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손잡고 녹색분칠 뱃놀이" 환경재단 그린보트 강행하나

기업 후원 받아 CSR, ESG 집중... 재정구조 문제도

환경재단의 크루즈 여행 사업 '그린보트'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크루즈를 타고 여행하며 환경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유명 인사들의 강의를 듣는 프로그램이 "환경운동의 본질을 왜곡하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는 지적이다. 과잉관광과 차별적인 소비자본주의를 부추기는 '부자들의 환경주의'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기후악당' 기업들의 후원으로 '그린보트'와 같은 '녹색분칠' 사업에 집중하는 환경재단의 해묵은 재정 구조와 운영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도 함께 제기된다. 

그린보트 선상. 그린보트 누리집 갈무리

'기후악당' 기업들과 '그린CSR'

참세상은 코로나19 팬데믹 전, 그린보트가 마지막으로 운항했던 해인 2019년 환경재단의 재정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재단의 재정 구조에서 기업들과 추진하는 '그린CSR'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 중에서도 그린보트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재단이 발표한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재단의 전체 수입은 88억여 원 규모다. 이중 그린보트가 속한 '그린CSR' 부문의 수입은 42억여 원으로 전체 수입의 47.54%에 달했다. 전체 지출에서도 그린CSR의 비중은 컸다. 2019년 재단의 전체 지출액 중 51%를 차지하는 46억여 원이 그린CSR 관련 지출이었다. 

그린보트 사업이 중단된 2020년, 재단의 그린CSR 관련 수입과 지출은 큰 폭으로 줄어 들었다. 재단 전체 수입에서 그린CSR의 비중은 12.9%(7억여 원)로 감소했다. 전년도에는 그린CSR 부분으로 편성되어 있던 그린리더십센터 관련 수입(13.64%, 7억 5천여만 원)을 합산해도, 2019년 대비 관련 사업 수입은 27억여 원 감소하고, 전체 수입에서의 비중도 21%나 줄었다. 그린CSR에서 그린보트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속가능보고서는 그린CSR 부문에 대해 "기업과 손잡고 지구 환경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한 지속적이며 영향력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재단의 감사보고서는 그린CSR에 대해 '기업참여프로그램'이라 기재하고 있다. 

환경재단 2019년, 2020년 지속가능보고서. 환경재단 누리집
2019년 공익목적사업 세부현황. 환경재단 국세청 공시자료

환경재단의 국세청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9년 '피스앤그린보트'의 사업수행비용은 총 22억여 원으로, 재단이 같은 해 추진한 26개 공익목적사업의 전체 수행비용인 52억여 원의 42.68%를 차지했다. 

재단의 '연간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를 들여다 보면, 2019년 환경재단은 피스앤그린보트 사업으로 21억여 원을 국외 지출했다. 이는 재단의 기부금 국외사업지출의 91%를 차지하고, 국내외 전체 기부금 지출의 26%에 달하는 규모다. '피스앤그린보트 외'라고 표기된 기부금 국내사업지출도 6억 9천여만 원 수준으로 확인되었다. 

한겨레신문도 지난 2016년 '환경재단 후원금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보도를 통해 재단의 재정구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한겨레는 “(2014년) 환경재단은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47억 5400여만 원의 후원금을 받아 33억 9200여만 원을 각종 사업비로 썼다. 단일 사업으로 가장 많은 돈을 쓴 곳은 7억 1000여만 원을 투입한 ‘피스앤그린보트’ 행사였고 그다음으로는 4억 4900여만 원이 들어간 서울환경영화제 개최였다"면서, "국내 엔지오 지원사업’ 항목으로 집행된 사업비는 6400여만 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2%가 채 되지 않는 ‘구색 맞추기’ 수준"이라고 짚었다. 

환경재단 2023년 지속가능보고서. 환경재단 누리집 

그린보트가 중단되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재단의 그린CSR 관련 수입은 크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재단 전체 재정구조에서 그린CSR과 그린리더십센터와 같은 "기업참여" 사업들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1년 재단의 전체 수입 중 '그린CSR센터(16.09%)'와 '그린리더십센터(24.74%)' 관련 수입이 40.83%를 차지했다. 그린리더십센터 부문에는 '4차산업혁명리더십'프로그램과 'ESG리더십과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22년에는 역시 "기업제휴" 프로그램인 'ESG 사회공헌' 부문이 등장, 전체 수입의 22.9%를 차지했고, 이를 '그린CSR(13.83%)'과 '그린리더십센터(12.46%)' 수입과 합산하면 전체 수입의 49.19%에 달했다. 2023년에는 '그린CSR센터(42.37%)' 관련 수입이 금액 자체도 47억여 원으로 다시 크게 늘어났는데, 여기다 '그린리더십센터(14.39%)' 관련 수입을 합하면 재단 전체 수입의 56.76%를 차지했다.

시장주의 환경운동 반성하고, 공익재단 본래 역할 찾아야

국세청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9년 환경재단의 전체 수익 72억여 원 중 '영리법인기부금품'은 57억여 원으로 78.71%를 차지했다. 

'당해 사업연도 출연자(기부자)' 자료를 보면, 2019년 환경재단에 현금을 출연한 이들 중에는 포스코, 한화케미칼,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이른바 "기후악당"으로 평가받는 기업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2021년 포스코규탄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

김상현 서강대학교 교수는 "그린보트 사업의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과 오염 등을 일으키는 대형 여객선을 사용했다는 점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다"면서, "환경재단이 기업권력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환경 공익재단을 표방하려면, 기후·생태위기의 구조적 원인, 양상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이를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환경재단은 CSR, ESG 등 기업 이미지 개선 활동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는 주류적 입장의 사회 저명인사와 기업 인사들이 참여하는 값비싼 크루즈 여행이라는 괴이한 내용과 형식 때문에 문제가 불거졌지만, 설사 더 그럴싸한 형식을 갖춘 사업을 추진하다 해도 이런 접근으로는 그린워싱이나 시장주의 환경운동을 정당화하고 확산시키는 사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도 짚었다. 

그는 "그린보트 사업 이전에, 환경 공익재단의 역할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지배적 정치·경제·사회구조에 의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부정의와 기후·생태위기의 최일선에 놓인 공동체 민중들의 삶에 주목하고 이들과 함께하며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환경 공익재단의 본래 역할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린보트 문제를 사회화한 김한민 작가는 "모든 기업을 악마화할 필요는 없지만, 가장 앞장서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들의 돈을 받아서, 그들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걸 도와주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환경재단이 지금 가장 골몰하고 집중하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김 작가는 "환경재단은 선상에서 환경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이번에 드러났듯이 그들은 누구를 교육할 자격이 없다. 오히려 시민들에게 환경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분노한 마음을 전했다. 

환경재단은 그린보트의 사업비 규모와 그 재원을 묻는 기자의 질의에 대해 "그린보트는 참가자들의 탑승비로 운영되는 공익 프로그램으로, 재단이 직접 협찬을 받지 않는다"면서 "다만, 취약계층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참가비를 일부 기업이 후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린보트 관련 기업후원의 정확한 금액과 출처도 질문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와 취약계층의 선발 기준에 대해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및 후원 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투명하게 진행된다"고 했으나, 기준의 내용과 2019년 운항 당시 지원 규모 등을 묻는 질문에도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재단은 "그린보트는 그 동안의 운영 과정에서 소폭의 적자가 발생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공감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꼭 필요한 사업으로 그린보트를 올해 다시 재개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한편, 2025년 재개되는 그린보트의 대표 협력사 중 하나가 '세중여행'인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환경재단의 "기부금 모금액 및 활용실적 명세서"에 따르면, 세중은 2016년 이전부터 그린보트 사업의 운영을 맡아온 것으로 보인다. 

세중의 회장 천신일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로 2012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바 있다. 

세중은 삼성그룹의 독점 여행사로 몸집을 키워왔으나, 2017년 호텔신라가 자체 법인 전문 여행사를 설립하고 여행사 일감을 몰아주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세중은 현재 2세 승계를 위한 형제 경영 체제에도 돌입, 신사업들을 키워 계열분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환경재단이 그린보트 사업을 통해 이런 기업들이 활로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옳은지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18일에도 그린보트 광고를 누리집 전면에 내걸고 있는 환경재단. 환경재단 누리집 갈무리

시민사회 비판에도, 입장 고수하는 환경재단 

녹색당은 13일 발표한 논평에서 "사실상 그린보트 프로그램은 환경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관광 사업에 불과하며, 인간 종의 일원으로서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자 고민하는 참가자들을 기만한다"고 짚었다. 또한 "그린보트 프로그램은 대기업의 후원과 적지 않은 참가비 수입으로 운영되며, 그럼으로써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경제적 여유를 갖춘 중상층 시민으로 국한된다"고 비판했다. 2025년 1월 출항하는 그린보트의 참가비용은 객실 종류에 따라 일인당 178만 원에서 최대 368만 원에 이른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그린보트가 "환경적으로도 명백한 그린워싱 사업이고, 크루즈라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굉장히 계급적인 사치 상품"이라면서, "소비주의적이고 차별주의적인 활동을 환경활동이라고 포장해서 시민들과 명사들을 모으는 방식이 어떤 의미로 봐도 한국의 환경주의와 기후 위기 대응을 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19일 참세상의 취재에 따르면 환경재단 측은 여전히 그린보트를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동행 게스트'로 예정되었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가수 요조,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탑승 철회 의사를 밝힌 상태다. 

시셰퍼드 코리아는 지난 10일부터 16일 자정까지 그린보트의 중단을 촉구하는 서명을 모았다. 서명에는 개인 1016명과 단체 77개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체들에는 기후정의동맹, 멸종반란 카톨릭, 핫핑크돌핀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다수의 기후환경단체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오는 20일, 환경재단 측에 직접 연대서명의 결과를 전달할 예정이다. 

환경재단의 입장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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