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그리운 류형렬 선생님

아직도 내 휴대전화 주소록 첫머리엔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석 자가 찍혀 있다.

선생님은 지난 2005년 가을, 한 말씀도 하지 못하시고 훌쩍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그러나 나는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선생님의 발자취를 교정 곳곳에서 느끼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잔디밭 주변에 가장 먼저 꽃봉오리를 터뜨렸던 목련이 지고 교문 옆 하얀 벚꽃이 지더니 현관 양쪽의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향기가 먼저 시선을 끈다. 선생님은 가셨어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우리 학교는 그 동안 외형적으로는 많이 변했다. 2004년, 자율학습지도비를 학생들로부터 징수하지 말고 시간외근무수당으로 지급해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학교와 교사간에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 교단의 침묵을 깨고 제일 먼저 목소리를 내신 분이 바로 류 선생님이었다.

출발은 학생들이 부당하게 내는 돈을 없애고자 한 것이었지만 초과근무수당으로 선생님의 근무에 대한 대가가 해결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싸움은 길고도 힘들었다. 결국 재단 이사장과의 면담으로 극적인 해결을 보긴 했으나 지금은 모든 교사가 당연히 받고 있는 초과근무수당도 그냥 쉽게 주어진 것이아니었다.

명덕여고 초대 분회장 류형렬 선생님!

인사위원회 구성, 불법찬조금 저지, 학교 예결산 감시, 출근부 폐지 등 여러문제의 민주화에 초석을 다진 분이다.

우여곡절 끝에 분회가 결성되고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힘들었지만, 특히 류형렬 선생님은 더욱 힘드셨을 것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몸으로 많은 일을 감당하느라고 애쓰시는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누구 말처럼 교사가 애들 가르치고 월급이나 받으면 그만이지 복지니, 인권이니 찾아준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잘못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셨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에게 삶의 원칙을 이야기하는 교사가 옳은 것을 옳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 뜻도 다 펼치지 못하시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그 날,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두달간 투병하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누구보다도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셨던 선생님은 교육현장에 부추기는 끝없는 경쟁을 보고 뭐라 하실까?
앞으로 점점 더 선생님이 그리워질 것 같다.

선생님!
지난 밤 꿈처럼이라도 저를 한번 더 찾아와 주시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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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영태

    이나령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잊지 않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