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체벌 없는 학교, 우리도 지킬 것은 지키자!

서울 한울중 학생회 '체벌 금지 토론' 현장

"선생님들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봐준다'는 식의 이야기 공공연히 하시잖아. 똑같은 사안을 두고 오늘은 봐주고 내일은 혼나고. 그런 애매한 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한울중 학생들이 '체벌없는 학교에서 규칙과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 학생들이 할 일'을 주제로 모둠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강성란 기자

"학생회란 뭘까요?"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돕는 곳이오"
 
학생회의 역할, 구체적 학생자치의 모습, 대의원회의가 가진 위상 등등 '사탕 한 주먹'이 상품으로 걸린 학생회 관련 '잠깐 퀴즈'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예상외로 적극적이었다.
 
서울 한울중학교는 지난 달 10일 학교 강당에서 2010학년도 2학기 학생회 임원 수련회를 진행했다. 금요일 수업을 마친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연수에서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은 단연 '체벌 없는 학교를 주제로 한 모둠토론'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체벌금지 방침의 후속 대책으로 지난 9일 발표한 '체벌없는 평화로운 학교만들기 기본계획'에는 체벌금지를 포함한 학생생활규정 제·개정 과정에 반드시 '학생 의견 수렴'과정을 거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울중은 4년 전부터 학생회 임원 교체 시기마다 '학생회 임원 수련회'를 통해 학생회 활성화 방안을 논의해왔다. 하지만 시교육청의 체벌 금지 방침이 알려진 뒤 수련회 토론 주제를 '체벌 없는 학교에서 규칙과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 학생들이 할 일'로 수정했다. 이들을 주축으로 열리는 첫 대의원회의에서 체벌 금지 등을 포함한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논의하려면 학생 간 소통과 의견 정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여 명씩 6개 모둠을 구성한 학생들은 90분에 걸쳐 체벌 없는 학교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 모습을 이야기한 뒤 '체벌 없는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뽑아냈다.
 
체벌로 교사 학생 사이 멀어져 

3학년 9반 교실에 모인 4모둠은 토론 주제를 '체벌금지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정할 것인지 '체벌금지 정당한가'로 정리할 것인지 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조장인 3학년 차영유 학생이 "체벌 금지 정당한가로 할까?"라고 묻자 여기저기에서 "체벌금지는 당근 정당한 거지요"라며 발끈했고 토론은 시작됐다.
 
"우선 기분이 나빠요. 집에서는 아무리 잘못했어도 맞지 않는데…… 게다가 치마가 짧다고 맞는 건 과도하단 생각도 들고. 똑같이 입었는데 누구는 걸리고, 누구는 무사한 것을 보면 기준도 모호해요."
 
2학년 김수연 학생의 말에 "솔직히 치마 길이 등 교복규정을 만들어 때리거나 벌점을 주는 건 쪼잔하단 생각 들지 않니?","맞아, 생활규정은 학교에서 지키라는 건데 학교 밖에서 만난 선생님이 치마 짧다고 혼내시면 그것도 화나요" 여기저기서 평소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헌데 잘못하면 맞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맞는 건 싫지만 잘못했는데 지나치는 것도 그렇잖아요" 2학년 우양경 학생의 말에 학생들은 "그렇지만 선생님이 감정을 조금도 섞지 않고 때리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감정이 섞이면 체벌이 아니라 손찌검이지" , "선생님한테 맞은 아이 중 기분 나쁘다고 자기보다 약한 애들 때려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잖아. 뉴스에선 맞은 애가 상처받아서 자살했다고도 하고. 분명 문제가 있어"라며 체벌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선생님들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봐준다'는 식의 이야기 공공연히 하시잖아. 똑같은 사안을 두고 오늘은 봐주고 내일은 혼나고. 그런 애매한 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3학년 차영유 학생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호한 체벌의 기준과 근거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학년 우양경 학생의 "이야기하다 보니 체벌이 선생님이랑 우리들 사이에 거리감을 만들고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네요"라는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벌 없는 학교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 

체벌의 문제점을 말하던 학생들에게 '체벌이 없어진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아예 없어도 문제이긴하다", "원래 나쁜 습관은 고치기 어려운데 담배를 피우거나 선생님 말씀 안 듣는 애들은 어떡하지?" 술렁임으로 토론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3모둠 학생들이 모인 3학년 8반으로 가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체벌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는 학생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체벌이 가능한지 우리가 중심이 돼서 정하면 애들 반발이 적지 않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학급회의를 해서 이번 주에 상태가 너무 심했던 애를 정하고… 담임선생님께 때려 달라고 해야 하나?" 체벌 없는 학교를 경험해 본 적 없던 학생들에게 이번 과제는 참으로 어려워보였다.
 
"때리는 거 말고 때리지 않는 것을 말해보자"는 조장의 제안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칙적인 제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우릴 때리지 않으실 테니 우리도 선생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하지 않겠어?", "그래 수업태도에도 신경을 좀 쓰자. 선생님 수업도 잘듣고" 토론은 활기를 띠었다.
 
다시 4모둠을 찾았다. 여전히 고민이 많은 듯한 학생들 틈에서 "너무 머리 아프다. 때리지 말고 그냥 벌점 달라고 하자"라는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학생들은 "차라리 맞는 게 나아", "벌점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 줄 알아?"라며 일축한 뒤 토론을 이어갔다.
 
닭살 발언으로 체벌 잡아볼까? 

"선생님이 어떤 애를 때리고 싶을 때 역설적으로 '△△야,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어때? 이게 좀 닭살이면 '난 널 미워하지 않아'라고 한다거나."
 
3학년 차영유 학생의 제안에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선생님도 때리지 않으시니까 좋고. 우리도 그런 이야기가 닭살 돋아 싫으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되겠네" 학생들은 재치 있게 토론을 마무리했다.
 
4모둠은 △교사와 학생 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아이들이 동의하는 수준의 규제 기준 마련 △교사가 아이들을 때리고 싶을 땐 '사랑한다'고 말한다 등을 체벌 없는 학교의 대안으로 내놨다.
 
3학년 허승범 학생은 "처음엔 맞는 게 싫다거나 체벌은 당연히 없어야한다는 생각으로 토론을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하고 또 듣다보니 선생님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등 체벌이 가진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아직 대안을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체벌 금지로 얻는 것은 무엇? 

모둠 토론을 마친 아이들은 체벌 없는 학교의 대안으로 △학생들은 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지적하는 선생님에게 대들지 않는다 △선생님을 존중한다 △규칙은 학생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만든다 △학생들은 함께 정한 규칙을 잘 지킨다 △선생님이 문제 학생을 특별 관리한다 등을 내놨다. 학교에 대한 요구 일색일 것이라 예상했던 체벌 금지 학교의 대안은 학생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다짐으로 채워졌다.
 
이번 수련회를 기획한 이병우 한울중 학생회 담당교사는 "학생인권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학생인권과 체벌금지 등을 주제로 한 강연을 배치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아이들이 각자의 수준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친구들의 의견을 듣는 등 소통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여겼다"는 말로 체벌금지 토론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울중은 이날 학생회 임원 토론을 시작으로 10월 13일 대의원대회에서 학생생활규정 개정을 위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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