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약돌 환히 비치고/ 발 목 잠기는 물 얕은 강/ 남정네 몇 큰 돌로 바위를 때린다. / 꽝 소리 나고 기절한 물고기 물 위에 떠오른다. / 신나는 고기잡이/ 물 얕은 강 여기저기 봄이 오고 있다.
이 잔잔한 낙동강에 운하를 만든다 한다. / 강 가운데 운하를 세우면/ 강은 강이요 운하는 운하인줄 알았는데/ 강이 사라진다한다./ 흘러 살아 있던 강이/ 갇혀 죽은 물이 된다한다./ 물이 죽어 송사리가 죽고 꺾지가 죽고/ 물이 죽어 갈대숲이 죽고 금모래가 죽고/ 눈 환하게 밝히며 손 내밀어 줍던 다슬기가 죽고/ 폴짝 건너뛰던 징검다리가 죽고/ 새까맣게 반짝이는 몸 뒹굴던 얕은 물 모래밭이 죽고/ 나의 추억이 죽고 동화가 죽고/ 아이들의 놀이와 웃음이 죽고/ 그리하여 허공 중에 부서지던/ 푸른 별밭도 사라진다 한다.
흐르지 않으니 맑을 수 없고/ 맑지 않으니 나를 비출 수 없어/ 강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봄빛 부서지는 강가를 걸으며/ 금빛 강 허리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강은 나의 온몸으로 스며든다.
강은 흘러야 한다./ 생명의 강은 흘러야 한다. /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으며/ 강의 아픔을 보면서/ 어느 덧 나도 강이 되어 흘러간다.
지난 9일 문경 진남역에서 영신숲까지 15km 정도를 강 따라 걸었다.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가 될 낙동강 줄기를 따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이 땅의 4대 종교를 망라한 종교인들과 시인들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함께 걷는다.
운하 반대는 다양한 근거가 뒷바침해주듯 당연히 불가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알았던 가장 참혹한 사실은 강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 살아 있는 낙동강 칠백리,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적시던, 이 낙동강이 낙동강 ‘운하’가 되면 더 이상 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이 막히면 썩고 죽는다. 한반도의 등줄기를 흐르는 척수가 썩어버리는 것이다.
5년 집권하는 한 정권이 ‘경제정책’이라는 말로 역사의 강을 막아버리는, 이런 상식이하의 사고가 가능한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거기에 발맞추어 개발이 지역을 살릴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이 강 주변지역에 ‘한반도 대운하 적극 지지’현수막을 내걸게 하는 것이다.
이 현수막이 우리 지역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관제 동원되어 집회까지 한다고 한다.
집 한 채도 지었다가 마음에 안 들어 부순다면 기가 막힐 일인데 운하라는 것이 경제성이 없으면 그냥 헐어버릴 수 있는 그런 구조물인가? 무슨 수를 써더라도 이런 발상과 정책은 단연코 막아야 한다.


.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