기반한 겸손(informed humility)’에 도달하게 돼너는 지금이 궤적 안에서 어디쯤 있다고 생각해?

아담:내 주장들은 지금 완전히 그 겸손의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어그리고 성인으로서 중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겸손해지는 경험은 거의 없어이건 내가 배우는 네 번째 언어인데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이야이건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다시 읽는 법을 배우는 경험이야뇌 자체가 다시 배선 되는 느낌이지.

카이저맞아우리도 그 얘기 좀 전에 나눴지.

키가 큰 백인 남성으로서 중국에 점점 익숙해질수록여러 가지를 스스로 '정상화'하게 된다그중 가장 평범하면서도 흥미로운 건현대 중국에선 익숙한 브랜드들과 현대성의 온갖 장치들에 둘러싸여 있지만그 브랜드 이미지와 메시지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아주 갑작스럽게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내 주변에는 '나 같은사람이 아무도 없다베이징처럼 거대한 도시에서도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녀도 외국인을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할 수 있다그러다 보면자신이 마치 기린처럼 생긴 존재—팔다리가 길고너무 키가 크고공간을 과하게 차지하고이상하게 생긴 동물원 전시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에 익숙해진다.

가끔 이 경험이 여전히 낯설고 특별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르면나는 실제 데이터가 궁금해지곤 했다그래서 DeepSeek에 중국 주요 도시의 외국인 인구에 관한 데이터를 요청했다그 결과 나온 수치들은내가 체험한 현실이나 예컨대 청두에 대한 개별 조사를 바탕으로 보면다소 과장된 면이 있어 보인다.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든이 수치는 경이롭다그리고 이건 우리가 도시화와 세계화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함을 보여준다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중국의 도시화는 글로벌한 다양성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중국은 단지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그렇다고 중국을 어떤 글로벌 규칙의 예외로 생각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중국의 도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도시화 실험이다만약 도시성이란 개념에서 누군가 표준(norm)’을 정의할 자격이 있다면그건 중국이다하지만 어쩌면 중국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건애초에 도시성의 글로벌한 표준을 설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이라는 사실일지도 모른다우리가 사고해야 할 틀은바로 불균등하고 결합된 발전(uneven and combined development)이다.

2025년 현재중국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가 160개에 달할 수 있다이 가운데 1,000만 명 이상이 사는 메가시티는 18곳이다비교를 위해 말하자면미국은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권을 10곳도 채 보유하지 못한다중국에 있는 동안미국이 얼마나 철저히 ()도시적인 국가인지 절감하게 된다미국에서 메가시티로 분류될 수 있는 도시권은 뉴욕-뉴저지와 로스앤젤레스 단 두 곳뿐이다그런데 규모만 놓고 보면이들조차 중국식 분류 기준에서 티어 1(Tier 1)에 들어가지 못한다.

추가로 비교하자면, EU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권을 39개 보유하고 있지만인구 1,000만 명을 넘는 도시권은 단 한 곳—파리—뿐이다.

유럽이나 미국에는중국의 거대 도시군과 비교할 수 있는 단 한 곳의 도시도 존재하지 않는다서반구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례는 멕시코시티 정도다형식상으로 멕시코는 1인당 GDP가 중국과 유사한 수준이기도 하다하지만 중국의 주요 도시와 멕시코시티를 연달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그 둘 사이의 중대한 차이점들을 술술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만약 우리가 도시화와 세계화의 연결점을 중국으로부터 바깥을 향해 사유한다면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달라질까이 질문이 바로 내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 칼럼에서 고민했던 문제의식이다.

그 짧은 칼럼에서 나는 인구의 다양성’ 문제를 다시 강조하면서그것을 중국의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세계라는 주제와 겹쳐 보았다.

중국 인터넷 세계에 발끝만 살짝 담가봐도 금세 알게 된다중국 인터넷을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검열이나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 아니다물론 그것들도 중요하다하지만 만약 중국 정부의 금지만 없다면 하나의 평평한 인터넷이 존재할 것이고그것은 서구식 인터넷과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성과 거리가 먼 가정이다.

무엇보다도중국 인터넷은 스스로 닫혀 있다그리고 그 자발적 폐쇄성은 언어 장벽과 거대한 규모빠른 속도끊임없이 흥미로운 자국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중력에서 비롯된다.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FT) 칼럼에서유럽으로 돌아오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나눈 흥미로운 대화를 계기로, ‘이중순환(dual circulation)’이라는 개념이 오늘날 중국식 세계화(globalization)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한 틀이라고 제안했다.

한 발짝 더 물러서서 보면문제는 아마도 근대라는 시기를 두고 우리가 세계화를 사유할 때그것을 먼저 영국 제국 프로젝트가 만든 글로벌 조건(게이어와 브라이트다윈속에서 이해했고이후에는 미국 패권이 부여한 형태로 이해해왔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작은 섬나라 영국에서 대륙 규모의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커다란 도약이었다두 국면을 가르는 주요한 차이는 미국이 보여준 정치·문화·경제적 민족주의였다그렇다면세계화를 주도하는 힘이 중국처럼 거대한 규모와 독특한 문화·언어적 특수성을 가진 국민국가일 때이 변화는 얼마나 더 급진적일까우리는 그 어떤 체제에서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중국이라는 거대한 국민국가는 1911년에서 1949년 사이 폭력적 실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고중화인민공화국(PRC)에 의해 정치적 틀을 갖추었다물질적 차원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엄청난 경제 발전이 그 국가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 (여기서 사고의 흐름은내가 이번 여행 전에 6월에 썼던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2025년 6월 현재 세계 경제」 글에서 개괄한 중국의 국민경제 발전’ 개념과 이어진다.)

따라서 진짜 과제는세계화의 가장 역동적인 추진력이—이 문제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영국 제국도미국 패권도 아니라 중국일 때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사고하는 것이다중국은 거대하고매우 특수한 국민국가이자 국민경제이고여전히 발전 중이며동시에 공산당의 통제 속에 있다그리고 그 공산당은 실제로는 꽤 전형적인 개발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여전히 1989년을 거쳐 전쟁과 혁명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계보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한다중국 내부에서는 이중순환(dual circulation)’이란 개념이 적절한 묘사처럼 보인다하지만 문제는중국과 연결된 세계에는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하는 점이다.

[출처] Chartbook 402 Dual-circulation: travels through China in the summer of 2025.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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