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가 카리브해에 노예제도를 들이기 훨씬 전부터 섬의 원주민들은 허리케인과 폭풍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대 앤틸리스의 타이노족과 소 앤틸리스의 칼리나고족(또는 카리브족)은 폭풍 속에서 살아가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자메이카와 쿠바 같은 큰 섬의 타이노족은 허리케인과 폭풍을 대비해 카사바와 유카 같은 바람에 강한 뿌리 작물을 심었다고, 2016년 스튜어트 슈워츠(Stuart Schwartz)는 저서 《폭풍의 바다(The Sea of Storms)》에서 설명하고 있다.
칼리나고족은 폭풍 해일과 바람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안을 따라 정착지를 건설하지 않았고, 플로리다 남서부의 칼루사족은 나무를 이용해 방풍벽을 만들어 폭풍으로부터 보호했다. 사실 유럽인들, 즉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인들에게 허리케인과 폭풍에 대해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들은 칼리나고와 타이노족이었다. 심지어 '허리케인(hurricane)'이라는 단어는 타이노어와 마야어에서 바람의 신을 뜻하는 '후라칸(Huracán)'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식민주의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출처: Unsplash+ Zyanya Citlalli
나는 역사가 오늘날 재난 대응에 미친 영향과 같은 카리브해의 자연재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이 겪고 있는 허리케인 등 재난 위기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 섬들이 취약한 이유는 식민주의가 만든 착취적 시스템, 노예제 토지 정책의 유산, 잘못된 건설 및 개발 방식, 그리고 환경적 불공정 때문이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
식민지 세력은 카리브해 사람들이 땅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거주지, 그리고 자연재해로부터 회복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1600년대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현지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대신, 착취적인 추출 경제 모델과 플랜테이션 경제를 통해 현금 작물을 수출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강제로 땅에서 쫓아내고 해안가에 정착지를 세워 노예와 물품을 쉽게 들여오고, 설탕과 담배 같은 현금 작물을 유럽으로 수출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지역 사회는 폭풍에 취약해졌다. 또한, 그들은 농산물 운송을 위해 강과 하천 근처의 저지대에 정착지를 개발했지만, 이 지역들은 폭우가 내릴 때 홍수 위험에 노출되었다.
2017년 허리케인 어마가 강타했을 때, 프랑스의 해외 집단 거주지인 생마르탱에 있는 물가 주택이 큰 피해를 입었다. 출처: Unsplash, Tomasz Tomal
오늘날 카리브해 인구의 70% 이상이 해안에서 1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이러한 해안선은 허리케인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도 크게 노출되어 있다.
노예제 기반 토지 정책의 유산
식민주의가 남긴 토지 정책의 유산은 오늘날 재난으로부터의 복구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다.
식민지 세력들 속에서 소수의 지주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통제한 반면, 대다수의 인구는 변두리와 작은 지역으로 밀려났다. 지역 주민들은 토지에 대한 법적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토지 증명서나 증서를 소유하지 못했고 지주에게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 후 대부분의 섬 정부는 이전 농장이나 영지로부터 토지를 취득해 노동 계급에게 재분배하려고 시도했지만, 주로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루어진 이러한 노력은 토지 소유권을 변화시키거나 경제 발전을 개선하거나 취약성을 줄이는 데 대부분 실패했다.
오늘날까지 취약성을 지속시키는 식민지 유산 중 하나는 '왕실 토지(Royal Land)' 또는 국유지로 알려져 있다. 영어권 카리브해에서는 토지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토지가 영국 왕실의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에도 모든 영어권 섬에서 왕실 토지를 찾을 수 있다.
식민지 세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리브해를 지배한 방식 중 하나로, 예를 들어 바부다에서는 모든 토지가 바부다인을 대신해 '영구적으로 정부'에 귀속된다. 즉, 바부다 섬에서 태어난 개인은 개별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대신 토지는 공동 소유로 되어 있어,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섬을 재건하는 데 절실히 필요했던 신용 및 개발 기회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다. 대부분의 바부다 주민들은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증서가 없었기 때문에 주택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식민주의가 만든 이 제도와 기타 집단적 토지 소유권 제도는 카리브해 주민들을 자연재해에 더 취약하게 하고, 오늘날 재해 복구를 위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고 있다.
부실 건설의 뿌리
카리브해의 재난에 대한 취약성은 노예제도 이후 주택 건설과 그 이후의 적절한 건축법 제정 실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예제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토지에 대한 권리도 접근할 권리도 없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노예 소유주로부터 땅을 임대해야 했고, 노예 소유주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고용을 해지하거나 땅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바베이도스와 같은 국가에서는 '채텔 하우스(Chattel House)'라는 특정 유형의 주택 구조가 발전했다. 이 집들은 작고, 거주자들이 이전 노예 주인에 의해 강제로 쫓겨날 경우 쉽게 분해해 수레에 실을 수 있는 구조로 지어졌다. 오늘날에도 많은 바잔족이 여전히 이 가옥에 거주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식당이나 상점으로 개조되어 있다.
바베이도스에서는 여전히 채텔 하우스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네덜란드가 소유한 아루바, 보네르, 큐라소에서는 농업에 적합하지 않고 폭풍으로 쉽게 손상되는 해안을 따라 노예 오두막이 지어졌다. 이 노예 오두막은 현재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식민지 시대의 해안가 정착 패턴으로 인해 많은 해안 지역 사회가 허리케인 피해와 상승하는 바다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주택의 취약성은 자연재해에 노출된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다.
폭풍 해일에 취약한 보네르의 해안에 노예 오두막이 지어졌다. 출처: 위키미디어
오늘날 많은 섬의 가난한 주민들은 폭풍우 차단기를 설치하거나 태양열 발전기를 구입하는 등의 보호 조치를 취할 여유가 없다.
이들은 주로 가파른 산비탈과 같은 재해에 취약한 변두리 지역에 살며, 주택 가격이 더 저렴한 경향이 있다. 또한 이러한 지역의 주택은 지붕과 벽에 아연 도금된 시트지 같은 저급 자재로 부실하게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이 지역의 비공식적이고 규제되지 않은 주거용 주택 건설의 특성과 건축법의 부실한 집행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식민주의의 유산으로 인해 카리브해 연안의 대부분의 주택 또는 건축 기준이나 법규는 영국과 프랑스령 앤틸리스 제도의 유물이다. 이 지역의 건축 표준은 통일성이 부족하고 일반적으로 주관적이며 통제되지 않는다. 재정적 한계와 인력 제약으로 인해 규정과 표준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진전이 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카리브해 지역은 최근 몇 년 동안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바람 관련 건축법을 개발하는 데 진전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카리브해 건축 기준에서는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여전히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바베이도스의 카리브해 기상 및 수문학 연구소를 통해 과학적 지침을 얻을 수 있다.
도미니카와 세인트 루시아 같은 섬들은 재해 복구를 위한 새로운 건축 기준을 세웠다. 그레나다 섬은 허리케인 베릴 이후 복구 과정에서 새로운 건축 지침을 따르길 희망하고 있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국가 토지 이용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 표준은 섬의 복원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의 토지 정책과 개발의 유산으로 인해 섬 마을들이 증가하는 폭풍 위험에 취약해진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출처] Colonialism’s legacy has left Caribbean nations much more vulnerable to hurricane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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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 닙스(Farah Nibbs)는 볼티모어 카운티 메릴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Maryland, Baltimore County) 응급 및 재난 보건 시스템 조교수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