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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농담이 떠도는 극보수의 도시에서 수십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조직해서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자유발언에 나선 아이들의 언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만큼이나 날카로웠고,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저 정치 모리배들의 타락하고 몽매한 언어들에 깊이 상심하고 지친 내 감각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한 고3 여학생은 "정말로 나라가 걱정이 돼서 공부가 안 된다"고도 했고, 다른 한 학생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무 쓸데도 없고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고도 했다. 아이들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먹거리에 대한 불안만으로 이렇게 몰려나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 부문 민영화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이들이 자신들과 부모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염려하고 있었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는 비평준화 소도시에 살면서 어릴적부터 이미 충분히 겪어온 것이기에 별로 새삼스럽지 않지만, 학교 생활이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는 채 가늠이 안 된다고도 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아이들의 이러한 분출에 우리들 전교조 교사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긴급한 세상의 문제들을 알려주고, 이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제 신념을 실어 가르치는 교사는 과연 몇 명이 있는 것일까? 초식 동물인 소에게 육골분을 먹이고, 풀썩풀썩 주저앉는 소를 전기 충격기로 찌르고, 넘어진 소에게는 체인을 감아 지게차로 끌어당기고, 밀어 넘어뜨리는 이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죄악'을 가르치는 교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공정택 서울 교육감은 촛불 시위의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 했지만, 부끄럽게도 지금 우리 전교조에겐 과분한 상찬으로 들린다. 얼마 전 지회 사무실에서, 경남지부 집행위 자료집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와 연금법 개악에 반대하는 서명자수가 경남 전체에서 불과 1천여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남의 교원은 3만을 넘고, 전교조 조합원도 8천을 넘는데도 말이다. 쌓여가는 수많은 서명들 속에서 이제는 서명지 돌리는 일조차 귀찮아졌거나, 우리 분회 하나 빠져도 어떻게 되겠지 싶어서 뭉개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도록 진행되어 온 우리 조직의 무기력의 한 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정진화 위원장은 홀로 19일간 단식하다가 결국 병원으로 실려갔다. 아이들은 우리 전교조 교사들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 알고 깨쳐서 분출하고 있다. KTX 여승무원, 이랜드, 기륭전자, 코스콤, 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투쟁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진행중이다. 한미 FTA, 공공 부문 민영화, 교육 자율화 조치와 일련의 교육계 구조조정들까지 광우병 쇠고기 이상의 중요한 사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껏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겠지만,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중대한 갈림길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마음들, 미래에 대한 불안, 권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연민을 안고, 그나마의 희망을 좇아 촛불을 들고 수많은 아이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순간에 정규직 평생 직장인들의 조직 전교조는 몹시 한가해 보인다. 그러므로 이 글은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동료들의 투쟁을 호소하는 격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