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교육민주화운동 20년사 ⑬ 교육무크 『민중교육』사건 (2)

6월25일 이철국이 재직한 여의도고 교장 김재규는 책이 ‘문제가 있다’고 시교위 학무국장에게 일렀다. 학무국장은 안기부 조정관에게 검토를 의뢰했다.

7월 초부터 서울시교위는 공문이나 회의를 통해 관련 교사들의 언행 관찰을 지시했다. 당사자들이 심각성을 느끼게 된 것은 7월 16일 예정한 출판기념회가 무산되고 나서다. 종로경찰서는 행사장소를 원천봉쇄했다. 18일 서울시교위는 핵심 교사들을 조사하고, 급기야 22일 유상덕과 김진경이 경찰에 연행된다. 8월 초부터 관련 교위(현 교육청)는 해당 교사 전원 사직을 강요했다.

성실, 복종, 비밀 준수, 품위유지의 의무와 정치운동, 집단행위의 금지 등, 교육공무원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당시 관제언론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던 KBS와 MBC는 교사들을 좌경 ·용공·반미로 몰아부친 문교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북치고 장구쳤다.

KBS는 8월 6일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들을 노린다>는 제목의 특별보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책의 곳곳에 붉은 밑줄을 쳐 가며 “『민중교육』지는 극도의 증오와 격정, 독선과 선동으로 가득차 있으며, 자본주의 제도와 그 정신의 장점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현재(5공)의 정치, 교육제도, 지도층을 의도적으로 비난 공격하고 있다”고 부르댔다.

그날 교사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문교부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를 발표, 보도자료 내용를 규탄했다.

“(...)아무도 심각한 위기에 빠진 교육을 바로잡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교육계는 획일적인 관료주의에 빠져 개혁의 실패를 거듭해 왔고, 교육계 밖에서는 교육 경시의 풍조가 만연하여 교육의 자율성을 무분별하게 침해하는 사례가 누적되어 왔다. 결국 모든 비교육적 중압이 학생들에게 가중되어 왔다. 입시위주 교육의 지속적인 긴장감 속에서 시험기간 오줌을 싸는 아이들, 시험지를 훔치러 집단으로 인쇄실에 침입하는 아이들을 외면하기에는 우리들의 가슴은 너무 뜨거웠다. 무크지 제작 의도는 교사들의 양심을 일깨움으로써 교육현실을 바로잡는 출발점을 마련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타성에 젖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교사가 성실한가, 스스로 반성하고 고민하며 올바른 교육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교사가 성실한 교사인가? 교사 채용 시 기부금을 받는 것, 교육계의 온갖 비리, 공식 출판된 친일파 관계 자료들을 문교부는 비밀로 처리하는가? 교사들이 모여 좌담을 한 것이 집단행위인가?”

평소 따르던 선생님들이 고난에 처하자 선일여고, 여의도고, 성동고 학생들이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대자보를 붙이거나 탄원서를 내고 시위에 나섰다. 여러 재야민주단체와 야당은 정권을 맹렬히 규탄했다. 어용단체 대한교련마저 여론에 편승하여 교권탄압 반대 성명서를 내었다가 문교부의 경위조사를 받기도 했다.

윤재철과 김진경은 8월 9일 새벽 남산으로 끌려가고, 실천문학사 송기원 편집주간은 여름휴가를 갔다가 12일 저녁 귀가하여 짐을 풀던 중에 가족이 보는 앞에서 끌려갔다. 10일 각 시도교위는 당사자의 출두도 없이 징계위를 열어 중징계를 때렸다. 파면 10명(유상덕 김진경 윤재철 고광헌 이철국 홍선웅 이순권 심임섭 조재도 송대헌), 강제사직 7명(심성보 유도혁 강병철 황재학 전인순 전무용 민병순 교장), 감봉 2명(박경현 등), 경고 1명이다. 당국은 필자는 물론 다른 사람의 글을 전할만한 교사도 잘라버리는 냉혹함을 보였다. 교수들은 아무런 조치도 받지 않았다. 교사만 밥이었다.

송대헌(경북 부석고)은 몇 년 후 이렇게 회고했다. “도교위에서 2명(신모, 배모)이 나와 문답서를 작성했다. 그들은 경찰보다 더욱 적대적이었다. 애초부터 좌경·용공으로 몰기에 열중하였다. 유도심문, 협박, 반말을 섞어가며 한줌의 권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옆에 있던 형사들도 혀를 내두를 능수능란한 태도, 그들에게서는 교육자의 냄새보다 기관원의 체취가 풍겼다. 그렇다. 그 동안 평교사 앞에서 그렇게 군림해온 것이다. 최후진술을 했다. 앞으로 5년, 10년 뒤 후배들이 오늘 이 자리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교육은 우리 교육자가 지켜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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