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왜 여성의 몫이 되었는가 - 노인생활지원사의 노동을 말하다

여성노동자 건강권 우리가 지킨다 ⑤

[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 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 젠더폭력, 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은 오랜 시간 ‘대부분 여성의 일’로 여겨져 왔다. 그중에서도 노인생활지원사의 업무는 그 인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어르신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안부를 확인하고, 말벗이 되어 드리며,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일. 이 중요한 노동은 왜 유독 여성의 몫으로 남겨져 왔을까.

현장의 목소리는 단순하다. 일부 여성 어르신들은 남성 방문자에 대해 불안을 표한다. “남성이 집에 오는 것이 무섭다”는 반응은 채용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 교감과 세심함이 중요한 업무 특성상, 사회적으로 ‘공감 능력이 높다’고 인식되는 여성노동자가 더 적합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가사 지원 역시 오랜 성역할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여성의 영역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구조적이다. 낮은 임금, 단시간 근로, 고용 불안정은 남성 노동자의 유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전히 생계부양의 책임을 요구받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남성 노동자들이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돌봄노동은 ‘여성이 더 적합해서’가 아니라, ‘여성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여성에게 집중되어 온 셈이다. 이는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차별적 구조와 돌봄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가 빚어낸 결과다. 

지난해 국제 돌봄의 날을 기념해 열린 돌봄행진에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노인생활지원사분회도 참여했다.

건강권과 노동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노인생활지원사의 노동환경은 개선이 시급하다. 우선 정년과 고용안정 문제부터 짚어야 한다. 생년월일에 따라 정년 적용 시점이 달라지는 현행 기준은 현장에 혼란을 낳고 있다. 해당 연도에 정년에 도달하는 경우 최소한 그해 12월까지는 근무할 수 있도록 기준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과 숙련 인력의 이탈 방지를 위해 정년 연장과 무기계약직 전환 등 고용안정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장치 마련 역시 절실하다. 가가호호 방문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음에도 예방과 보호는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남아 있다. 독감 예방접종의 무료 지원은 최소한의 조치다. 대상자가 코로나19, 폐결핵 등 전염성 질환을 앓는 경우에는 전화 안부 확인 등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업무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민원과 오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도 시급하다. 금품 분실 의심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방적으로 생활지원사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사실 확인 절차와 대응 매뉴얼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성희롱, 폭언, 위협 행동 등의 이력이 있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생활지원사들에게 사전 정보 공유가 돼야 하며, 2인 1조 방문, 방문 시간 조정, 방문 중단 기준 등 구체적인 안전 지침 또한 필요하다. 치매 의심 대상자의 반복적 오해도 생활지원사의 업무 가중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에 대해서도 보호자 확인, 기록 방식 통일, 동행 방문 등 표준화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건강검진일에 공가를 부여하지 않고 연차 사용을 강요하는 관행 역시 개선돼야 한다. 건강권은 개인의 사적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돌봄을 유지하기 위한 공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노인생활지원사분회 설립총회 현장

처우 개선과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노인생활지원사의 업무는 이동과 통신 사용이 빈번하다. 교통비와 통신비 등 실비성 수당 지급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책임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임금 수준 또한 단계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업무 특성상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부담도 크다. 업무용 휴대전화 지급 또는 이에 준하는 통신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근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긴급하지 않은 연락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노동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휴일 긴급 안부 확인 업무로 인해 온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 역시 해결돼야 한다. 긴급업무의 외주화나 대체 인력 운영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방문 중심의 업무 특성상 안정적으로 기록을 작성하고 휴식을 취할 거점 공간이 요구된다. 별도의 공간 확보가 어렵다면 임시 거점 활용에 따른 비용 보전이나 대체 수당 지급 방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돌봄의 가치에 걸맞은 대우를 

돌봄은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 노동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여전히 과소평가되어 있다. 돌봄을 여성의 ‘적성’이나 ‘희생’의 문제로 환원하는 한, 구조적 개선은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헌신을 요구하는 문화가 아니라 안전과 존엄을 보장하는 제도다.

노인생활지원사의 노동은 누군가의 사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적 안전망이다. 돌봄이 존중받을 때, 돌보는 사람도 존중받는다. 이제는 여성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돌봄노동을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재정의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말

유승현은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노인생활지원사분회 분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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