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다섯손가락 2집, ‘풍선’, 1986)
풍선 날다
5월 28~29일, 6월 1~2일, 북풍이 불었나, 남쪽으로 풍선이 날아왔다.
풍선에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인 쓰레기와 담배꽁초, 거름 따위가 담겼다. 5월 29일, 대통령실은 “침착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도민들은 28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이미 ‘공습 예비 경보(Air raid Preliminary warning)’ 문자를 받아버린 뒤다. ‘공습 예비 경보’를 내렸는데, 파주 최전방 육군 제1보병사단장은 1일 저녁 참모들과 회식하다가 취해버렸다. 북한은 2일 쓰레기 살포를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하며, 추후 삐라(대북전단)가 다시 발견되면 살포를 재개하겠다고 경고했다
6월 6~7일엔 남풍이 불었나, 북쪽으로 풍선이 날아갔다.
북쪽으로 날아간 풍선엔 “진실과 사랑”(자유북한운동연합)인 윤석열의 3.1절 기념사와 케이팝(K-POP) 노래, 삐라가 담겼다. 정부는 10일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자제 요청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대북 전단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결정(2023.9.26.)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때는 풍선을 타고 자유롭게 휴전선을 넘나드는 예쁜 꿈도 꾸었을 법하다.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꿈은 더 이상 예쁘지 않은 끔찍한 악몽일 게다.
북한 향한 확성기도 펑펑
탈북민단체가 삐라를 보내자 8일 다시 북쪽에서 풍선이 날아왔다. 남한은 4일 국무회의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9·19 남북군사합의’(2018) 전체 효력 정지를 의결했고 대통령이 재가했다. 그리고 9일 대북 확성기로 방송을 때렸다. 방송은 확성기 설치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20~30Km 지점까지 퍼진다고 한다. 방송 중간중간에 BTS의 ‘다이너마이트’도 틀었다고 하는데, 곡의 내용과 무관하게 제목만으로는 섬찟하다. 이 상황이 종국에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빛나게 될”지 폭발해 버릴지 알 수 없다.
방송을 때리자 다시 북쪽에서 풍선이 날아왔다. 풍선을 날린 뒤 북한은 “만약 한국이 국경 너머로 삐라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도발을 병행해 나선다면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군은 휴일임에도 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했다. 그러나 별일 아니었나 보다. 재난 문자까지 발송됐던 접경지 경기지역 시장과 군수 12명은 9일 일본으로 ‘출장’을 떠났고, 10일 남한 대통령 부부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순방’을 떠났다.
서로 다른 체제를 가진 분단국가의 숙명인가. 두 국가가 마주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비극이라고 표현하기조차 겸연쩍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한반도는 ‘풍선 전쟁’ 중이다. 남한은 확성기 방송을 강행했다. 전방은 물론이려니와 전국의 30만여 명에 이르는 남한 병사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목숨 걸고 가는 군대
군대 내 사건 사고는 거슬러보기까지 한다면, 많아도 너무 많다. 한국전쟁 직후 남북 대치로 벌어진 사고는 빼고, 이승만이 군대를 동원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은 빼고, 12·12군사반란 때 반란군에게 저항하다 총에 맞아 사망한 정선엽·김오랑은 빼고, 전두환이 군대를 앞세워 광주 시민을 학살한 사건도 빼고.
1993년에는 연천 예비군훈련장 포탄 폭발 사고로 현역장병 3명과 예비군 17명이 숨졌다. 1996년에는 산사태가 일자 철판을 조립해 만든 내무반 막사에서 잠자던 병사 20명이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2005년 김 일병 사건, 2014년 윤 일병 살인사건, 2021년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은 그나마 군 당국의 은폐에도 유족과 동료, 군인권센터 등의 끈질긴 추적 끝에 실체가 드러난 경우다. 군 사망사고 현황(통계청 지표누리 참조)을 보면 사망자만 매년 1백 명 안팎이다. 대부분 군기 사고로 자살이 압도적이며, 안전사고가 20% 안팎이다. 크고 작게 다친 경우를 빼고 그렇다.
자식을 군대로 보내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 마냥 불안한 부모의 마음이 유난스러운가. 반짝반짝 빛나던 젊은이들이 무수히 죽어서 돌아왔다는 게 진실이다. 군 복무기간이 훨씬 길다는데 북한군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겠는가.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의 한 장면
병사 죽음 외면하는 군 통수권자
현역병들은 각종 재난 때 수해 복구, 제설 작업에도 투입된다. 지난 5월 10일에는 대통령 취임 2주년을 기념한답시고 경호처 주관으로 태권도 시범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도 군인들이 대거 동원됐다. 군인들은 두 달간 행사 연습만 했고, 행사 전날에는 대통령과 악수 예행연습까지 했다. “절대 군인이라 말하지 말라”는 입단속까지 시켰다. ‘삽질’ 시킨 거다.
지난 5월 어느 육군 훈련병은 훈련 중 수류탄이 터져 죽었고 또 다른 훈련병은 군기훈련, 사실상 불법 얼차려를 받다 숨졌다.
1년만 거슬러 올라가 2023년 7월,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작업에 동원된 해병대 소속 21세 청년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국방부와 해병대 고위 관계자들은 사건을 은폐했다. 대통령의 ‘진노’에서 비롯된 일로 추정된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진상을 밝히려다 보직해임 당하고 기소됐다.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이 본회의까지 통과됐다. 하지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병사들은 속된 말로 이런 ‘개죽음’을 계속 목도해야 했다. 육군부대에서 상병으로 복무하던 김다민 씨는 이미 2022년 5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다. 직업군인과 달리 현역병을 중대재해법 보호 대상으로 보지 않는 해석은 헌법에 위배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무대응 속에 심리는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김 씨는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본인의 의지 없이 징집된 20대 초반 남성 중에서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주간경향> 1582호, 2024.6.10.)
젊음이 밟히는 그곳…
그간 정부의 묵인 아래 민간 단체가 북한에 살포했던 삐라들을 살펴보면 북한의 오물을 탓할 처지가 아니다. 치졸할뿐더러 입에 담기조차 민망스러운 글귀와 조악한 합성사진들이다.
이쯤 되면 1997년 총(銃)풍 사건에 이은 풍(선)풍인가. 남북한 지도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군대를 동원하고 이용한다. 풍선과 방송을 주고받으며 서로 되지도 않는 체제 자랑과 상대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는 사이, 병사들은 어처구니없게도 총알이 아닌 부조리에 맞아 죽는다. 물에 빠져 죽고, 훈련받다 죽고, 맞아서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발생한 사고는 외면당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는 가차 없고 신속한 압박과 회유가 뒤따른다.
최근 유치한 풍선 놀이에 빠져있는 남북한 정치권의 공방을 보는 병사들은 불편하다. 북한이 쏘아 올린 풍선 터지듯 최근 연달아 터지는 군부대 사건·사고를 병사들은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할 수 없어 불안하다. 명령에 따랐던 병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대통령실은 “조그마한 사고”라고 하고 윗선 책임은 없다는 행태를 보며 불쾌하다.
휴전 중인 나라에서 목숨 걸고 가는 군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어둡고 폐쇄된 영역이다. 그곳에서는 무수한 ‘삽질’을 한다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캐낼 수 있는 꽃삽 한 자루 들이밀기 어렵다. 그곳에서 시작된 ‘군사문화’는 대한민국의 가정, 학교, 직장까지 사회 도처에 깊게 스며들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미명 아래 국가 건설 이후 한국 사회의 부조리 불합리 비논리가 비롯된 곳, 군대 내부의 악취가 ‘오물 풍선’보다 끈적거린다.
대한민국 헌법 5조 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라고 돼 있다. 병사는 ‘신성한 의무’를 위해 태어난 소모품도, 남북한 정치도구도 아니다. 병사 이전에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을 기본적인 권리’를 타고난 인간이다. 근본도 없고 품위마저 사라진 정부의 출생 정책, 낳으라 낳으라만 하지 말고 태어난 아이들의 소중하게 가꿔온 눈부신 젊음을 짓밟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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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미는 오랜 노동운동의 길 위에 있는 활동가로서 현재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기획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