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 운동과 무지갯빛 연대

2025 신년기획 [무지갯빛 '연대', 다시 쓰는 '우리'] ③ 민주노총 성소수자 활동가 인터뷰

2025 신년기획 | 무지갯빛 '연대', 다시 쓰는 '우리' 

⓪ 서로 다른 '나', '우리'가 될 수 있을까

① 환대, 다시 쓰는 '연대'

② 여성, 퀴어, 모두의 해방, 모두의 민주주의

③ 민주노조 운동과 무지갯빛 연대

④ 트랜스젠더, 젠더 퀴어 시민이 광장의 '불빛'들에게

⑤ 나의 '존엄', 다시 '우리'의 존엄

여성이자 성소수자인, 청년이자 젠더퀴어인, 노동자이자 이주민인, K-Pop 팬이자 또 다른 무엇인 다채로운 무지갯빛 시민들이 투쟁의 현장에서 새로운 빛을 밝히고 있다. 다시 열린 광장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도 새롭게 자라나는 듯하다. 

무지갯빛 시민들은 노동조합의 붉은 머리띠를 나누어 매고 '투쟁'으로 인사를 나눈다. 노동자들은 연대의 공간에 성중립 숙소와 화장실을 준비하고, 새로운 '동지'들과의 평등한 관계를 고민하며 토론을 이어간다. 

노동자와 무지갯빛 시민들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광장의 안과 밖에서 우리는 무엇을 함께해왔고,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민주노조 운동 안에서 무지갯빛 연대를 고민하고 구현하려 노력해 온 민주노총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는 장병권, 권순부, 곽이경 활동가. 참세상 

순부 저는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에 있어요. 사회연대국장 권순부입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고요. 서울 용산에 살고 30대 게이입니다. 

이경 저는 민주노총에서 현재는 노동안전 사업을 하고 있는 곽이경입니다.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권 저는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에서 일하고 있는 장병권입니다. 성소수자 운동을 쭉 해 오다 재작년 즈음부터 민주노총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세 활동가 모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 민주노조 운동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그 경로에는 어떤 고민들이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민주노총에서 활동하게 되었을까. 

병권  민주노총이라고 하는 곳은 약간 막연하기도 하고 동경이라고 할까,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민주노총은 규모가 크고 한국 사회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직이잖아요. 그런 조직 안에 성소수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라는 것들을 말하고, 환경을 함께 바꾸어 나가고, 그 경험과 시각을 넓은 전체 운동 안에서도 조금 더 나누어보면 어떨까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이경 지금의 '행성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당시 '동인련(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성소수자 노동자의 권리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연결되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민주노총과 여러 연대사업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들이 상시적으로 잘 진행이 되거나, 노동조합 안에 주체를 만들거나 하지는 못했었죠. 

제가 민주노총에 들어간다고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은 안 했지만, 그래도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노동조합에서도 활동을 하면서, 현장 조합원 내지는 현장 간부 중에서도 주체가 생기고, 시간이 흐르면 이분들이 목소리를 내고, 민주노총에 있는 성소수자 조합원들과 나아가서 노동조합 바깥에 있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를 함께 이야기하고 옹호하는 활동을 민주노총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렇다면 한번 가서 해보자, 이런 마음으로 민주노총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죠. 

순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제일 목말랐던 지점이, 우리가 당사자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운동에 비해서 제한적이라는 지점이었고, 조직화가 아주 어려운 조건에 있는 운동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에 대한 궁금함과 목마름이 있었어요. 민주노조 운동, 노동조합이 그런 면에서 조직 운동의 수준이 높고, 가능성이 많은 공간이라 생각했어요. 민주노총이라는 공간에서의 어떤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겠다 생각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 제가 뭔가 더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 혹 민주노총에는 답이 있지 않을까 해서, 약간 유학하는 심정으로 오기도 했어요. (웃음)

민주노총이 성소수자 의제에 관심을 갖고 조직적인 노력을 펼친 것은 얼마나 되었을까. 어떤 과정들이 있었을까. 

이경 과거 동인련에서, 당시는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시절인데 2009-2010년 즈음 민주노총과 함께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그때까지도 민주노총 '외부'의 제안이었고, 연속적이지 않은 사업이었죠. 

2016년 촛불(박근혜 탄핵 운동)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안에서  여성, 장애, 이주와 같은 의제들과 함께 이제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야기해야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 즈음 민주노총에 새로운 조합원들도 많이 늘었고, 간부들도 그런 고민과 이야기를 더 다양하게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고요. 이전에는 민주노총이 아예 성소수자에 대해 인식이 없었다거나 되게 별로였다거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다만 그 시점 이후에 조금 더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이 자라난 것 같아요.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함께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총연맹뿐만이라 여러 가맹조직과 지역본부에서도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어요. 확실히 사람이 있어야 뭔가 일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었죠. 

여러 노력이 있었는데, 분위기를 크게 바꾼 것은 민주노총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깃발을 들고 참여한 게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무지개로 연대하라'는 문장이 쓰여진 민주노총의 티셔츠도 반응이 좋았고요. '민주노총이 이런 곳에도 함께하다니' 하는 분위기였고 호응이 컸어요. 별로 환영을 못받던(웃음) 민주노총이,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면서 그곳에서 큰 환영을 받은 경험들도 (조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영향이) 컸어요. 요즘 광장에서 환영을 받는 것처럼요. 다들 신이 난 거죠. 매년 열심히 퀴어퍼레이드에 나가게 되었고, 총연맹이 시작을 하니까 전국의 지역본부들도 각 지역의 퀴어퍼레이드나 관련 단체들의 활동에 연대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연대가 촛불 정국 시기에 재발족을 하면서, 그 지역 네트워크들과의 시너지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지역 퀴어퍼레이드들에도 민주노총이 결합하고, 무슨 부스를 할지 고민하고, 그렇게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까하는 고민을 구체적으로 할 수 있을 때, 조금씩 바뀌어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생각보니 유구한 역사가 있네요. 2014년에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서울시청 점거농성을 할 때, 민주노총 위원장이 처음으로 연대발언을 하러 왔어요. 성소수자 투쟁 현장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연대 발언을 한 게 처음이었고, 현장의 성소수자들이 무척 반가워했어요. 

민주노조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의 연대는 '민주노총'의 안과 밖에서 너르고 오랜 역사를 만들어왔다. 

병권 민주노총 차원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 움직임에 나선 것은 여성위원회를 통해서나, 곽이경 동지가 대외협력 관련 활동을 하면서 무언가 흐름이 만들어졌다면, 민주노총 밖에서도 그런 노력은 있어 왔어요. 동인련은 단체가 구성된 이유 자체가 노동운동과 관련이 깊어요. 96년 노동법 개악안이 날치기 통과되었을 때, 그에 맞선 투쟁을 지지하는 성소수자들이 모임을 하면서 깃발을 들고 나갔던 것이 활동의 시작이 되었거든요. 그러면서 연대를 조직의 가치로 삼았고요. 이후에 다양한 노동자 집회와 투쟁 현장에 연대를 이어왔어요. 홈에버,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등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 계속 무지개 깃발을 들고, 우리도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조직적으로 표현해 왔었죠.

특히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투쟁 과정에서는 지속적으로 연대하면서 관계의 친밀함도 생겨났어요. 2011년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성소수자 단체들이 의원회관에서 농성을 하고 있을때, 한진중공업 투쟁 중이던 김진숙 지도위원이 전화 연결로 연대의 목소리를 전해주셨어요. 2015년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집회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오셔서 지보이스(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코러스모임)의 노래를 함께 불러 주셨죠. 그렇게 민주노총의 조직적인 차원을 아니더라도,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성소수자들의 연대 사이에서 관계는 계속 만들어져 왔어요. 

순부 민주노총 차원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어떻게 연결됐느냐보다, 더 오래 더 폭넓게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성소수자들과, 민주노조 운동이 교류해오고 만났던 순간들이 있었던 거죠. 

이경 한진중공업 투쟁에 연대하는 희망버스가 한참 갈 때, 우리도 퀴어버스를 조직해서 갔어요. 버스 1대가 모자라서, 버스를 더 섭외해서 갔었고, 성소수자들의 열기가 대단했어요. 최루액이 막 쏟아지는 곳에서, 친구사이 지보이스가 합창을 하고, 거기 있던 노동자와 성소수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밤을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 

병권 다음 날 결국 크레인까지는 못 갔는데, 김진숙 지도위원이 발언을 하셨거든요. 발언을 하면서 보통 여러 주체를 호명하잖아요. 장애인, 이주민, 누구누구 그렇게. 그때 김진숙 지도위원이 성소수자를 호명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참가했던 많은 성소수자들이 그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돌아가는 길에도 양 옆으로 한진 노동자 분들이 일렬로 서서 잘 가라 고맙다, 이렇게 환송해주셨고, 저희도 수고하셨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집회에 갔던 많은 친구들이 하여간 되게 많이 울었어요. 깊은 감동을 했고, 그 사람들이 이후에도 한진중공업 투쟁이나 여러 노동자 투쟁에 대한 연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것 같아요. 

한진중공업 투쟁에 연대하는 '퀴어버스' 퀼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민주노총 안과 밖 연대의 경험과 노력들은 민주노조 운동 안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경 2015년 즈음부터 그런 노력이 있어왔어요. 민주노총은 사무총국 처우 규칙이 있는데, 저는 사실 민주노총에 들어와서 내가 성소수자로서 나의 권리를 한껏 주장해도 과연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당시 총무실에 있었던 어느 분이 먼저 처우규칙을 개정해야 되지 않을까 물어봐 주셨어요. 그러면서 가족수당에 관련한 (이성애 결혼 관계 중심의) 기준들이 바뀌었어요. 바뀐 처우규칙에 대해서 오히려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지들의 문의가 더 많았대요. 그러면서 민주노총도 제도에서 빠져 있던 부분을 새롭게 토론해서 채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포괄하게 되는 효과를 경험하게 된 거죠. 그런 논의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 온 거 같아요.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해 여러 조직에도 성소수자를 포괄할 수 있는 처우 규칙을 갖고 있고, 단체협약에서 차별 금지 조항 같은 것을 담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어요. 

평등 수칙은 사실 고민인 지점도 있어요. 저는 당시에 이것을 어쨌든 탑다운 방식이라도 제정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때로는 평등 수칙에 담겨있는 내용의 맥락이라든가 필요성이 조직적으로 잘 토론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금지하는 어떤 규칙으로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어요. 이렇게 큰 조직에서 어떻게 이러한 평등을 위한 수칙이나 약속을 최대한 더 많은 사람에게 유효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있었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있는 거죠. 

긍정적인 지점도 있죠. 그걸 통해서 어쨌든 이 조직은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어떤 전제가 있다는 것을, 그런 메시지를 받는 소수자들이 존재하니까요. 

민주노총 내부의 변화와 함께, 광장의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마주한다. 윤석열 퇴진 국면, 다양한 '소수자'들이 '무지갯빛' 다채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광장을 밝히고 있다. 성소수자이자 민주노총 활동가로서, 어떤 변화를 감각하고 있을까. 어떤 고민이 자라나고 있을까. 

순부 12월 6일 국회 앞 집회에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당사자 발언이 나왔어요. 그날 안전하고 평등한 광장을 위한 수칙도 공유되었고, 그런 것을 더 필요로 하는 저간의 사건들도 있었죠. 어쨌든 그 첫 번째 발언자가 굉장히 환대를 받았고, 그 이후에 심미섭 님의 발언에 대한 일부의 공격도 있었지만, 큰 맥락에서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지지받고 광장이 안전한 공간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 같아요. 그걸 확인한 성소수자들과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치 폭발하듯이 늘 말하고 싶었지만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고요.  

이경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던 날, 잠시 자유발언 신청을 맡았어요. 그때 어떤 분이 오더니, 퇴진하고 탄핵하고 상관없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제재를 안 하냐는 항의를 하셨어요. 어떤 시민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난 바로 다음이었어요. 광장이 또 다 다정하지만은 않구나 고민도 들었어요. 그리고 (온라인 공간 등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 과정에서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동지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마음이 어떨까, 걱정도 있었고요.  

그런데 광장을 좀 믿어보자,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 다음 집회 때 올라왔었던 시민 발언들 중에 진짜 좀 놀라웠던 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일단 들어보려고 한다, 서로 참아주기도 하고 견뎌보기도 하는 게 연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되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자기는 이제 한마디로 20대 초반 남자이고 고등학교 때는 장애인들이 지하철 타는 것에 대해 정말 비난했었는데, 그 이후에 자신은 매우 천천히 바뀌었고 지금은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 자신처럼 광장에서 배우면서 천천히 바뀌는 사람들도 되게 많이 있으니까 서로 함께 하자, 그런 얘기였어요. 

트위터, SNS 등에서 거친 말들도 오가잖아요. 그런데 광장에서 사람들의 발언은 굉장히 정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박근혜 퇴진 투쟁 때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어떤 변화가 지금 광장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어떤 불화 같은 게 있다고 보여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됐어요. 뭔가 여기에서부터 완성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무언가 바꾸어 갈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순부 광장의 온도가 너무 따뜻하고 발언들이 그냥 너무 좋은 거예요. 시민들 발언이 너무 좋아요. 막 진짜 무릎을 치는 그런 발언이에요. 다 같이 우리가 뭔가 광장에서 시민 교육을 받고 있고, 서로 진짜 뭔가 연대 의식이 확장되고, 이런 게 실시간으로 절절하게 느껴져요. 

한 가지 안타깝다고 할까 그런 것은, 광장에 나와야 그걸 느낄 수 있고, 매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는 그걸 감각하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거예요. 광장의 그 공동체적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리 민주노총의 조합원들도 광장에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광장에 나오더라도 조합원들마다의 결합 수준이 다르고요. 

이경 공감해요. 2016년과 비교해보면 현장 조합원들 참여가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광장의 열기가 정말 현장까지 다 골고루 전해지고 있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현장을 조직해야 할까, 광장과 현장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순부 조직되어 있지 않았던 '퀴어'들의 참여가 큰 변화로 느껴져요. 트위터 중심으로 해서 많은 조직되지 않은 퀴어들이 혼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요. 성소수자 단체들이 모인 '무지개존'으로도 오시고, 그 밖의 어딘가에서도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광장 초기에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발언들을 기록하고, 활동가들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려 여러 고민들을 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그럴 필요가 없어졌던 것 같아요. 도처에서 퀴어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어요. 

퇴진 광장뿐만 아니라, 어떤 대중운동의 현장에서 운동 조직들이 무언가를 예상해서 기획하고 배치할 수 있는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고민을 한 지가 오래되었어요. 이번에도 다시 그런 변화를 확인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경 8년 전에는 우리가 모르는 퀴어가 막 연단에서 발언을 하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저는 민주노총에서 미조직 노동자들과 관련한 사업을 계속해 왔었는데, 이번 광장에서도 관련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들이 무지개 등 퀴어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깃발이나 굿즈에 담고, '퀴어적 정체성'과 교차하는 다양한 고민들을 드러내고 연결하면서 광장에 나선 시민들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 우리에게도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조합 활동에서도 다른 고민을 시작해야 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광장의 시민들을 분별하는, 여성과 트랜스젠더를, 조직운동과 시민들을 가르는 이야기들도 소리를 키우려 했다. '무지개 동지'를 호명한 민주노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순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라든지, 혐오가 아닌 우려라든지, 이런 것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어요. 특히 소셜미디어나 이런 곳에서 일부 논의가 흘러가는 양상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이 돼요. 광장은 아무튼 큰 공간이고 그곳에 모여있는 이들은 무척 다양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서로 그 어떤 낯설고 불편한 감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조금씩 견디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계기로서 공간으로서 광장이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커다란 실마리를 잡고서 함께 고민을 이어가면 좋겠어요. 

이경 지금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인식의 지평만을 갖고 판단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일하지 않은 대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다 자기 자신을 다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광장의 어떤 불협화음처럼 보이는 것들을 우리가 맞춰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보다는, 서로 이제 영원히 싸우는 이런 관계이구나 이런 생각은 덜 들고요. 그랬을 때 우리가 단일하지 않다는 감각에서 출발해서 고민을 이어가야 할 것 같아요. 

단일하지 않은, 서로 참 다른 개인들이 저마다 '나'로 오롯이, 또 '우리'로 같이, 무언가를 꿈꾸고 연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무엇을 '우리'로서 함께할 수 있을까.

이경 지금의 탄핵 정국 이후에도 여러 투쟁이 지속될 텐데, 그 과정에서 지금 광장에서부터 여러 현장으로 연대를 이어가는 시민들과 어떤 고민을 나누고, 어떻게 함께 관계 맺을 것인가 고민하게 되어요. 

우리가 광장에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면서도, 퇴진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이제 구체적 대안을, 완성된 어떤 것을 딱 보여줘야 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잖아요.(웃음) 그 세상을 다채로운 시민들과 함께, 우리가 함께 그려나가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아요. 

병권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이 이전하고는 달라야겠다, 서로 말을 걸고 듣는 방식도 내용도 이전하고는 달라야겠다는 고민이 들어요.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에서 1500명이 모이는 정책대회를 했어요. 그때 성중립 숙소를 만들었어요. 그 사실을 모르고 왔다가 그 방이 있다라는 걸 알고 그날 저녁에 찾아주셨던 한 조합원이, 이 방이 없었다면 자신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공간을 예약하거나 이랬을 것 같다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러면서 여기에 와서 참 다행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성중립 화장실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그래서 또 배울 수 있었어요. 

어떤 현장에서도 여러 이유로 그 공간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생겨나지 않도록 뭔가 사전에 인지하든 나중에 문제 제기를 받았을 때 그것을 수정하려고 노력을 하든 그런 노력이 민주노총에도, 다른 어디에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한, 다양한 고민과 감각을 공유하고 넓히는 것이, 지금 이 '빛의 혁명'이라고 하는 광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인 것 같아요. 

우리가 광장에서 만났던 그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다채로운 목소리를 이어갈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 될 것 같아요. '다시 만날 세계'를 같이 그리는 공간을 만들어야 박근혜 탄핵 이후의 그 실망감과 절망감을 해소하고, 그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에 우리가 함께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순부 8년 전처럼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정말 다종다양한 서로를 확인했던 이 경험을 잊지 않으면서 잠깐이라도 함께 귀 기울였던 이야기들에 대해, 서로가 처한 삶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광장이 닫히고, 다시 또 보수양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래도 서로가 광장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민주노조 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도 광장에서 새로 만난 '동지'들인 다양한 시민들과 같이 서로를 부축하면서 그렇게 우리로 나아간다면, 이 겨울, 이 퇴진 광장이 그래도 의미를 갖지 않을까 생각해요. 

민주노총에 걸린 서울퀴어퍼레이드 연대 현수막. 민주노총 성소수자 조합원 모임 

광장에서 우리는 어떤 꿈을 나눌 수 있을까. 새로운 한 해의 바람은 무엇일까. 

이경 어떤 정체성으로 이야기해야 될까요. (웃음) 성소수자로서 이야기하면 이제는 차별금지법은 제발 좀 제정을 하고 좀 다른 걸 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정말 이제는 하고도 남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구요. 그리고 새해 소원은 그래도 어쨌든 희망차게 일하고 싶어요. 정말 진짜 그게 소원인데, 희망차게 일하고 싶어요. 진짜 열심히 싸우고 하면은, 우리가 뭔가 하면 바뀔 수 있어, 이런 마음을 다시 갖고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병권 성소수자들도 그렇고 민주노총도 그렇고 요구하는 바가 있잖아요. 쟁취해야 할 과제들이. 그런데 그게 이루어져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경험이 없는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도 제정이 안되었고, 노조법 개정도 그렇고요. 제도와 법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우리가 십수년 넘도록 싸워왔던 차별금지법이나 여러 사회개혁의 과제가 국회에서 땅땅하고 통과되고 정말 시행되는 것까지 이루어지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그런 기쁜 순간들이 좀 올해는 많았으면 좋겠어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도 계속 싸워야 되고요. 

순부 저도 비슷한데, 음 뭐 힘든 거는 괜찮아요. 힘들고 지치는 건 괜찮은데, 뭔가 희망이 없는 것 같다거나 무력함이 느껴진다거나 하면 참 힘든 것 같아요. 새해에는, 퇴진 이후에는 그런 희망을 지키면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짝꿍을 만나고 싶습니다. (웃음)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