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독재자다

대통령 윤석열이 구상한 친위 쿠데타 시나리오는 애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스케일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불법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의 감정적즉흥적 결정이 만든 돌발적 사태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군경의 책임자들이 지금까지 수사기관과 언론에 털어놓은 얘기를 보면단순히 그런 식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게 드러난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대통령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 카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언제였을까문재인 정권 당시 이른바 기무사 계엄령 문건 수사를 담당한 게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이었다는 점에서 검사 시절부터였을 수도 있다그러나 아무래도 구체적인 단계에 도달한 것은 지난 총선을 전후한 시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이른바 충암파’ 중 한 명인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총선이 끝나고 초여름에 대통령과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시국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격해지다가 (대통령이계엄 이야기를 꺼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중앙일보는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여 사령관에게 계엄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면서 대통령이 계엄을 점점 더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정말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직언하기 시작했다한 번은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만류까지 했다는 여인형의 진술을 보도했다.

출처: MBC 뉴스투데이 화면 갈무리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윤석열이 방첩사령관에게 계엄 관련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총선 직후라고 볼 수 있다여기에 지난 3월 당시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이 공관에서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방첩사령관과 모임을 가졌고 이게 더불어민주당 등에 의해 계엄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 계기가 됐다는 점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선 전후라는 시점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총선 직전까지의 분위기를 되짚어보자여당의 승리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김건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등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 용산은 이원석 총장 체제의 검찰을 적대하고 있었고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도 확산하는 상황이었다채 해병 사건으로 위기감이 더 커지는 가운데 용산은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과도 당 운영과 공천 등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보수언론은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은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경고를 날리는 상황이었다조선일보에는 총선 패배 시 대통령이 자진 사퇴의 결단을 내리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식의 칼럼이 게재되기도 했다.

예상대로 여당은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일반적인 리더십의 소유자라면 국회 다수를 점한 야당과 타협해 가능한 만큼이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보려 했을 것이다그러나 윤석열은 그런 성격의 지도자가 아니다타협이라기보다는 협잡에 가까운 아이디어들이 일부 흘러나오긴 했으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말 뿐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더 이상 선거는 없지만, ‘한 방에 모든 것을 뒤집어야 한다… 그러려면 계엄뿐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닐까김용현은 그러한 임무를 안고 경호처장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게 아닐까?

계엄을 선포하려면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있어야 한다최근 드러난 사실을 종합하면 김용현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오물 풍선 원점 타격’ 등을 합참에 요구하는 등의 방식으로 긴장을 조성하여 계엄의 요건인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비상사태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이러한 시도가 결실을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명태균 의혹 관련 수사 변수 통제가 어려워지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으로 김건희 특검 재의결 관련 전망도 낙관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불법 계엄을 강행하게 된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

계엄 당일의 상황을 보면 윤석열은 그 자신의 반복된 항변과는 달리 절차적 측면에서도 법을 준수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헌법 89조는 계엄 선포와 해제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그런데 한덕수 국무총리는 11일 국회에서 계엄 선포를 앞두고 열린 걸로 알려진 국무회의에 대해 절차적실체적 흠결이 있었다고 했다. “회의 기록과 속기개회 선언종료 선언 등이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국무회의는 국무회의가 아닌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 말씀에 동의한다고 했다그간 보도에 의하면 국무회의는 한덕수 총리가 형식적 요건이라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여 열린 걸로 알려졌다그런데 그 당사자가 사실상 국무회의는 열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다대통령인 윤석열이 국무회의를 거칠 의향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 전두환의 사형 선고 사례를 보면 헌법기관인 국회를 장악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가 내란 혐의 인정의 핵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불법 계엄 선포를 하더라도 이후에 내란 혐의를 부정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면 국회를 공격하거나 계엄 해제를 방해하는 일 등은 절대 해서는 안 되었다는 뜻이다그런데 윤석열은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을 통해 사실상 정치 활동 일반을 금지하고 특전사 등의 국회 점거 및 정치인 체포 등을 직접 지시 및 독려했다뒷일을 생각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애초에 법 절차를 준수하려 했다고 주장할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윤석열이 국민과 국제사회에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으려 한 시나리오는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이다지금까지 계엄에 동원된 군경 관계자들의 증언과 당일 군의 움직임 등을 종합해 볼 때또 윤석열이 실제 주장하고 있는 바를 볼 때윤석열은 야당 의원들이 부정선거에 의해 선출됐고 이 과정에 북한이 개입했으며 체포된 의원들은 당선 무효이고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이를 통해 총선 결과를 뒤집고 김건희 특검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옳게 된 국회를 재구성하려 한 게 아니냐는 거다.

대국민 호소문 등을 볼 때윤석열은 극우 유튜브 등이 유포하고 있는 부정 선거론을 진지하게 믿었던 듯도 하다그러나 실제로 이런 황당한 이론을 어느 수준까지 믿었느냐와 별개로이를 활용해 실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민주공화국을 자처하는 국가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에 관한 규범을 준수할 의지가 아예 없고이에 대한 아무런 이해조차 없는 자가 지도자로서 2년 반을 넘게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단지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알코올중독으로 합리적 판단이 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에 그치는 지도자가 아니다윤석열은 독재적 수단에 쉽게 이끌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이를 거부할 민주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자이다그렇기 때문에 계엄을 활용해 총선에 불복할 수 있다는 구상이 가능한 것이며절차를 전혀 존중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행태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바로 이런 자를 우리는 독재자라 불러왔다.

12일 윤석열의 대국민담화는 부정 선거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극우 유튜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극소수의 급진적 유권자에게 구조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들의 대안적 세계 속에서 윤석열의 선관위 상륙작전은 이미 성공하고 있다비극은 이들의 대안적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지점부정 선거를 증명하고 종북세력을 박살 내는 윤석열과 탄핵당하고 구속기소 되는 윤석열의 희비가 드라마틱하게 엇갈리는 시기에 발생할 것이다어쩌면 이는 한국판 트럼프의 의사당 점거 폭동을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대선 때 이런 윤석열을 자유민주주의를 재건할 엘리트로 간주하고 심지어 지지를 보내기도 한왕년엔 진보를 표방했던 일군의 인사들이 있었다왜 그때 알아보지 못했냐는 식의 소모적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그런 식의 복기는 모든 것을 황폐화할 뿐이다.

답을 얻어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어째서 독재자를 자유민주주의자로 오인하는 정치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는가어떻게 우리는독재자를 당장 자리에서 끌어 내리자는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식의 공학적 사고를 한 묶음으로 내놓는 정치의 인질이 되었는가어쩌다 유권자들은 민주당에게 이용당하지 말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국민의힘에 이용당하거나, ‘국민의힘에 이용당하지 말라고 외치는 민주당에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었는가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독재자가 집권해 있는 이런 나라에서이런 것이야말로 정말 곱씹을수록 딱하고 서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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