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오면 다 똑같아요"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4) 결혼 이주 여성의 삶과 노동

“ 우리 딸 지혜 학교 잘 보내는 거예요. 지혜가 커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우리 남편 술 끊으면 좋겠어요”
“ 다른 제 꿈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센터)에서 상담 등 자원활동을 하는 필리핀 출신 저스틴(Justine) 씨를 만나 긴 인터뷰를 마치고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답한 말이다. 자식 키우는 사람이 자식 걱정하고 남편의 잦은 술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여느 한국 주부와 같다. 인터뷰 동안 ‘한국에 들어오면 다 똑같아요’라고 말한 것이 비단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갖는 소소한 일상과 바램 뿐 아니라,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 가사노동, 육아의 부담 등 한국 여성 모두가 겪는 삶과 노동의 문제까지 맞닿아 있다.

물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당하는 차별, 언어소통의 어려움, 문화 차이 등에서 유래하는 고유한 차별과 어려움도 분명 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가족 내의 폭력, 차별만을 강조하면서 정작 다른 중요한 건 놓치고 있다.

다문화 사회로 포장된 동화정책

저스틴 씨는 2002년 한국에 와 화물차를 운전하는 남편과 결혼해 6살 딸을 두고 있다. 저스틴 씨는 종교단체의 소개로 결혼한 경우지만, 센터에서 만난 필리핀 친구들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결혼이 대다수다. 저스틴 씨가 한국에서 접한 지원은 2개월 짜리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정부는 2006년 ‘혼혈인 및 이주자의 사회통합 기본방향’과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을 확정하고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이 현실에서 정책을 체감하지 못한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김치 담그기, 수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고작 한 달에 한번 2시간이 전부였다. 실효성도 없고 어머니/며느리/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일방으로 따르게 하는데 중점을 둔 이런 정책들은 정부가 내세운 ‘다문화사회’에도 부적합한 동화정책일 뿐이다.

2007년 9월 법무부가 결혼이주자의 한국국적 취득 요건으로 한국어 필기시험 통과 또는 사회통합교육 이수를 의무화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제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혼이주자에 대해 귀화필기시험을 면제한 결과, 국어능력·한국사회 이해 부족으로 인한 사회 부적응이 심화돼 2세에게 영향을 미쳐 언어능력의 취약함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이 같은 ‘문제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라는 거다.

결국 한국인의 아내로 아이의 엄마 역할을 수행할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혈안인 정부의 관점은 결혼이주가족의 실질적인 어려움, 즉 먹고사는 문제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국제결혼 가정의 절반이 넘는 52.9%가 저소득 계층

많은 결혼 이민 가정은 서울, 인천·경기 등 대도시에 사는 비중이 높다. 농촌엔 25% 도시에 75%의 국제결혼 가족이 살고 있는데, 이 중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구가 국제결혼 가정의 절반이 넘는 52.9%(2005)다. 이는 대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도시의 하층 계급과 농촌 계급 남성들이 결혼과 생계를 위해 국제결혼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남편 일자리의 불안정성 때문에, 가계의 부족한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평균 취업률이 평균 60%로, 도시 지역의 한국 여성의 취업률 50%보다 10%나 더 높다는 지표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결혼이주여성은 단지 가정에만 머무는 주부가 아닌, 노동시장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출산·육아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지고, 가족의 생존을 위해 비정규직으로 노동하며 이중 삼중의 노동과 착취를 감내하는 한국 여성의 상황과 다를 바 없는 것이 결혼이주여성의 현실이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국적 차별까지 더해져 최하위의 노동자층으로 포섭될 위험성이 큰 것이 결혼이주여성이 처한 처참한 현실이다.

저스틴 씨는 결혼하고 임신을 하기 전 잠시 전자공장에 다닌 적이 있다. 9시부터 6시까지(잔업이 없으면) 일하고 한 달에 80만원 임금을 받았다. 내국인들과 임금 차별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적어도 여자들하고는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남성노동자들하고는 임금 차이가 있었다. 혼자 외국인이라 언어소통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다던 저스틴 씨가 경험한 것은 하루 8시간 일하고 가까스로 최저임금을 넘기는 저임금과 남성과의 임금 차별이었다.

이주여성의 노동조건 또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차별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한국여성노동자의 조건을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언어소통의 문제,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까지 더해져 결혼이주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취업지란 매우 한정적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절반 가량이 음식점 종업원/주방장, 가정부 등의 서비스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14%가 공장에서, 13%가 교사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비스 산업의 저임금, 사회보험 미가입, 미조직 등의 문제는 이주여성들에게도 해당된다.

여성 결혼이주민의 선별적 차별과 배제

한국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처럼, 결혼 이주 여성들도 육아 부담 때문에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저스틴 씨도 딸아이를 키워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 강사는 일주일에 2시간씩 3번하는 식이라 임금은 60~65만원 선이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필요한 부족한 수입은 개별적으로 영어 과외를 해서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가지 일을 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이 자유로워서 만족하는 편이라 했다.

2006년 정부는 여성결혼이민자를 방과후 외국어 강사, 외국인 대상 복지시설 상담원 등의 다문화 인력으로 양성·활용하겠다는 방안(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을 제출한 바 있다. 문화해설 통역사, 국제행사 안내, 관광가이드, 다문화사회교육 강사 등의 ‘전문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국 내 수요가 있는 영어와 중국어 분야에서나 학원, 방과 후 교실 강사로 필리핀 출신이나 중국 출신 소수가 취업하고 있는 정도이지 모든 결혼이주 여성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서는 제아무리 ‘전문인력’이라 포장할지라도 임금도 낮은 수준이다. 필요한 것은 몇몇 이주여성에게나 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 어떤(한국인이든 이주자이든) 이가 취직하더라도 실질임금과 노동권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일자리일 것이다.

구직의 어려움, 노동현장의 저임금이라는 상황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직면하는 경제적 빈곤 문제는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처 방안은 미흡하다. 결혼이주가구 중 절대빈곤 하에 있는 가구 비율이 절반을 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가운데 국민기초생활 수급자인 비율이 매우 낮다. 우선 이들의 절반 이상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자체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수급대상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7년부터 국적 취득 전인 여성결혼이민자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으니, 바로 한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할 경우가 그것이다. 결국 사회보호장치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인을 낳아 기르는 경우에, 한국인으로 귀화한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셈인 것이다.

한국주부로 강요된 동화에 맞선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의 권리 찾기

한국 정부가 한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들여왔다면, 한국인을 낳고 키우는 노동력 생산 및 재생산 노동을 맡기기 위해 ‘외국인 신부’를 들여오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착취당할 기회만 있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역할, 가족의 생계 부양을 나눠맡는 역할 외에 권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결혼이주여성은 주부이자 노동자로서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결혼이주여성은 노동자이고, 결혼이주여성의 의제가 노동 문제와 동떨어질 수 없다. 국적에 상관없이, 결혼을 했든 안했든 이주여성이 시민이자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갖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주부로 동화될 것만을 강요받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의 권리 쟁취를 위한 민중운동의 모색과 실천이 필요하다.

기획의도와 순서

경제위기 상황은 가장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을 키우고 있다. 공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월급을 삭감당하기도 하고 높이 뛴 물가 때문에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환율이 높아서 본국에 송금할 돈도 턱없이 줄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1월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성생공단 일대에서 벌어진 정부합동 단속으로 1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연행 되었다. 경찰까지 동원된 유례없는 대규모 단속은 체류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뤄졌지만 토끼몰이식, 군사작전식 단속으로 인권침해의 표본이 되었다. 이미 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들은 눈보라 몰아치는 혹한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탄압에 의한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겨울 이주노동자후원회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이것이 한국사회의 경종이 될 수 있도록 5회에 걸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획을 매주 싣고자 한다.

다음은 기획의 순서이다.

1. 이주노동자로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2. 야만적인 단속은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를 병들게 한다.
3. 고용허가제라고 다르지 않다.
4. 이주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5. 한국정부, 한국사회가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