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크리스마스 늦은 오후 5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명동성당 사거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옆에 모였다.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를 포함해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이번 집회를 함께 준비한 단위들은 예상했던 숫자를 크게 넘어서 끊임없이 모여드는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집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바삐 움직였다. 발언과 공연으로 채워진 1시간 여의 집회를 마치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행진을 하는 와중에도 참여자는 계속 늘어났고, 그 수가 3천명에 달했다. 행진 차량의 마이크 소리가 자꾸만 길어지는 행진 대오 후미까지 닿지 못하자, 참여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마이크가 되어 구호를 이어나갔다. 행진 참여자들의 외침과 무지개 깃발이 크리스마스 저녁, 시내 한복판을 가득 메웠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이날 집회에서 발언한 민주노총 권수정 부위원장, HIV/AIDS 인권행동단체 회원,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 페미니스트 활동가, 청소년인권운동단체 활동가, 천주교여성성소수자공동체 구성원, 30대 논바이너리 서울시민 등 우리사회에서 소수자로, 특히 2년 남짓한 정권 내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갈라치기 정치를 한 윤석열 정부에 고통을 당한 이들의 발언 내용은 한 결 같이 윤석열을 탄핵하고 우리가 다시 만드는 세상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발언자들의 이야기에 참여자들은 구호와 더불어 피켓과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약속했다.
“광장의 약속을 사회의 약속으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크리스마스에 열리는 집회답게 마무리는 평등세상을 향한 무지개 축복식 ‘우리 서로의 기도와 용기가 되어’로 진행되었다. 인도하는 신부님과 목사님들을 따라 축복문을 함께 읽고 미리 받은 꽃잎을 서로에게 뿌려주며 축복했다. “세상의 아픈 자리 가운데 위로와 연대를 전하는 무지개빛 사람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삶에 사랑과 우정이 넘쳐나게 하소서!”
[발언]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김혜진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나서 우리가 돌아가야 될 일상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월세는 너무 높고 전세는 사기를 당할까 걱정입니다. 놀러간 곳에서 혹시라도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의 일자리는 비정규직 일자리 밖에 없고, 임금도 적어서 미래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딥페이크 범죄로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너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호통을 치는 일상입니다. 윤석열 퇴진 이후 우리의 일상은 다른 일상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미래로 나가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바꾸고 싶은 세상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집회를 하면서 광장을 열었습니다. 내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 지는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들려 주십시오. SNS와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의 공간에서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그 이야기를 더 커지게 만들어 나갑시다.
둘째,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전, 2022년도에 빼앗긴 임금을 되찾겠다고 농성을 했던 노동자들에게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협박하고, 그 노동자들에게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470억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퀴벌레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하청’과 ‘바퀴벌레’를 엮어서 이렇게 부릅니다. 노동자를 혐오하는 발언들이 난무하는 곳에서 단식농성을 했던 노동자들입니다. 계엄이 터진 날 저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가까스로 서울에 올라와 이 억울함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계엄때문에 이 노동자의 목소리는 다시 지워지겠구나!” 그것이 서러웠습니다. 그런데 남태령에서 농민과 함께 연했던 분들이 어떻게 그 소식을 알았는지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통장에 어마어마한 후원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싸움은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싸우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목소리들에 귀기울이고 함께 해주십시오.
셋째, 차별과 배제의 정치가 결국 윤석열의 계엄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얘기할 것입니다. 이제 정치인들에게 맡기라고.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너네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시민들에게는 집회를 해서 정치권이나 국회에 압력을 행사할 밖에 없습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이런 정치는 바꿔야 합니다. 정치개혁의 흐름은 ‘누가 우리를 대리하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시민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더 확대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함께 목소리를 냅시다.
윤석열을 얼른 구속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잊지 않고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 혐오와 배제가 없는 세상 아플 때 치료받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희망합니다. 정치인들에게 의탁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마음을 모아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집회를 계속하려 합니다. 다음 주(12월 31일 밤)에 또 뵙겠습니다.
-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윤석열 퇴진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흐름을 만드는 공동대응 네트워크(가)'에서 제휴 받은 기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