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윤석열 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건설자본의 위기 탈출구
“자유당 때부터 익숙한 정치 솜씨로 크고 주요한 모든 건설공사를 도맡아오면서 건설업으로 재벌급이 된 기업이 있다. 박정희 정부 등장 후 도로 건설을 맡아 더 유명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 해운, 제지, 전자공업 분야에까지 손을 뻗쳤다.”
1968년 6월 11일 조선일보에 실린 현대건설 이야기다.
건설업이 전후 복구 사업, 경제개발 5년계획 등으로 연평균 17%라는 성장세를 보이며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특수가 끝나고 잠시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새로운 활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모토를 내걸고 시작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자금의 많은 부분이 강남 개발로 확보됐다. 건설회사는 온갖 세제 혜택과 행정 지원을 받았으며 대금 대신 아파트 지을 땅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 사회간접자본 건설로 성장을 시작한 대형 건설사들이 1970년대 중반 주택시장으로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중동 건설시장으로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이 또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은 것이었다.
1979년 2차 석유파동은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중동 건설 수요도 급격하게 퇴조했다. 해외 건설 수주는 1982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 1987년 즈음 호황기 대비 20%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해외에 진출해있던 건설업체들이 놀고 있는 장비를 국내로 반입할 수 있도록 길을 조금씩 터주기 시작했다.(1983.6.10. 매일경제) 건설자본은 국내 시장에 집중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신도시 개발로 주택공급의 급격한 증가, 이후 재건축과 2기 신도시, 뉴타운과 지방 중소도시 신시가지 건설 등은 건설자본의 생명수였다.
주택 공급 성과를 빠르게 내는 데는 아파트만 한 게 없었다. 청약통장, 신규 아파트 한정 대출, 민간건설사에 저렴하게 땅 공급과 회사채 발행 권장, 선분양으로 건설비 확보 등 각종 특혜가 아파트에 집중됐다. 심지어 분양가 자율화와 미분양 아파트 지원 대책까지 건설자본에게 아파트는 수익성 좋고 위험부담 없는 시장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아파트 천국이 되었다.
노동조합의 주거권 요구
한국 아파트 관련 정책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 10월이었다. 정부는 산재한 판잣집 일소를 위해 서민 위주 공영주택 15만호를 주택공사가 지어 그 중 공영주택을 임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분양주택으로 돌아섰다. 1972년 3월에도 주택공사와 주택복권기금에 의한 서민주택은 모두 임대아파트로 건립하겠다는 정책이 나왔다. 이 역시 다시 분양으로 돌아섰다. 주택난은 더 심각해졌다.
1989~1990년 주택가격이 폭등했다. 각종 개발 호재로 1988년에 27.4%, 1989년 24.95% 땅값이 폭등했다. 전셋값도 87년 19.4%, 88년 13.2% 상승했다. 서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초 신도시 개발로 주택 200만 호 건설을 약속했다. 저소득층이 살 수 있는 영구임대아파트도 포함되어 그해 3월 도봉구에 착공되었다. 처음에는 영구임대주택 25만 가구를 짓겠다던 정부는 이를 19만 호로 줄이고 대신 10년 후 분양 전환하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임대아파트로 내집 마련 호기를 잡으라는 광고가 등장했다. 불법 전매가 많아 수도권 임대아파트 20%가 불법 입주자라는 통계가 있었을 정도였다. (경향신문 1990.7.12.)
1990년 전노협은 기업주에게 주거비 상승분을 보전할 수 있도록 임금을 인상할 것, 장기저리로 주택 구입 및 전세보증금을 융자할 것,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노동자 주택 건설 부지로 전환할 것, 사원 주택을 건설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에는 부동산 투기 주범이 30대 재벌을 비롯한 대토지소유자의 토지를 국가가 수용, 매입하여 국유화하고 공공영구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건설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전면 보호할 수 있도록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그해 3월 31일에는 전노협, 전교조, 전농, 전빈련, 민예총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연합이 ‘물가 폭등, 토지·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을 서울 부산 광주 등 15개 지역에서 열었다. 부동산 투기 근절과 임대료 동결, 무주택 서민에 대한 영구임대주택 공급 등을 촉구했다. 노동자 집단 거주지, 산동네, 철거 예정 지역 등에 ‘임대주택 쟁취’ 현수막이 걸렸다.
주거정책에서 소외된 사람들
노동자에게 집은 꿈 꾸기도 어려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정부의 중산층 확대 전략과 주택담보 대출 확대 정책이 고용안정·임금인상과 만나 “미래의 노동으로 집을 구입”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 속에서 “독점재벌 투기자들의 토지 국·공유화 및 영구임대주택 건설”을 요구했던 국민연합의 강령은 노동자 민중의 요구로 자리 잡지 못했다.
임대주택 정책은 내 집을 마련해 중산층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5년 공공임대를 도입했고 노무현 정부는 10년 장기 공공임대 50만 가구를 공급했다. 1993년부터 2017년까지 예산과 기금 등 정부 재원을 투입해 지은 후 분양 전환한 공공임대 주택이 30%에 육박했다. 공적 자금을 퍼부어 지은 임대아파트는 많았지만, 국가 소유 임대아파트 물량은 충분히 늘지 않는 구조가 되었다.
2000년대 주택 공급 시장은 민간 건설자본이 주도했다. 건설자본은 공공임대 분양전환 사업에 참여해 돈을 벌었다. 임대료 법정 상한선 5%를 잘 활용해 임대료를 꾸준히 올렸으며 분양전환으로 이익을 두둑하게 챙겼다. 부영건설의 성공사례는 다른 업체들에도 영향을 줬다.
분양전환 임대주택 정책, 중산층 대상 ‘고급’ 임대주택 정책이 임대주택의 개념조차 바꿔놓고 있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임대 연한을 20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상한을 경우에 따라 완화하며 보험사까지 뛰어들 수 있는 임대주택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주거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주택정책은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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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은 『전노협백서』 발간을 계기로 노동운동 자료를 모으고 노동자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2008년 이후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역사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가스공사노동조합 30년사』, 『서울지하철노동조합 30년사』 등이 있다. 이 칼럼은 노동자역사 한내와 참세상이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