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민주주의가 지진을 겪었다.
주말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인구가 200만 명을 조금 넘는 작은 주 작센안할트(Sachsen-Anhalt)는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AfD)에 무려 44%의 득표율을 몰아줬다. AfD는 선거지도를 놀라울 정도로 뒤바꿔놓았다.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AfD가 작센안할트에서 차기 정부를 구성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른 정당들이 연합해 AfD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 전국 차원에서 보면 AfD가 정부에 참여하기까지는 더 먼 길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결과는 독일 정치체제를 뒤흔든다. 독일연방공화국의 익숙한 정치 규범이 얼마나 심각하게 붕괴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작은 동독 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Mecklenburg-Vorpommern)도 9월 20일 선거를 치르며 결과는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 민주주의의 위기는 오랫동안 예고해 왔다. 이제 그 위기가 실제로 닥친 듯하다.
AfD 내부에는 여러 정치적 색채가 존재한다. 작센안할트의 AfD는 독일 당국이 공식적으로 우익 극단주의 세력으로 분류했다. AfD의 후보 울리히 지크문트(Ulrich Siegmund)는 카리스마 있는 전직 기업용 향수 판매원이다. 그는 한때 베를린 정부에 지하철역에 바닐라 향을 퍼뜨리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득하려 한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지어내려 해도 쉽지 않다!
독일민주공화국(GDR)이 사라진 뒤 태어난 지크문트는 슈타지(Stasi)와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억압을 떠올리게 하는 한편,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작은 독일 국가의 기억을 찬양한다. 심슨 모페드(옛 동독 소형 오토바이)처럼 기묘하고 독특한 기계가 그 정체성을 상징한다. 심슨을 창립한 유대인 가문 후손들이 지크문트가 자신들의 가족 이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항의하자, 그는 이들을 동독 현실과 동떨어진 불청객 미국인 참견꾼이라고 일축했다.
지크문트는 독일 우파 인사들이 대규모 ‘재이주’ 계획을 논의한 비밀 모임에 참석한 사실로 악명을 얻었다. 한때 AfD가 부인했던 이 정책은 이제 당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 됐다. 지크문트는 자신의 참석을 둘러싼 스캔들을 오히려 반가운 홍보 성공으로 여긴다.
작센안할트의 AfD 주변 우익 분위기가 어떤지 감을 잡고 싶다면 심슨 집회 영상을 보기를 권한다. 경호선을 둘러싼 남자들을 한번 보라!
"지크문트의 정치적 반대자라면 누구든 이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Für jeden politischen Gegner Siegmunds müssen diese Bilder schockierend und zugleich stark beeindruckend sein. pic.twitter.com/QJ30IbRntw
— Vadim Derksen (@realDerksen) August 23, 2026
그리고 속이 괜찮다면 가족 친화적인 ‘집회’에서 n-word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장면도 확인해 보라.
"독일, 그러나 정상적으로."
Deutschland, aber normal. pic.twitter.com/fKolo6tIKB
— Manuel Schwalm (@coolservativ) August 16, 2026
완곡하게 말해도 AfD는 인종주의적 외국인혐오 세력이다.
이미 지적됐듯이 안할트(Anhalt)는 1932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나치 총리를 선출한 주였다. 그러나 작센안할트에는 좌파의 역사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대안적 전통은 더 최근의 일이다. 1990년대 후반 이 주의 유권자들은 사회민주당(SPD)을 제1당으로 만들었고, 좌파당(Die Linke)의 전신인 민주사회당(PDS)은 강한 3위를 기록했다. SPD는 녹색당과 소수정부를 구성했고, PDS의 묵시적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설명해야 할 것은 민족주의적 정서가 깊은 연속성을 가졌다는 사실이라기보다 잠재적인 진보 다수가 왜 무너졌는가다.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나는 대체로 동독 출신 언론인이자 논평가인 야나 헨젤(Jana Hensel, 독일의 작가이자 언론인·칼럼니스트)이 제시하는 서사가 설득력 있다고 본다.
《한때 하나의 나라였다》 왜 동독은 민주주의에 등을 돌리는가, 야나 헨젤
헨젤은 2000년대에 적녹연정이 독일의 복지와 노동시장 행정 모델을 극적으로 공격하면서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하르츠 IV 개혁(Hartz IV reforms)’이다. 2003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이 개혁은 복지 수급자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급격히 높였고, 동시에 세전 지니계수도 크게 상승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 변화는 동독 주민들에게 자신들도 공동의 운명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환상을 깨뜨렸다고 헨젤은 주장한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주민들을 깊이 소외시키고 의욕을 꺾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좌파·진보적 에너지는 흩어졌다. 작센안할트가 선거사에서 이전에 이름을 남긴 것은 2006년이었다. 당시 지방선거 투표율이 불과 44.4%에 그치며 역대 최저 참여율을 기록했다.
AfD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2006년의 바닥에서 주말 투표율은 78%까지 치솟았으며, 2021년의 60%에도 미치지 못했던 수준에서 크게 상승했다. 이 선거 동원의 가장 큰 동력이자 최대 수혜자는 AfD였다. AfD가 지지를 크게 늘린 데에는 이전의 기권층이 압도적으로 큰 몫을 차지했다.

정치학자 율리우스 쾰처(Julius Koelzer)가 수행한 영웅적인 수준의 실증 연구가 보여주듯 이러한 동원은 주의 농촌 지역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 정치경제학자 필리프 마노우(Philip Manow)가 독일의 포퓰리즘 급등이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가져왔다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을 독일 민주주의 기득권층에 대한 고도로 동원된 항의표라고 진단하는 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그 항의는 외국인혐오와 민족·지역적 소속감의 수용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이번 선거의 수사적 핵심어는 ‘하이마트(Heimat·고향)’였다. 하지만 이런 안도감을 주는 메시지는 극적인 위기의식, 그리고 근본적으로 새롭고 급진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요구와 결합한다. 놀랍지 않게도 《디 벨트》(Die Welt)의 울프 포르샤르트(Ulf Poschardt) 같은 우익 논평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베를린 공화국(Berlin Republic)의 종말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운터강(Untergang·몰락)’의 분위기에 동의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이번 지방선거가 열어젖힌 극적인 전망과 씨름해야 한다. 항의표를 마주하면 사회적 불이익이나 작센안할트 경제의 상태 같은 익숙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그리고 깊이 뿌리박힌 불만의 근거를 그곳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독일 전체의 그다지 높지 않은 성장 기준으로 보더라도 작센안할트의 성장률은 낮다.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작센안할트 경제는 한때 국가가 지원하는 ‘중부독일’ 산업주의의 주요 거점이었다. 전설적인 JU52 수송기와 여객기를 생산한 융커스(Junkers)의 원래 공장이 데사우(Dessau)에 있었다. 작센안할트는 한때 공산권 전체에 철도 차량을 공급했다. GDR 시절에는 화학산업이 대규모로 집중돼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산업들은 지금 잘나가는 부문이 아니다. 인구는 고령화하고 줄어들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AfD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의 유사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노동자’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호소한다. 이들 가운데 60%가 AfD에 투표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65%가 AfD에 투표한다. 어느 쪽도 전체 유권자의 다수 집단은 아니지만, 투표 성향의 편향은 의미심장하다. 반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가운데 AfD에 투표한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계급 우파 유권자에게 더 나은 복지와 물가안정을 제공해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AfD 유권자에게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물으면 “외국인이 너무 많다”는 외국인혐오적 우려와 함께 생활비와 생활수준에 대한 걱정을 말한다. 기후변화와 외부 전쟁의 위협도 언급한다.
출처: 이사벨라 웨버 제공
이것들이 그들의 걱정거리다. 하지만 AfD를 어떻게 생각하며 왜 그 정당에 투표했는지 물으면 경제 문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나오는 것은 치안과 외국인, ‘워크(woke) 정치’, 정치권과의 거리감 같은 문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계급 유권자가 사회보장을 개선하겠다는 기대를 품고 AfD에 투표한다면 사실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센안할트에는 진보적 복지주의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들이 존재한다. 특히 좌파당이 그렇고, 어느 정도는 SPD와 녹색당도 그렇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들에게 몰려가지 않는다. AfD를 선택한다는 것은 사회정책 측면에서 독일의 전통적인 친기업 자유시장 정당인 기독민주연합(CDU)이나 자유민주당(FDP)보다도 훨씬 오른쪽에 있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출처: DIW
요컨대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AfD에 투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든 그 문제를 사회민주주의나 복지, 정부 개입을 통해 해결해달라는 표가 아니다. 그것은 외국인 단속에 대한 표다. 유권자는 그것이 일자리나 부족한 복지자원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는 자신처럼 현상유지를 거부하고, 급진적인 행동을 요구하며,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던지는 표다. AfD에 투표하면서 사회경제적 비전에 표를 준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조나스 유낙(Jonas Junack)이 적절하지만 다소 어색하게 표현한 ‘토착민주의적 생산자주의적 자격주의(nativist producerist deservism)’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토착민주의(Nativism) = 이민자보다 자국 출생 주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적 정책이나 세계관이다. 대개 이민자가 지역 문화와 일자리, 공공자원을 위협한다는 두려움이 그 배경에 있다.
· 생산자주의(Producerism) = 사회에서 ‘생산적인’ 구성원, 일반적으로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육체노동자, 농민, 소상공인이 금융가 같은 비생산적인 경제 엘리트와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의존집단 모두에게 착취당한다고 보는 정치이념이다.
· 자격주의(Deservism) = 시민과 비시민을 지원과 복지, 법적 지위를 ‘획득했거나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무임승차자 또는 외부인으로 간주하는 사람으로, 도덕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이다. (제미나이(Gemini)에게 감사한다.)
내 생각에 진보적 정책이 이런 유권자들과 조금이라도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자체도 열린 질문이지만, 상대적 경제적 불이익이라는 물질적 현실뿐 아니라 무엇보다 AfD가 가진 ‘아웃사이더’ 자격을 다뤄야 한다.
AfD의 인종주의와 외국인혐오는 실제다. 하지만 이것들이 더욱 강력한 이유는 일종의 신뢰성 확보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우익 극단주의자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실제로 그렇게 분류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라는 주장을 세울 수 있다. 이들은 ‘베를린 공화국’의 주류를 넘어서는 정체성을 구축하고 유권자들에게 그 공동체에 합류하라고 요청한다. AfD는 이런 공동체를 키우고 구축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동독 지역에서 이제 AfD는 다수당 지위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 프로젝트에 대한 해답이 더 나은 사회경제정책을 통해 주류를 강화하고 개혁하며 개선하는 데 있다고 믿는 것은, 최소한 대담한 가설이다. 더 분명한 결론은 우리가 AfD와 정치적 지형을 놓고 경쟁하기를 정말 원한다면, 똑같은 것을 조금 더 잘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안을 위한 대안(alternative to the Alternative)’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을 위한 대안’은 단순한 물질적 혜택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서플러스》(Surplus) 잡지의 동료 이사벨라 베버(Isabella Weber)가 ‘반파시즘 경제학(anti-fascist economics)’을 주장하거나,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처(Marcel Fratzscher)가 25년 전 ‘아젠다 2010(Agenda 2010)’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대대적 개혁 프로그램을 요구할 때, 이들은 대담하고 급진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구체적인 경제정책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베버는 가격통제 조치를 생각하고 있고, 프라처는 여러 ‘개혁’을 제시한다. 하지만 작센안할트 선거 이후 우리가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러한 정책들만으로 현재 베를린 정치의 주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런 정치를 우리는 AfD만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를 원하는가?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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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